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고 누군가 그랬습니다.
자정너머 자꾸만 시계를 들여다보는 나는 행복하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 행복하지 않음의 원인 제공자는 막내 딸 예랑이 입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친구를 만나러 나간 맹랑 소녀 예랑이는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들어와서
한다는 이야기가 친구 부모가 찜질방 갔는데 그 친구네 집에서 외박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 기가 막힌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 부부는 당근 한목소리로 단호하게 외박 불가 방침을 천명했지요.
예랑이는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친구 집에서 이야기 나누다 아침 일찍 들어오겠다는 건데 왜 안는 것이냐며 눈동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16살 소녀가 외박을 한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허락될 수 없는 것이고 미리 며칠 전에 양해를 구한 것도 아니고 하루 종일 놀다 자정 무렵 들어와서 외박을 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이성적으로 타일렀습니다.
하지만 친구와 놀고 싶은 감성적 욕망에 사로잡힌 예랑이에게 그런 이성적 충고와 가르침은 거울에 부딪치는 햇빛처럼 반사되며 튕겨져 나갔지요.
이성과 감성은 그 순간 교환 불가의 독자적 성채였습니다.
예랑이는 친구가 집 근처에 있으니 버스 정거장까지만 데려다 주고 오겠다며 허락해 달라고 했고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친구를 너무 너무 좋아하는 예랑이는 A친구와 놀다가 뒤늦게 B친구가 오면 다시 그 친구랑 주욱 밤 늦도록 노느라 공사가 다망해 지곤 하는 것이 버릇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습관이 만들어 질 때 처음에는 실처럼 가늘지만 그게 반복되면 밧줄처럼 굵어져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는데 예랑이가 딱 그 짝이었습니다.
친구 만나서 노는 것을 중독 수준으로 좋아하니깐 이렇게 야밤에 뛰쳐나갈 용기도 생기는가 봅니다.
이계삼이라는 교육 평론가가 아이들이 올곧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친구와 골방과 무위’의 삼박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는데, 그 글을 처음 보았을 때는 ‘맞아 아이들은 이렇게 크는 거야’ 하면서 절대 공감을 느꼈는데, 막상 친구가 많아지고 골방이 외박이 되고 무위가 새벽녘 배회 버전으로 우리 딸에게 파도처럼 밀려드니깐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밤안개처럼 사라진 우리 딸은 야식을 먹고 들어오겠다고 과감한 통보를 전한 뒤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시의 주인공처럼 현관문을 하염없이 기다리다 2시까지 얼마나 많이 시계를 들여다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사랑은 기다림’이라는 것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는 나는 더 참지 못하고 예랑이를 찾으러 바깥으로 나갔지요.
지난 겨울, 밤 1시까지 칼바람을 맞으며 버스 정류장에서 예랑이를 기다렸던 기억이 불현 듯 떠오르며 두 번의 계절이 흐른 후 더욱 성숙(?)해진 딸아이를 찾으러 나서는 내 모습이 결연한 것인지 초조해진 것인지 헷갈렸습니다.
전화를 수차례 걸었지만 발신음만 미로같은 케이블망을 따라 미지의 세계로 사라지곤 했습니다.
나는 이제 분노 버전으로 바뀌어 예랑이가 갔을 법한 24시 편의점을 뒤지기 시작합니다.
그 근처엔 어김없이 술에 취한 20대 초반(어저면 10대 후반) 남녀가 무슨 사연이 그리 절절한 지 고뇌에 찬 모습으로 뒤엉켜 앉아 있었지요.
그러니까 토요일 자정이후의 24시 편의점 근처는 10대들의 해방구였습니다.
나는 슬며시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자식들한테 시비가 붙어 험한 꼴을 당하면 어떡하지?
아님 빈 택시에 납치라도 당하는거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상상력이 꼬리에 고리를 물었습니다.
문자 연락도 안되자 분노는 어느 덧 걱정 모드로 바뀌었고 급기야 와이프에게 차를 가지고 나오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아내에게는 ‘곧 갈게’라는 카톡이 몇차례 왔다고 하네요.
