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하나를 늘리기 위해 잡스런 짓을 또 한번 한다.>
나이가 들면서 때로 더욱 성급해진다. 차분히 기다리지를 못하겠다. 리듬이 좀 늦다싶으면 벌컥 화가 치밀기도 한다. 이런 기질이야 타고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견디고 참아야 하는 일을 처리하는 기관이 노쇠해지면서 찾아온 증세의 하나라고 여긴다.
삼월이 되어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정말 봄이 온 것이다. 아직까지 꼭 새 학기가 시작되어야 한 해도 시작된다는 착각을 하고 산다. 양력으로 해가 바뀌고, 설날을 지내고, 또 입춘과 우수를 지내면서 이미 새해인지는 오래다. 그러나 정서적으로는 삼월이 되어야 비로소 해바뀜을 인정한다.
짬을 내어 공원을 둘러본다. 산수유 꽃망울은 부풀고, 매화가지에도 꽃빛이 보인다. 양지바른 곳에는 영춘화가 피었다. 개나리와 비슷한 모양이다. 가지를 늘어뜨린 생김새도 같다. 서너 송이 노란 빛이 사랑스럽다. 일찍 피어나 소중하기도 하거니와 가여린 모습이 한없는 동정을 부른다. 마음마저 소심해진다.
삼월과 함께 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참을 수 없다. 조절기관이 고장나버린 것이다. 며칠 기다리면 막아도 올 봄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남으로 방향을 잡는다. 잔뜩 바람이 났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를 춘하추동 대신 風雨霜雪이라고도 한다. 역시 봄은 바람이다. 따뜻한 바람이 어찌 나뭇가지나 땅 위에만 불소냐. 처녀들의 가슴에도 스멀거리고, 중년의 가슴도 헤집는다. 아가씨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나물들이 지천에 널린다. 바람이 나면 누구도 막기 어렵다. 설레임과 허전함을 달래기 힘들어도 그냥 나돌아야 그나마 견딜 수 있다.
짙게 내리는 구름을 이고 길을 나선다. 곧 빗방울이 보이겠다. 역시 성질이 급한 놈이 바람도 먼저 나는가보다. 길은 한산하다. 회색의 산을 가로질러 남으로 남으로 달린다. 어둠이 내리고, 오가는 찻빛에 긴장감이 더한다.
대전을 지나 금산에 이를 즈음 비가 내린다. 방울방울 차창에 부딪는다. 다소 경직된 마음이 풀리고, 봄비에 녹아든다. 잠시 들러 커피 한잔을 꺼낸다. 봄비를 맞으며, 커피향과 함께 피우는 담배맛이 그만이다. 약간의 우수에 젖은 듯한, 가벼운 서글픔에 잠긴 듯이.
내려갈수록 더해진다. 젖은 길에 두려움도 있으나 좁은 차안의 따뜻한 평온이 즐겁다. 박인수나 김추자, 또 장사익까지 불러내는 봄비를 흥얼거린다.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면, 나 혼자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 실연을 당한 것도 아닌데 그 가락과 내용이 좋다.
덕유산을 지나 지리산 자락을 감아돌 때는 굵은 비가 떨어진다. 휴게소가 보일 때마다 커피를 꺼낸다. 입안은 텁텁해도 마음이 맑고 촉촉하다. 오직 앞의 불이 닿는 곳까지만 볼 수 있고, 주변은 까맣다. 돌아볼 여유도 없다. 입안에는 커피 아니면 담배, 아니면 봄비의 가락이다.
북인지, 남인지 모르고 그렇게 내달려 닿은 곳이 통영이다. 내친 김에 바다를 건․너려다가 그래도 밤이 꽤 깊었고, 숨도 돌릴 겸 일단 멈추어 섰다. 우산이 없으면 곤란할 정도다. 항구의 맛집 대부분은 불을 내렸고, 시장기를 달래기 쉽지 않다. 곰장어 구이에 소주를 한잔 하고 싶었으나 이 날은 봄비의 맛으로 만족해야 했다. 사실 산 곰장어 맛을 즐기러 여기를 골랐다.
아침의 빛이 희미하여 창을 열어보니 비가 내린다. 항구에 정박한 배들이 출렁거린다. 공기의 맛이 상큼하다. 해장국으로 요기나 하려고 두리번거리니 곰장어집 불이 환하다. 아침을 먹는 사람이 많아 일찍 문을 연다고 한다. 망설임 없이 자리에 앉았다. 아침부터 소주를 들이켜야 할 모양이다. 저녁에 하지 못한 일을 이른 아침에야 즐긴다. 껍질을 까지 않고 그대로 구운 곰장어는 언제 먹어도 일품이다. 향은 두 말이 필요 없다.
