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도 가냐?’
승욱이의 전화 한마디가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금년 여름은 이상하달만큼 주말마다 비가 와서 이번 천렵은 천상 빗속에서 소주잔이나 기울이다 올 것 같은(뭐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조금은 떱떱한 예감도 들었다. 하지만 우리 김주동 대장의 단호한 명령에 신뢰를 갖기로 했다. ‘돌격 앞으로’
아침 8시가 조금 못되어 승욱이가 도착했고, 바람난 아낙이 샛서방이라도 만나러 가는 것처럼 그렇게 집을 나섰다. 승욱이와 동행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는 말이 거의 없고 남의 말을 잘 들어준다. 땟국이 흐르는 벙거지에 별로 이쁠 것 없는 외모지만 승욱이는 꽤나 삼삼한 미덕을 갖추고 있음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시원찮은 네비 탓에 청평IC까지 가느라고 조금 돌아가긴 했지만 10시30분경 목적지에 다다랐다. 불어난 물속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영돈이가 반가와 그를 향해 손을 번쩍 쳐들었다.
부랴부랴 짐을 풀고 영돈이와 합세했다. 비 온 뒤라 수량도 많고(당연히 물살이 세고) 열심히 해대는 시침질에도 반응이 없다. 오늘의 쉐프인 규운이에게 어획고를 장담했었는데 이러다간 물고기를 사와야 할 지도 모른다는 개념없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위아래로 분주히 오가며 요란을 떤 탓에 그래도 물고기와 수인사를 나눌 만 하고 먼저 온 영돈이가 제법 조과를 올려 매운탕 한그릇은 나오겠다는 자위를 하고 있는 참에 주동이에게 전화가 왔다. 잠실팀이 도착해서 막걸리 한잔하고 있으니 그만 접고 오라는 것이었다.
주동이, 규운이, 승진이, 정순이, 태형이. 반가운 얼굴들이 파전에 막걸리를 한잔씩 하고 있었다. 예년에 비해 다소 조촐한 듯 했지만 어떠랴 싶었다. 정순이는 생전 써보지도 못한 루어 낚시대를 펼쳐 들고 쏘가리를 잡겠다고 부산을 떨었고 태형이는 보에 가서 붕어낚시를 하자며 호기를 부렸다. 막걸리 한잔에, 반가운 벗들 탓에 벌써 취기가 오른 탓인지…
숙소에서 준비한 점심을 먹고 숙소 바로 앞에 있는 개울로 입수했다. 예년에는 무릎까지도 올라오지 않던 곳이 허벅지까지 넘실대는 통에 물 가장자리에서 할 수 밖에 없었지만 내리는 빗속에서 그래도 조금씩 손맛을 본 듯 싶다. 오후에 형기, 범수, 성섭이가 합류해서 나름대로 산수화가 완성되었다. 피어 오르는 물안개 속에서 영돈이와 나는 책임량이 있는 대표 조사인 탓에 그나마 마릿수를 채웠고, 형기와 범수가 차기 대표조사의 자질을 보여준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손가락 굵기의 그만그만한 피라미, 갈견이, 쉬리, 누치들이 망태기를 채웠는데 마릿수로는 최고의 어획고인 듯 싶었다.
비가 계속 오고, 물이 찬 까닭에 조금 일찍 물에서 나와 저녁 준비들을 했다. 천렵대장이 워낙 짜게 굴어 찬거리를 제대로 준비 못했다고 규운이가 투덜거렸지만 엄살인 것 같았다.
성섭이와 승욱이가 연기를 피해가며 바비큐를 굽는 동안 나머지들은 매운탕을 만들고 상을 차렸다. 예년과 같은 자리, 비슷한 멤버에 선배님들이 빠진 것이 작년과의 차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비가 온 탓인지 강가의 저녁은 제법 서늘했다. 매운탕이 보글거리며 끓는 동안 막걸리와 맥주 소주를 돌려가며 만찬을 시작했다. 1년을 기다린 저녁이라면 아무래도 과장이런가?
주종이 소맥에서 군납양주로, 마호타이와 일본 정종으로 진화를 거듭하는 동안 반백의 소년들은 손가락 접기 게임으로 전투의 양상을 달리했다. 벌주가 날아다니고 전사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취중에 기억나는 것은 유태형과 김범수가 서로 누가 작은가를 놓고 키재기를 하는 통에 모두가 배꼽을 잡았던 것과 골프입문 6개월여의 김형기, 이성섭이 무슨 타이틀을 걸고 대결을 하겠다는 것이었는데 나중에 그 결과와 함께 전리품이 전해 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승진이는 지난 밤에 먼저 출발했고, 영돈이가 새벽같이 일어나 짐을 꾸린다. 그 부스럭 소리에 모두들 일어나면서 한마디씩 내뱉기를 오십이 되니 새벽잠이 없어졌대나 어쨌대나…
주동이가 준비해온 바둑판으로 간만에 한수하고 있는데 아침상이 부른다.
모였는가 싶으면 금방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언제 또 보나 싶으면 한 해가 휘딱 지나 다시 모이고…
어느 덧, 아홉번째 모임이 끝났다. 앞으로 서른번은 개근하자는 비장한 약속들을 나누고 어쩔 수 없이 평생 천렵대장인 주동이의 잔잔한 미소를 마무리로 우린 또 각자의 둥지로 뿔뿔이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