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하게 도시는 물기에 젖어 있다. 소리 없이 비가 내리고 있다. 맑은 새소리만이 정적에 어울리게 리듬을 일으킨다. 蘇州의 비 오는 날이다. 온갖 공력을 들여 가꾼 拙政園은 비가 와야 제멋을 낼 것 같았다. 지금 그 도시의 호텔에 머물러 있다. 넓은 정원엔 오랜 세월을 지고 늙은 나무들이 몇 그루 자리를 잡았고, 연못을 꾸며 나름대로 옛 정원의 흉내를 내려고 하였다. 머리를 적시는 정도의 비를 맞으며 나무 밑을 돌아본다. 크기가 다르고 소리도 다른 몇 가지의 새들이 제각기의 움직임으로 살아 있다. 소리는 참으로 곱다. 맑은 꾀꼬리의 소리에 뒤지지 않는다. 이름은 모르겠다. 그 공간에 한가하게 보슬비가 내린다.
자연을 감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세상의 어떤 것이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기는 역시 나름에 달려 있다. 원초적인 동물적 감정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나, 이것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감상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 새소리를 들으며 고향을 생각하고, 비에 젖으며 외로움을 느끼고 이 외로움은 그리움으로 이어지며, 때로는 알고 있는 시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도 된다. 이런 모두를 아울러 이상을 그릴 것이다. 고향과 그리움의 대상, 문화․정서적 바탕은 누구나 다르다. 객관적 사물로 말미암아 유발되는 감상이 저마다 다른 것은 이에 말미암은 바일 것이다.
결국 졸정원에 다녀왔다. 점심을 먹은 뒤에 혼자 택시에 올랐다. 서툰 발음에도 운전사는 곧 알아들었다. 비가 오는 날의 졸정원, 한번 즐겨보고 싶었다. 모든 것이 낯설어 다소 두려움에 찬 마음을 지닌 채 정원에 들어섰다.
입구에서부터 국화의 멋이 한껏 뿜어 나왔다. 낮은 키에 커다란 송이를 이고 있는 게 균형미를 잃은 듯해서 불안하기는 해도, 갖은 색상과 모양은 그런대로 볼만하였다. 더구나 돌과 어우러져 풍치가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역시 국화의 색이 화려하였다. 비는 오는 듯 마는 듯 잔뜩 찌푸린 날씨다. 太湖에서 가져왔다는 기기묘묘한 돌이 대지의 높낮이와 수목으로 꾸며져 인공미를 잔뜩 내뿜고, 거기에 국화의 색은 화려함을 더했다. 가을의 빛이 역력한 정원, 여전히 물은 굽이침이 없이 잔잔하게 고여 있다. 연잎은 거두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굽이굽이 곡선을 따라 물과 돌, 그리고 정자를 비롯한 건축물들이 한데 옹기종기 모인 공간이다.
생각한대로 혼자 오길 잘 했다. 다른 관광객이야 많다 하더라도 억지로 설명을 하는 안내자도 없을뿐더러 발길을 재촉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내 발길에 모두를 맡길 수 있었다. 물이면 물을 바라보고, 어느 정자든 앉고 싶으면 앉았다. 벽면에 걸린 여러 글귀를 찬찬히 읽으면서, 각각 건축물에 붙은 이름을 음미하면서 그 의미를 되새겨본다. 만든 사람의 의도를 짐작해보기도 한다. 빗소리를 듣는다는 ‘聽雨亭’은 마음을 잡았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듯한 날에 어울릴 듯해서다. 역시 비는 홀로 소리를 내지 못한다. 정자 뒤편에는 파초의 너른 잎이 가득하다. 주위와 다르게 아직 푸르름을 그대로 유지한 채 벽에 기대어 청춘을 자랑한다. 소리는 없다. 비가 떨어지지 않았다. 파초 잎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들으며 바둑을 두고자 했던 것이 지은 자의 뜻이렸다. 참 한갓진 생각이다. 누군가의 시에 표현된 고승과의 바둑을 염두에 두었다고 설명되어 있다.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할 수 없다. 발길의 순서를 무시하고, 서리를 기다린다는 ‘待霜亭’, 왕유의 시를 빌었다는 ‘望山亭’, 주위의 매화를 감상할 요량으로 지은 ‘香雪堂’, ‘온갖 나무가 우거진 속에 새들이 노니는 곳’, 가물가물 떠올리기 힘들다. 흐릿한 물속에는 붉은 잉어들이 한가롭다. 퇴색의 잎들이 물 위에 떠다니고, 곧 가라앉을 듯한 배에 올라 연신 잎을 건져내는 사람은 표정이 없다. 다 가을의 고요한 쓸쓸함일 게다. 국화는 온 정원에 가득하다. 종류는 한정되어 있더라도 나름대로 꾸미느라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
높은 곳이면 다 올라본다. 그리고 앉아 주위를 살핀다. 오밀조밀한 풍경이 대충 한눈에 들어온다. 각도에 따라 장소에 따라 나름의 풍치가 있다. 커피 한잔을 사 마시며 담배를 피우는 여유 속에, 언뜻 화려함이 지나쳐 절제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고운 색깔을 너무 많이 써서 천박해져버린 그림과 같이 말이다.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각기 고귀함을 다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일정 정도의 시간이 지나니 감정이 무뎌져 더 이상의 감흥이 일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의 리듬이 너무 빠르지나 않은지 모를 일이다. 하나의 정자, 풍경을 며칠을 두고 감상해야 옳을 듯하다. 한날에 모든 것을 다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정제된 멋이 느껴지질 않았다. 짙게 화장한 여인네의 모습이 연상된다.
