<김원기의 말에 어눌함으로 답한다.>
지금 오사카에 비가 내린다. 너무 고요한 아침이다. 시간으로야 굳이 아침이라 할 수 없다 하더라도, 비가 내리는 늦은 지금은 이른 아침과 다름없다. 어제는 먼지가 거의 없는 맑은 하늘에 햇빛이 찬란하더니, 몇 시간을 자고 난 뒤의 세상이 이렇게 다르다.
이런 분위기를 원했을 것이다. 삶의 터를 잠시 이탈하여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으면 했고, 그 여유로움와 안락함을 비가 더해준다. 마음이 가라앉고 머리는 맑아진다. 시끄러운 기계음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 커피의 단맛과 구수함이 진하게 전해온다. 담배연기를 깊게 들이쉬어도 아무런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계절을 몸소 느낄 수도 없다. 달력으로 치면, 한겨울의 추위가 몰아쳐야 할 때이다. 창으로는 비에 젖은 신선한 공기가 밀려오고, 빠르지 않은 바람이 빗줄기를 흔든다. 7층의 방에서는 오가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없고, 누구의 인기척도 없는 허공에 홀로 떠 있다. 계절이나 세상의 일이 눈에 잡힐 리 없다. 전혀 새로운 곳에 혼자 놓여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변한 것이 많다. 머리에는 흰머리가 늘어나고, 손등의 주름이 예전과 다르다. 몸의 변화도 그렇거니와, 머리와 가슴의 상태도 그렇다. 가슴의 활동성이 떨어져서 일까, 감정의 질이나 변화의 폭이 달라졌다. 칠정이라고 하는 마음에서의 감정이 잘 분류되지 않는다.
기뻐도 기쁘지 않고, 즐거워도 즐겁지 않다. 슬픔은 눈물을 가져오지 못하고, 분노도 앞뒤를 계산하여 짓눌러버린다. 활활 타올라야 할 가슴이 오물조물거리니, 그 부피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탱탱하던 땡감이 큰 주름으로 찌그러진 곶감이 되어버린 것과 같다. 몸의 모습이 달라진 것과 함께 마음도 그렇게 되어버린다.
머리도 마찬가지다. 천성적으로 내성적인 면을 많이 가지고 있음에도, 나보다는 밖에 관심이 많았다. 세상에 대해서도 그렇고, 지난 시간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도, 또 너른 우주에 대해서도 생각이 미쳤다. 내 배가 좀 주려 있어도, 이 세상의 본질적인 원리를 찾아봐야 한다는 의무감인 듯한 압박에 다소곳한 자세를 유지했다.
이제는 점점 한 인간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사고, 번민 등이 하찮게 여겨진다. 그 결과에 대해서도 가치의 정도가 달라졌다. 그게 그것이라는 말로 쉽게 치부해버리게 된다. 모든 것에 결론이 앞서 내려지면서, 그 과정에 관심을 적극적으로 가지지 못한다. 판에 박힌 상투적인 결론으로 과정을 뭉개버리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점차 몸과 머리의 노화에 따라 삶의 자세도 달라진다. 자신의 현재의 것을 절대적 가치로 내세우려는 고집이 강해진다. 촉촉함을 잃어버린 줄 모르기도 하고, 안다 해도 인정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에 대한 수용이 어렵고, 별볼일 없는 것을 자기의 것이라고 내세우기에 바쁘다. 존재의 의미를 억지를 부리는 데서 찾으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춘하추동, 생장염장, 생로병사라고 했다. 내 몸소 그 과정의 단계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되고, 그에 승복해야 된다는 것을 절실히 알게 된다. 내 윗자리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나면, 금새 자신이 초라해진다. 초라하다는 말을 겸손하다는 말로 바꿀 수는 있다. 그래도 주체성에 상처를 입는 것은 사실이다.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조그마한 먼지일 뿐이다.
비가 내리는 차분한 시간에, 생장염장의 법칙에 따라 변해가는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창에 흐르는 빗물을 바라본다.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없다. 그냥 물끄러미 비를 보고, 소리를 듣는다. 나는 이미 가을이다. 더욱 흰머리는 많아질 것이고, 피부는 찌그러질 것이고, 동의받기 힘든 자신만의 생각을 하면서 박제가 되어가고 있다. 비와 내 모습이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어제는 오사카성을 거닐었다. 올 때마다 하는 버릇이다. 그냥 성의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것이 좋다. 햇볕이 유난히 투명했다. 딱 4백년 전 여기에서 벌어진 엄청난 전쟁을 더듬는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과 도쿠가와 이에야쓰가 일본의 주도권을 두고 벌였던 싸움이다. 많은 사람의 피가 젖은 곳이다. 여러 전투의 장면이 보이고, 비명소리가 들린다.
