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힐 듯 보이던 국망봉이건만…
보이는 것과는 달리 저만큼의 거리가 또 얼마나 고단한 거리인지는 이제 다 안다…^^*
다행히(^^*)…국망봉 턱밑 무명봉에 이르자…강대장이 예를 숙소로 하잔다…
불감청인즉 고소원이라는 말이 딱 이런때를 두고 하는 말일게다…^^
<국망봉 턱밑 무명봉 캠핑장 도착> 6/4일 17:30
묵은 친구들, 좋은 친구들이 좋은 것은…
넌 이거하고, 넌 저거하고…그렇게 똑 떨어지게 명시적으로 업무분장안해도…
어째 엉성한 것 같으면서도 대충 굴러갈 것은 굴러가는 때문이다…^^
누가 누구를 부르고 찾지도 않았는데…
집짓는 근식이를 내가 돕고있고…밥짓는 원기를 회준이 돕고있다…^^
(가오리모양의 저것이 비박용 텐트란다…)
사람마다 재주라는게 있는데…
원기는 찌개끓이는 재주는 별루 없는 모양이다…
제 스스로도 영 시원찮은 표정인데…뭔가 2% 부족하다…
정선생도 옆에 붙어있을 뿐이지…재주없기로는 원기보다 한참 앞서보인다…^^*
사태수습에는 회준이 어머님 솜씨의 묵은김치가 한몫했다…
김치만 더 넣었을 뿐인데…멀국이던 것이 맛깔스런 꽁치김치찌개로 대변신이다…^^
<집짓고…밥짓고…> 6/4일 18:17
6월인데…해떨어지니 슬슬 한기가 돈다…
회준이…배낭에서 주섬주섬 옷가지들을 꺼내며 팔불출이다…
다 마눌님이 챙겨주었단다…자긴 생각도 못한 것들인데…
난…전날 나혼자 알아서 짐챙기고…
새벽에 마눌님 깰까봐 조심조심 밥챙겨먹고 나왔는데…
사람사는 모양새가 참 제각각이다…^^*
국망봉 정기에…얼큰한 한잔 쏘주에…좋은 친구들에…
기분좋아진 두 청년…난데없는 우비형제 라이브무대를 선보인다…^^
<신나는 우비형제 ^^ > 6/4일 19:45
시간이 저녁에서 밤으로 가니…
맑고 밝고 경쾌하게 즐겁던 영혼들이…깊고 그윽하게 서로의 가슴들을 파고든다…
아스피린 먹고 한동안 텐트에서 끙끙 앓기까지하던 강대장도 추스리고 나와 앉았다…
원기가 진지하게 꺼내든 한꼭지에 최삐리가 문득 발끈했다…^^*
국망봉의 도도한 정기 한복판에서…너무 아스팔트스럽다며 한 초식을 펼쳤다…
결국 아스팔트 버전은 채 일합도 맞서지 못한채 국망봉 버전에 꼬리를 내렸다…^^*
<밝은 영혼…깊은 영혼…> 6/4일 21시, 23시
술에 취해…산에 취해…친구들에 취해…비상용(?) 포켓 쏘주까지 끝까지 털어마셨는데…
01:55분이라니…이 시간까지 난 혼자 뭘하고 있었던걸까…^^*
원기의 자는 품새로 보아…원기는 금방 침낭으로 들어간 자세는 아닌 듯한데…
<몽유병? ^^* > 6/5일 01:55
나 혼자 헤롱대는 아침인데…
끝까지 침낭을 빠져나오지 않는 나를 기다려…라면 하나를 따로 끓여주는 강대장이다…
정말 못말리는 최삐리에…훌륭한 친구들이다…^^*
정신차리고 물을 챙겨보니 확실히 물부족이다…
난 물없으면 큰일인데…--;
강대장도 수긍하며…강씨봉까지는 무리이니…그전에 하산키로 한다…
<새로운 두번째 출발> 6/5일 09:20
드디어 국망봉 정상이다…
경기도 내에서 화악산(1,468m), 명지산(1,267m)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산이란다…
옛 이름은 망국산(望國山)으로 후삼국시대에 궁예가 고려 태조 왕건에게 패하여 피난할 때
궁예왕비가 이 봉우리에서 망국의 한을 가지고 멀리 도읍지인 철원을 바라보았다는 전설이 있단다…
<드디어 국망봉 1,168m> 6/5일 09:40
어제는 흐린날씨의 덕을 보아서 그늘없는 방화선 능선길이 아름답기만 했으나…
오늘은 말그대로 땡볕이다…
시원한 물을 마음껏 벌컥대며 머리에도 한바가지 뒤집어쓰고 싶은데…
괜시리 마음만 급해지는 하산길이다…
가는길에…특이한 봉우리 이름을 만나 잠시 웃으며 한숨돌렸다…
개이빨산이란다…^^
포천군 이동면 연곡리 일대에서 바라보면 죽 늘어선 연능이 마치 개이빨같이 뾰죽뾰죽 솟아 있어
개이빨산, 또는 견치봉(犬齒峰)이라고도 한단다...