그래도 아침이라 곡기를 넣어야겠기에 물어보니 봄이라 도다리쑥국이 제철이란다. 커다란 도다리 몸통 두 덩어리에 갓 자란 쑥을 넣은 국물이 아닌 게 아니라 봄맛이다. 된장이라야 어울린 줄 알았는데, 바닷가에서는 이리 먹는가보다. 산골의 봄맛은 바닷가와 좀 다르다. 하기야 봄이 어디 산과 들에만 오겠는가. 바다에도 찾아든다. 소주를 곁들여 향기로운 생선 한 점, 국물 한 숫갈, 번갈아 바삐 입을 움직이다보니 아침인지 점심인지 모르겠다.
잔잔한 비에 젖은 항구에서 고소한 생선구이와 쑥맛을 보는 것으로 새날은 희망차다. 벌건 얼굴로 남쪽이 바라보이는 높은 공원에 오른다. 멀리 한산도, 비산도, 국도, 연화도 등등의 봉오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선의 절벽에는 푸르름이 짙다. 보리수 잎이 무성하고, 넝쿨나무들이 겨울을 견디고 새 빛을 머금었다. 가끔 우람한 소나무가 버티고 있다. 바위에는 가볍게 파도가 부딪힌다. 자잘한 쑥들이 보인다. 추위에 겉잎이 상한 붉은 동백이 그래도 봄맞이 노릇을 한다. 뚝뚝 떨어진 꽃송이들도 보이고, 나무에 달린 것들도 꽃모양을 갖추었다. 저쪽 누런 잔디를 배경으로 노란 빛이 보인다. 틀림없이 산수유다. 젖은 꽃에서는 향이 가늘다. 역시 봄은 남해에 먼저 들렀다. 바다의 때깔마저 봄빛이다. 한껏 숨을 들이쉬어도 거침이 없다.
다리를 건너니 여기는 정말 봄 천지다. 길가 여기저기 소나무의 여유로운 자태가 그렇고, 가로수 삼아 심은 동백나무에는 잔뜩 꽃들이 달려 있다. 동백은 봄의 여느 꽃처럼 가녀린 맛이 덜 하다. 겨울을 견딘 노고를 고스란히 안고 무겁게 피어난다. 그저 남향의 상징처럼 눈여겨 볼 따름이다.
상당한 넓이의 섬이라 남으로 내달아도 괜찮다. 배를 만드는 우람한 기중기들이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별천지다. 언덕 중턱마다 하얀 빛이 무더기로 나타난다. 매화다. 흰 매화가 대부분이고, 간혹 붉은 매화가 수를 놓았다. 섬을 치장이라도 하려 했는지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멀리 눈을 놓으면 소나무와 매화요, 가까이 하면 동백이다. 그러다가, 줄지어 선 동백 아래 파란 새싹이 눈에 띤다. 오복하게 뭉뚱거려 내민 양이 무엇인지 알겠다. 수선화다. 아니나 다를까 게 중에 몇 송이 꽃을 피웠다. 고개를 숙인 노란 꽃이 영롱하다. 맑은 처녀를 만난 듯이 반갑기 그지없다.
눈앞의 비스듬한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위로는 아직 겨울빛을 벗지 못했는데, 점점이 소나무가 수를 놓았고, 그 아래로는 매화가 무리 무리 피어났다. 대나무도 숲을 이루어 가는 바람에도 일렁인다. 풍성하다. 바로 보이는 수선화를 즐기려 속도를 내지 못하겠다.
굴곡의 해안선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시간 여를 달린다. 안으로 굽은 곳에는 작은 마을들이 있다. 위에서 내려보는 풍광이 좋다. 이제 구름도 벗겨지고 햇살이 보인다. 먼 바다에 반사되는 빛이 눈부시다.
여차라는 곳에 닿는다. 몽돌 해변의 하나가 있다. 강변의 돌밭은 이미 익숙하다. 그러나 바닷가의 돌맹이들은 신비롭다. 동글동글 그만그만한 모양이 몇 억년을 굴러 만들어졌을 것이다. 무심한 돌맹이에서 느끼는 세월의 길이는 더욱 인생을 덧없게 한다. 찰나의 순간을 짬내어 이런 모습으로 인연이 되어 억겁을 만지작거린다.
아직 찬 바람에도 따스한 햇살을 안고 돌밭에 앉아 본다. 지금도 오르내리는 파도에 돌맹이 구르는 소리가 우렁차다. 물살의 리듬에 따라 좀 둔탁한 소리가 여느 음악보다 낫다. 파도소리와 함께. 돌맹이를 갈고 갈아 모래를 만드는 중이다. 이렇게 또 몇 억년이 지나면 모래밭으로 변할 것이다. 이놈의 우주, 아니 자연의 크기와 시간에 정말 삶이 허망하다. 상상조차 어렵다.
