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 산행이라 서너명이서 오붓한 산행을 예상했는데
생각보다는 많이 참석 하였다.
신수철, 이제환, 임시경, 김원기, 민형동, 김영돈,
박래순과 그의 사랑
김성우와 그의 동반자
김영훈(3)선배님.....반대쪽에서 산을 올라온 정회준, 최재식
뒷풀이에 참석한
최승필과 그의 정신적 지주
박기주와 그의 평생 팔베개.....
중학교 2학년때 관악산을 처음 가본 후 그날처럼 환상적인 관악산을 본 기억은
없었고 앞으로도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무와 눈과 사람이 뒤섞여 마치 동화속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일요일날 산에 갔던 모든 사람들은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만끽했으리라....
사랑하는 아내와 존경하는 선배님과 살겨운 친구들과.....그리고 눈눈눈눈눈
마치 눈보라를 헤치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전하기 전 비슷한 상황에서
전지훈련을 하는 것 같았다.
후미 그룹은 연주암 옆 깔딱고개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였다.
눈물 젖은 빵이 아니라
눈빨에 젖은 김밥이었다.
서울 막걸리 한사발을 들이킨 후 김밥 서너개를 한 입에 털어 넣었다.
몰아치는 눈보라에 마치 김밥 위에 하얀 설탕을 뿌려 놓은 듯 하다.
한때 초보(?)였던 신수철이가 선두로 박차고 나가면서 산행내내 얼굴보기가 힘들었다.
관악산을 우습게 보고 싸구려 장갑을 끼고 왔더니만 눈에 젖어 손이 시려웠다.
제환이가 자기 장갑을 빌려준다.
와이프를 챙기는 박래순의 모습에서 부부애는 때와 장소를 안가리고 터진다는 것을 보고
혼자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희진씨!! (김성우와 항상 같이 자는 사람)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도 저렇게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에 성우는 참 복도 많다는
생각이다. 뒷풀이때 희진씨 때문에 얼마나 웃었는지 아직까지 배가 아프다.
남편이 부총무인 것에 불만을 나타냈다.
본인이 우신등산반 회장을 하겠단다.
우신 등산반 최초의 여자 회장......가능한 일이다.
여성회원이 많이 참석하면 친구들의 면면을 볼 때 남자들의 참석은 불문가지이다.
김영돈이는 이제 등산인이 아니라 산악인이라 불러야 될 것 같다.
정상 공격에 거침이 없다.
민형동이가 앞장서서 선두를 맡았다. 집사람과 교회가야 되는데 특별히 허락을 맡고
나왔다고 한다. 관악산 등산로를 잘 알아 덕분에 안전 산행을 할 수 있었다.
임시경이 술 먹는 것 처음 보았다. 절주를 하고 있는데 뒷풀이 장소에서 보니 얼굴이
발갛다. 오늘은 기분이 너무 좋아 몇 잔 먹었다고 한다.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뒷풀이 장소에서 만난 부르스 최재식과 쌍곡선 정회준
우리 친구들에게 잊혀져가던 자화상을 발견하게 해준 아름다운 친구들이다.
이 세상은 잘난 많은 사람보다 주위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사람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날의 폭탄은 김영훈 선배님이셨다.
늦게 도착하여 출발이 늦은데다가 아이젠을 준비 못해 산행 초반에는 악전고투 하였다.
그런데 내가 여분으로 가져온 아이젠을 신더니만 마치 날개를 단 듯 산행에
거침이 없으시다.
뒷풀이 2차를 그렇게 말렸건만 기어히 계산하신다.
앞으로 술값 계산하시는 선배님은 무조건 옐로카드를 드려야 겠다.
우신 등산반은 비용에 대해서는 평등해야 한다는 생각은 아직까지 변함이 없다.
산에서는 선,후배 이전에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되어야 한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뒷풀이에 참석한 정숙씨(아침에 일어나는 최삐리가 제일 먼저 보는 사람)는 볼수록 친 누나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 독립투사 아내의 모습이 저러했으리라...
그리고 박기주
몇 십년된 듯한 빵모자 하나 뒤집어 쓰고 오는 모습이 기주가 집사람을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니라 집사람이 기주를 데리고 오는 느낌이다.
사십대 초반 여자 넷이 만나서 수다(?)를 옆에서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
언저리 뉴스보다 더 재미있다.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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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으로 관악산을 처음 가본 때가 중학교 2학년 시절이었다.
옆집 살던 친구와 지금 서울대 쪽으로 올라가 적당한 계곡에 자리 잡고
고체연료로 꽁치찌게 끓여 설익은 밥과 함께 정말 맛있게 먹고
바위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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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말마다 습관적으로 산에 가는 것은
어차피 다시 내려와야 할 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산에 두고 온 또 다른 나를 만나기 위해서 이다.
자신의 한계와 고독을 느끼는 순간
조물주의 손길이 스쳐간 자연의 숨길을 느끼는 순간
그때 바로 새로운 나를 만나는 것이다.
한 평 반 사무실 방에서 두 평 반 내 집 안방에서
세 평 반 삼겹살집 구석자리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자신의 그 무언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이 일요일 마다 하느님을 만나듯이
나는 일요일 마다 하느님과 가장 가까운 산꼭대기에서
하느님을 만난다.
그런데 문제는 나에게 산이 종교라면 친구도 일종의 종교이다.
마찬가지로 아내도 분명 나를 정화시켜주는 크나큰 종교인 것이다.
산과 친구의 두 종교가 부딪히면 거의 막상막하이다.
그러나 아내(넓게는 가족)라는 종교는 그 무엇도 대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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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반의 공식적인 자리는 뒷풀이 1차로 끝이다.
그런데 어제는 1차 순대집, 2차 맥주집, 3차 다시 순대집, 4차 노래방, 5차 Bar
로 이어지고 개별적으로 6차을 간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나는 1차, 2차, 4차의 선별적 참여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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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신 등산반은 신림동 징크스가 있는 것 같다.
작년 30명 이상이 모였던 6월 관악산 야간 산행 후 뒷풀이 때도
순대집에서 시작했는데 어제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 졌었다.
도대체 "순대"가 무엇인가?
"순대"가 무엇이길레 우리를 이렇게 만드는가?
"순대"여 말을 해다오. 자네가 왜 이렇게 우리를 찌그러지게 만드는지?
순대가 대답하는 듯 하다.
"80년도 봄 여기서 원기 너를 처음 만났지...나는 너를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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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 친구도 좋지만 우리에게는 신성불가침의 가족이라는 것이 있다.
어제도 공식적인 자리는 1차에서 끝이 났지만 계속되는 술자리에
내 스스로 많은 사람들의 가정에 누가 된 점 도의적 책임감을 통감한다.
송구스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아무쪼록 우신 등산반이 화목한 가정과 건강한 육체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좋은 모임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속죄의 념을 대신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