하지만 ‘곧 갈께’라는 메시지는 ‘언제 갈지 모르겠는데 당장 지금은 안가’라는 메시지로 해독이 되었고 다시 걱정 모드는 분노와 걱정이 짬뽕된 형태로, 둘 사이를 종 잡을 수 없이 왔다갔다 하는 버전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드디어 나는 최후 통첩을 날렸습니다.
‘아빠 다시 보고 싶지 않으면 맘대로 해라’
‘지금 예랑이는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 아빠가 널 잘 못 키운 것 같다!’
등등 협박과 한탄이 섞인 메시지였는데 다행히 약발이 먹혔지요.
자기가 잘못하고 있다고...죄송하다고...아빠를 다시 봐야 한다고...
그럼 문화촌 아파트 아파트 정문에서 기다릴테니 어서 오라고 했더니 라면 먹고 바로 가겠다고 합니다.
그래 이제껏 기다렸는데 라면 먹는 시간쯤이야 하면서 기다리는데 도통 올 생각을 안 합니다.
시간은 이제 새벽 4시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다시 그 놈의 ‘곧 갈게’ 라는 메시지만 아무런 희망도 주지 못한 채 찍혀 오고 있었지요.
아... 이렇게 예랑이를 동이 틀 때 까지 기다려야 하나? 아님 일단 집에 가서 녀석이 들어오면 따끔하게 야단을 쳐야하나? 우리 부부는 차 안에서 긴급 회의를 하고 결국 집으로 가기로 결정했고 예랑이에게 마지막 통보를 했습니다.
새벽 4시 이후 딸아이를 지척에 두고 집으로 가는 우리 마음은 참 쓸쓸했습니다.
용감한 우리 딸은 새벽 6시쯤 들어왔다고 합니다.
카톡을 보니 5시 35분에 ‘지금 가고 있어’ 라는 메시지가 찍혀 있더군요.
그래 이렇게 아무 일(?) 없이 들어와서 다행이긴 하지만 따끔하게 야단을 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아침 운동을 나가서도 줄곧 어떻게 야단을 쳐야 할 지를 고민되었습니다.
20세기 버전으로 종아리를 때릴까... 아무말 없이 굳은 표정으로 당장 나가 라고 소리 칠까...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품어줄까...
첫 번째 두 번째 방식은 교양없어 보였고, 세 번째 방식은 효과가 없어 보일 것 같았습니다.
대신 단호하게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엄격하게 야단치기로 했습니다.
따끔하게 혼내는 동안 맹랑소녀였던 예랑이는 주루륵 눈물을 흘립니다.
부모에게는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었다고, 그 친구에게 위로받고 싶었다고 합니다.
아마 미국 교환학생 가는 거 때문에 적잖이 고민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사랑하는 부모 아니 친구를 두고 이역만리 미국까지 가고 싶지는 않았던 거죠.
그 프로그램이 유익하고 좋은 기회라는 것도 알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우리는 그 결정은 예랑이가 하고 우리는 최대한 지지하겠다고 했지요.
예랑이가 노루 같은 먹빛 눈빛으로 진지하게 약속을 합니다.
다시는 부모 허락 없이 밤늦게 나가지 않고, 아빠의 전화를 회피하지 않겠다고요.
의견이 다를 때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면 서로가 기분 좋은데 고집을 피우면 서로가 힘들어 지는 것이니깐 사랑하는 가족일수록 상대 입장을 존중하기로 약속을 했지요.
문득 중학생은 아직 전두엽이 발달하지 않아 충동이 잘 조정되지 않을 나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아, 그래 아직 전두엽이 발달하지 않은 것이었어...
기다려 주어야지... 기다리는 동안 필요한 건 그냥 곁에서 지켜보고 믿어주는 것이겠지.
아름답게 성장하기 위해 더 많은 ‘앓음(고통)’이 필요할테니 말이야...’
깨어진 꽃병이 끔찍한 것이 아니라 꽃병은 깨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끔찍한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