물가에서 기어올라 절벽 위 길에 들어선다. 비포장이다. 신작로라고 하면 되겠다. 그래서 더욱 운치가 있다. 어차피 속도를 내기는 힘들다. 아래로 드넓은 먼 바다와 땅의 절벽에 두려움이 몰려온다. 자꾸 안쪽으로 몰린다. 행여 떨어져 죽을까 찰나의 인생이 절박하다.
올라 능선이 지어진 곳에 전망대가 있다. 알맞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바람만 현실일 뿐 앞은 선경이다. 햇빛에 반짝이는 푸른 바다에 몇 점의 섬들이 귀엽게 보인다. 속세의 찌든 때를 벗어버린 영락없는 선경의 빛이다. 맑은 공기가 허파에 드나들고, 선경이 눈에 들어와 꿈틀대는 벌레가 나비로 되는가 싶다. 봄맞이를 제대로 하는구나 싶다가도 이내 기준점을 잊어버린다. 긴 세월과 때벗은 풍광에 녹아버려 존재를 망각한다.
왼쪽 산 위에 오르고 싶다. 더 멀리 보고파서다. 회색과 갈색의 산이다. 간혹 소나무가 수를 놓았다. 경사가 제법이다. 가까이 오리나무에 연두빛이 선명하다. 꽃을 피웠다. 오리나무가 버들보다 먼저다. 산골에서는 거의 같은 시기에 피어난다. 여기에는 버들이 없다. 오리나무가 견주지 못해 홀로 자태를 뽑낸다. 이른 봄 굶주린 벌들을 먹여 살린다. 오리나무꽃에 벌을 치시던 부모님이 보여 잠시 우울해진다.
산을 포기하고, 커다란 섬 하나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오던 길로 돌아가나 앞으로 돌아가나 그 자리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반복하고, 오르고 내리기를 또 되풀이한다. 한 마을에 들어서니 아낙들이 시금치를 다듬는다. 살짝 데쳐 된장과 참기름으로 버무리면 봄을 먹을 수 있는데, 입맛만 다신다. 코와 눈으로의 봄에 만족해야 했다.
섬에서 나와 머뭇거리다 억지로 밥을 청한다. 아무래도 산곰장어와 도다리쑥국에 비기지 못한다. 소주 두어 잔으로 환각에서 깨어나 길을 나선다. 오는 길가의 군데군데 대숲이 유난히 푸르다. 주위의 모두가 피어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 사시사철 푸르니 이즘에 더욱 제값을 한다. 햇살을 한껏 담은 댓잎의 흔들림에 마음이 포근하다.
지리산 어귀에 다다라 또 하나의 승경을 본다. 어제 내린 비가 산 위에서는 눈이었나보다. 봉오리마다 흰 눈을 가득 머금었다. 밑은 봄이고, 위는 겨울이다. 알프스의 사진 하나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그와 다르다. 손에 잡힐 듯 친근하다. 잠깐 마술을 부리는지, 아니면 어린아이의 눈길을 끌기 위한 어릿광대짓처럼 귀엽기 짝이 없다. 쌓인 눈의 양이 상당하다. 소나무 가지가 늘어진 듯 보인다. 덕유산에 이를 때까지 같은 경치가 좌우로 계속된다. 다 봄에 젖어 있는데, 눈만 겨울이다. 김추자와 이숙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충청도로 접어들면서 속세로 돌아왔다. 옆에 달리는 차가 조심스럽고, 곳곳에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 보인다. 긴장이 된다. 풀어진 마음이 저절로 되감아진다. 대전 쯤 지나면서는 바로 전의 풍경과 정서가 잊혀진다.
성급하게 봄을 맞으러 나선 것은 참 잘한 일이다. 먹는 게 남는 것이듯이 지은 것이 남는다. 괜한 시간 뒤척거림에 비하면 말이다. 봄의 바람이 먼저 가슴에서부터 일더니, 나돌아다니니 좀 달래지는 듯하다. 이내 겨울로 돌아오고야 말았지만. 꿈속의 봄처럼 몇 시간을 봄에 취해 있다 깨어난다. 정말 남쪽 바다에는 봄이 왔다. 와! 봄이 온다!
한반도는 참 잘 만들어졌다. 행여 동서로 길었으면 어쨌을까. 하늘이 그래도 옥을 빚듯이 때깔을 내고, 남북으로 길게 늘여놓아 천만 다행이다. 주변에 바다를 배경으로 깔아 더없이 빛난다. 금수강산 저 남쪽 바다에는 지금 꽃이 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