<개이빨산 1,110m> 6/5일 10:43
민둥산을 앞두고…최삐리…드디어 한계상황이 왔다…
백두대간을 다 끝낸 아줌마들이라던가…
암튼 대단한 아줌마 두 사람이 스쳐갔는데…
난 한심하고 버겁기만 한 상태였다…^^*
민둥산 못미쳐…내가 비장하게(?) 결심을 밝혔다…
아무 곳이건…앞으로 하산길이 나타나면…나혼자 빠질 테다…^^*
강대장 왈…빠질 곳이 없단다…허걱…
못미더워 근식이의 지도를 뺏었다…근데…정말이다…--;
죽으나사나 도성고개까지는 가야할 판이다…
도성고개까지 3Km…
어제는 그 무거운 배낭에도 불구하고 별 것 아니었던 거리였는데…
오늘은 훨씬 가벼운 배낭인데도 아득해보이기만 하는 거리다…
<민드기봉(민둥산) 1,023m> 6/5일 11:55
한낮의 땡볕은 더욱 지열을 달구고…
저만치 하염없이 길어만 보이는 봉우리가 시선을 막아섰다…
이제 남은 물은 300ml…
세 친구들은 나를 위해 물을 포기했다…눈물나게 고마운 일이다…
페이스를 확실히 늦춰서라도…어쨌든 최악인 내 컨디션을 최대한 추스리려고 한참을 쉬었다…
원기와 회준이 저만치 마지막 고개를 오르는 모습은 마치 고난의 순례자처럼 보인다…
근식이는 묵묵히 내 곁을 지키고섰다…
<도성고개로 가는 마지막 봉우리를 바라보며> 6/5일 12:50
<도성고개로 가는 마지막 봉우리> 6/5일 12:58>
죽을둥살둥 겨우겨우 도성고개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은…
강대장 왈…”20여분 가파르게 떨어지는 내리막을 지나면 물이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시골할머니들과 근식이는 같은 부류였다…^^*
길물어보면…”조금만 가면 되여~”하는데…그 ”조금만”은 결코 만만치않다는…^^*
근식이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정선생 왈…”물이 있어야 할곳에 물이 말라있는걸보고…뭐라 할말도 없고…딱히 뾰족한 수도 없으니
그냥 치고내려가는 걸지도 몰라…”
정말 그럴지도 모르지…
언뜻 지도를 보며 가늠했던 거리로 보면 앞으로 남은 거리는 2.5Km…
이젠 희망도 절망도 아무 감정의 동요조차 없다…^^*
무아지경의 휴식중에 강대장에게 전화를 했다…
물 찾았단다…^^
오…하느님…^^
얼마를 더 내려갔을까…
근식이는 안보이는데…조금 앞섰던 회준이가 물을 마시고 있다…
1리터를 다 마셨다며…2리터 물병을 건네준다…
강대장…내 친구지만…정말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산악인이다…^^*
아마…뛰다시피 물을 길어 되짚어왔을 터였다…
계곡이라 부르기엔 너무 얕고 좁은 물길 하나…
하지만…그것 때문에…세상에 부러울게 하나도 없는 황홀지경이 되었다…^^*
시에라컵으로 마냥 떠먹는 물은 말 그대로 생명수인 셈이었다…
<물만난 최삐리…죽다살아나다 ^^*> 6/5일 14:07
이제 남은 거리는 2Km쯤이나 될까…
원없이 물퍼마시고…라면끓여먹고…그렇게 원기회복하여 다시 나서는데…
2리터 물병을 가득채워 가슴에 안는 나를 보고…다들 어이없어한다…^^*
“난 땡볕에 걸을때는…꼭 수냉식이라야 돼…공냉식으론 안돼…”했더니…
원기가…나더러…”세상에 이런일이”에 스스로 제보해서 TV에 함 나가보란다…^^*
하여간...먹을 물도 모자라던 얼마전을 기억하며...
열오른 머리에 원없이 물 끼얹어가며 내려온 마지막 하산길은 행복했다...^^
그 작은 물길이 내려오며 제법 계곡물이 되는데…이름하여 “불땅계곡”이란다…
때이른 피서나들이처럼 여러가족이 놀러와있는 풍경이다…
말하자면 하산길의 종점격인 연곡4리 버스정류장 앞…
근식이가 광덕고개에 둔 차를 가지러갔다올때까지 가게앞에서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잠시 설왕설래…온천들렀다가 일동에서 생맥주 뒷풀이를 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맥주홀짝거리면서도 여전히 멍한 상태의 나를 보고…
원기가…아무래도 IQ가 두자리로 떨어진 것 같단다…
그래…내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다…머리가 오버히트되어서…데미지를 입은게다…^^*
<연곡4리 막걸리 공판장…소박한 뒷풀이> 6/5일 15:58
서울가는 길…
원기가 남은 회비를 돌려준다…
무슨 포상금 받는 기분이다…^^
근래보기 드물게 뒷풀이도 간소한 터에…내친김에 집식구들에게 잘 보이기로 의기투합했다…
돌려받은 회비를…강대장이 비축해둔 적립회비 어쩌구인데…암튼 말도 안되는 얘기로 둘러대기로 했다…^^*
결론은…기분좋은 공돈이니…가족 외식에 보태쓰기로 한게다…^^
근데…김원기…집에 전화한다더니…잘못걸었단다…
IQ 두자리보다 더한 넘이다…자기 집에 전화도 제대로 못하는 친구라니…^^*
이번 산행길이는 총 22.1Km란다…
내가 워낙 행보가 느린터라…그냥 무난한 거리였을텐데…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만큼 힘겨운 둘째날의 산행이 되어버렸다…
산에 가서 뭘 배워오고 어쩌고 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번엔 분명히 배우고 온 것이 있는 셈이다…
하나…물없고 땡볕내리쬐는 종주산행에서 물은 생명수나 다름없다…
둘…그런 산행을 할때는 절대로 전날 술에 쩔 정도로 과음해서는 안된다…
셋…어쩔수 없이 그리 되는 경우를 대비해서…
강대장 같은 훌륭한 리더와…원기, 회준 같은 훌륭한 팀원들일 경우에만 따라나서라…^^*
분명히…좋은 의미로 오래 기억에 남을 산행이었음에…
나같이 한심한 팀원에게 인상한번 안쓰고 짜증한번 안내며 함께해준 친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