게 중 높은 곳에 올라 주위를 살펴보면 유독 눈에 띠는 하나가 길을 따라 지은 지붕이다. 비가 오더라도 전혀 우산이 필요 없게 하였다. 그 곡선이 한 마리의 용과 흡사하다. 적당히 굴곡을 지으며 온 정원을 휘감고 있는 용이다. 많은 사람들이 용의 뱃속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는 셈이다.
이렇다 할 산이 보이지 않는 곳, 물길이 이리저리 둘려 있는 곳, 이곳에 이상향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 진짜 지은 자의 뜻일 것이다. 제 스스로 정치에는 능력이나 관심이 없다는 뜻으로 이름을 짓고, 옛 시구에서나 느낄 수 있는 풍경을 현실에 짓고자 했을 것이다. 황량한 들판, 물에 젖은 곳에 산을 만들고 계곡을 만들고, 무릉도원을 지어 놓았다. 거기에는 각 계절이 있고, 지역이 아우러졌고, 시간이 있고, 시와 소설이 있다. 비와 구름, 서리와 눈, 꽃과 나무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객관적 시간을 잠시 잃어버려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작은 공간에 모든 것을 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역시 가을이다. 은행잎은 노랗게 물들었고, 국화는 정점을 지났다. 습한 바람이 차갑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곳곳의 단풍잎은 제법 그 자태를 드러낸다. 비파나무엔 초라한 꽃이 피어났다. 그런대로 향기를 품어댄다. 그러나 그 꽃의 색깔이나 향기조차 가을을 머금고 있다. 사시사철 푸른 대나무는 역시 푸르다. 그러나 줄기는 누렇게 바랬다. 5월의 그만큼이야 하겠는가. 한쪽 구석에는 원앙의 무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구색을 갖추느라 기르는 모양이다.
국화 향기 자욱한 화려한 정원에서 어김없이 외로움이 스며든다. 가슴이 저릴 듯한 감정이 스친다. 가족이다. 할머니가 떠오르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생각난다. 같이 하고픈 마음이 절실해진다. 멋진 경치를 혼자 누리는 것이 아쉽다기보다는 차가운 바람에 찾아든 내 외로움 때문이다. 그리고 집사람과 아들 녀석이 보고파진다. 항시 옆에 있는 이들이다. 새삼스럽게 가족의 덩어리에 생각이 미친다. 이 세상에 던져져 살아가는 동안 그토록 소중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고 말이다. 각처에 새겨진 두보, 이태백, 왕유 등등의 문인들이 있으나, 이들과의 거리는 상당하다. 그 태백이 ‘春夜桃李園序’에서 읊었듯이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이 가장 소중할 것이다. 두어 시간이 더 지났나보다. 공기는 더욱 서늘해지고,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빨라진다. 혼자 거니는 이가 없다. 이것이 더욱 외로움을 더한다.
주섬주섬 발길을 되돌리며 무언가를 찾는다. 무슨 감상이 들었는가를 더듬어본다. 잉어들의 뜀박질에 고요함이 깨진다. 무릉엔 아무래도 외로움이 가득할 것 같다. 그래서 술이다. 흥취엔 술만 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다 언뜻 여기에 흡연을 하는 정자를 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술이 그 외로움을 떨치는 매개물이다.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같이 취해버리는 것이 그래서 필요했으리라. 결국 외로움 때문에. 혼자 마시는 술이 어디 가치나 있겠는가. 괜한 감정에 생채기를 낼 뿐이지. 한담서정이 어디 쓸모가 없겠냐마는 웃고 떠드는 흥취에 비하겠는가. 웃음소리가 그리워진다.
화려함에 넘치는 졸정원은 가족과 친구를 그립게 한다. 아마 꽃으로 뒤덮인 봄날에도 그럴게다. 소나기가 쏟는 여름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함께 하는 즐거움이 이상이다. 외로움은 그 소중함을 일깨우는 양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지은 자는 홀로 노닐었을까. 정서적으로 통하는 친우들이 없이는 힘들지 않았을까. 졸정이야 역설적인 갈망의 표현이다. 화려한 권세의 가운데서 머물고 싶지 않은 자 누구겠는가. 그 욕망이 이렇게 하나의 정원으로 드러났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누구나 누구와 함께 해야 한다. 졸정원은 허망한 욕망을 달래려는 아쉬움의 결과이다. 그래서 더욱 처연함에 사로잡힌다. 졸정원 그것으로 위안될 수 없는 처연한 것이 그래도 남아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