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도에 가슴이 체한 듯 답답함을 자주 말씀하시는 어머니를 병원에 자주
가시게 하였습니다. 중소병원들을 다니면서 위장장애 또는 화병 등이 좀 있어서
그렇다는 진단으로 양약, 한약 등을 드시게 하였으나 별 차도가 없어서, 젊은 시절
고생이 많으셔서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 어린 시절 자주 병마에 시달렸던 아버지를 대신하여, 빈번하게 가정을 책임져야 했던
고생의 시간들이 어머니를 힘들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평범하게 매월 월급을
받는 직장남편의 주부가 가장 부러웠다고 하셨던 어머니였습니다.
2005년 말 병원진단을 받으러 갔다가 뭔가 좀 이상하다는 의사가 큰 병원을 가보라
하여 분당 서울대병원에 가서 정밀진단 결과, 폐암3기말쯤 된다는 진단이 나와,
그래도 수술을 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의사의 소견으로 2006년 1월15일 첫 수술을
시작으로, 2차 폐수술, 지속적인 항암치료에 의한 고관절 약화에 의해, 2회 고관절 수술,
그러면서 3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매월 정기검사 그에 따른 항암치료가 계속되었으나
조금씩 조금씩 악화되는 어머니를 보면서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는 제 자신이 무능하고
원망스럽기만 하였습니다. 더욱더 답답하게 하였던 것은 담당의사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환자에게 큰 힘이 될텐데, 무덤덤하고, 무성의한 태도에 대해서도 대응할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최근 들어 거의 식사를 못하시고, 물만 드시는 어머니를 어찌할 수 없어서 지난주
이천의 노인요양병원에 모셨는데 정성스럽고 따뜻한 병원이었지만 너무 늦었나 봅니다.
22일 밤 11시경 병원으로부터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함박눈이 내리는 밤길을 달려
갔는데,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는 상태였고, 결국 23일 새벽 4시40분에 가족들과의 인연을
멀리 하셨습니다.
5년 전, 제가 지금 정착해서 살고 있는 경기도 광주에 아파트를 마련하여, 그래도 자주
뵐 수 있고, 제가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저와 가까운 곳에 사실 수 있도록
하였고, 2년쯤 사시다 발병 후 병간을 위하여 3년간 제 집에서 아내가 보살펴 드렸는데
아내의 정성도 무위로 끝났습니다.
생전의 유언대로 화장을 하고, 분당 시안의 납골묘에 안치하고 돌아 오면서,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지 모르지만, 수술을 하지 않고 자연치료 방법을 택했으면, 또는
수술 후라도 항암치료를 하지 않고 민간요법을 썼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김주동, 오원영, 이성섭, 박상훈, 송정순, 변형균, 김성희, 김정철, 정우종, 최규운,
이맹수, 오주영, 김원기, 최승필, 박인호, 소영일...
바쁘신 와중에도, 찾아주셔서 위로해주시거나 위로의 말씀을 전해주신 것에 대해
찾아 뵙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하나 이 글로 대신함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2008년 12월 26일 선 계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