비를 바라보다가, 전쟁을 떠올리니 피가 움직인다. 허공의 별세계의 공간에서 갑자기 인간의 세상으로 곤두박질한다. 꿈틀거리는 인간의 삶속에 되돌아왔다. 우투거니 비만을 바라볼 여유가 없어진다.갑자기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치열하게 싸우며 살았던 수많은 삶의 모습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저 높은 곳의 생장염장의 법칙을 제 몸에 적용시키며, 한가하게 앉아 있을 상황이 아니다. 무엇이라도 바삐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휩싸인다.
공원으로 바뀐 오사카성의 한쪽에는 매화밭이 있다. 수벡의 아니 수천 그루의 늙은 매화나무가 분재처럼 다듬어져 있다. 아무리 매화가 눈 속에서 피어난다 해도 한겨울엔들 가능할까 의심하며, 그래도 밭을 찾았다. 역시 겨울은 겨울이다. 낙심해서 담배를 피우려고, 으슥한 곳을 찾다가 문득 꽃을 보았다. 발밑에 푸른 잡초가 가득한데, 수선화가 한창이다. 하얀 꽃잎 안의 노란 속꽃이 마치 발랄한 웃음을 짓는 것처럼 보인다. 수십 송이는 됨직한 그 꽃들이 반겨 맞는 맑은 소녀로 다가온다. 몸에 생기가 돋는다.
한 송이 한 송이 찬찬히 서로 마주하며 들여보다가, 행여 매화도 피어났을까 하는 생각에 미쳤다. 온 밭을 뒤져보기로 했다. 모든 나무들이 잘 정돈된 채 곧 다가올 봄을 기다리고 있다. 나무마다 품종을 적은 작은 이름표를 달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심을 봤다. 크게 외치고 싶었으나 안으로만 소리를 질렀다.
오직 한 그루에 하얀 매화가 제법 피어 있다. 수백 송이는 될 듯하다. 역시 매화는 매화다. 은은하게 향이 전해온다. 활짝 피어난 놈에서부터 이제 꽃잎을 내미는 놈까지 다양하다. 그 어울림이 너무 예쁘다. 하나하나 향을 맡으며, 모습을 담고, 가만히 들여다보느라 시간을 잊었다. 수선화를 보고, 매화에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일본에서의 매화 속에서는 깔끔하게 기모노를 갖춘 여인이 보인다. 움직일 듯 말 듯한 단정한 몸가짐이 마치 매화의 모습과 닮았다. 분재를 다듬는 솜씨가 여인에게서도 느껴지는 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매화의 향기와 더불어 머릿속에 여인을 보는 것이 너무 황홀했다. 온몸이 봄기운에 휩싸였다.
매화뿐일까. 온 공원을 헤맸다. 역시 노력의 대가는 주어졌다. 벚나무 숲에서 벚꽃을 찾았다. 세 그루의 자그마한 벚나무에 수십 여 송이의 벚꽃이 피어났다. 수줍은 듯 연한 분홍색이다. 이제 왔느냐고 반가운 인사를 하는 듯하다. 역시 소녀와 여인으로 다가왔다.
비가 제법 굵어졌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 온 세상이 비에 젖어든다. 겨울이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봄비로 여겨진다. 지금 오사카에는 한겨울에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다. 마음에 힘이 차오른다. 치열한 전쟁과 수줍은 꽃을 떠올리면서 머무름이 움직임으로 바뀐다. 오히려 오늘은 햇빛보다도 비가 더욱 좋다.
세상에는 항시 예외가 있다. 아니 예외가 아니라 그 나름의 또 다른 법칙일 수도 있다. 춘하추동의 엄연한 자연의 질서가 모두를 다스린다고 하기는 어렵다. 겨울에도 상록수가 있고, 꽃이 피어나고, 또 촉촉한 봄비가 양력 정월 초에 내린다. 하기야 획일적인 법칙에 지배된 세상은 재미가 덜할 것이다. 자연과 인문을 굳이 일치시키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자연은 자연대로 움직이고, 사람의 세상은 그와 달리 그 나름대로 돌아간다. 어쩌면 자연이나 사람이나 제 꼴값을 하는 것이라 해도 될 성싶다.
새해의 벽두에 꽃구경을 하고, 비를 바라보며 한껏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지난 시간의 좁은 일례로 앞날을 쉽게 예측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다가오는 모든 날이 새날이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이다. 낡은 것을 말끔히 씻어내고, 새로운 날을 맞이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오십 중반을 넘어선 몸을 안타까워하며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기에 앞서, 그냥 앞만 보면서 사는 것이 괜찮겠다. 생로병사의 순환을 미리 적용하지 말고, 직선으로 가자. 설사 돌아오면 그 자리라 하더라도, 그냥 무시해버리는 무모함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 제 나름의 힘에 의한 파격이 아름다울 것이다.
종일 이렇게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몸과 마음이 이 비에 흠뻑 젖어, 피는 더욱 맑아지고, 가슴은 부풀어 오르기를 바라서다. 새로운 날에 대하여 마음을 활짝 열고,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촉촉함이 이 비로 말미암아 만들어지기를 비는 간절한 마음에서.
2017. 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