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이태주 조회수 1832 추천수 7 다운횟수 :0
2002/07/18
이스터 섬의 교훈
황폐한 초지 위에 수 백개의 거대한 석상들이 폐허처럼 나뒹구는 신비한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이스터 섬의 모습이다. 망망대해 작은 섬, 수천 킬로미터를 카누로 이동해야 비로소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적막한 섬, 사람도 얼마 살지 않는 잡초만 무성한 척박한 이곳에 수 십미터 높이의 거대한 석상들이 마치 일시에 작업을 중단한 것과 같이, 역사의 종말처럼 나뒹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이집트나 마야, 잉카 문명의 신비나 거대한 밀림 속 앙콜왓의 불가사의와도 견줄만한 이들 석상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처럼 나뒹굴게 된 것일까..
이스터 섬은 1772년 부활절에 네델란드 탐험가에 의해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스터 섬'으로 불리웠고 본래는 라파누이(Rapanui)라는 섬이었으며 지금은 칠레에 속해있다. 남태평양은 아시아와 남미 대륙을 작은 섬들로서 연결하고 있는데 이스터 섬은 광활한 남태평양의 동쪽 끝에 위치한 인구 2700여명이 사는 섬이다. 삼각형의 이 작은 섬에는 닭 말고는 큰 동물도 가축도 살지 않으며 식물군도 극히 제한된 척박한 환경이다. 이 섬은 사화산이기 때문에 해안은 높고 검은 암벽으로 이루어졌고 비치는 한 두 곳 밖에 없다.
이러한 환경에서 사람들은 왜, 어떻게 거대한 석상을 만들 수 있었을까? 인류학자들은 이스터 섬의 몰락을 인류가 맞게 될지도 모르는 문명의 재앙으로 해석한다. 왜냐하면 이 석상들은 자연과 공존하지 못한 문명의 최후를 보여주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총균쇠> 라는 책으로 퓰리쳐 상을 수상했던 제래드 다이아먼드는 이스터 섬의 몰락에 관해 상세히 연구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이스터 섬의 석상들은 사람들이 상상하듯이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이주한 결과도 아니며, 외계인들의 좌초에 의해 생긴 것도 아닌 과거 폴리네시안들의 문명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스터 섬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와 고생물학적 연구 결과 이 석상들은 1200년대에서 1500년대 사이에 만들어졌고 당시에 이 섬에는 7천에서 2만명 정도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거대한 석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원과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정교한 정치 조직과 종교문화가 전제되어야 하며, 밧줄과 운송수단으로 쓸 거대한 나무들이 많아야 했다. 실제로 꽃가루 분석 결과 당시에 이스터 섬에는 거대한 야자수와 아열대 숲이 울창하였고 온갖 물새와 어류들이 풍부했으며 고래잡이가 성행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최초의 폴리네시아 정착인들은 비옥한 토지와 숲, 새와 어류, 풍부한 식량과 건축재료를 지닌 낙원에서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문명과 정치조직이 발달하면서 숲과 자원을 급속히 파괴하였고, 자연이 재생될 수 없을 정도의 석상 '개발'을 추진하여 결국 나무도 사람도 새도 석상도 몰락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스터 섬도 슬픈 남태평양 역사의 한 장면이다. 이스터 섬의 몰락은 문명의 몰락이며 지구의 최후와도 같은 흑백의 영상을 남긴다. 남태평양은 사라지는 섬들과 사라지는 문명, 사라져가는 인류 문화의 다양성을 그대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