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이태주 조회수 4866 추천수 30 다운횟수 :0
2002/02/04
남태평양으로의 항해에 앞서서
흔히들 '남태평양은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낙원'이라고도 하고, 돌도끼부터 모바일폰이 공존하는 시간여행이 가능한 곳이라고도 한다. 또한 남태평양은 인류의 살아있는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인종과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지역이어서 인류학자들이 즐겨 찾아 평생 원주민들과 함께 문화를 관찰하고 실험했던 지역이기도 했다.
망망대해에 새똥을 뿌려놓은 것과 같은 작은 섬들이 흩어져 있는 대양주, 어느 곳이나 산호초와 푸른 바닷물과 바람과 작열하는 태양과 야자수가 어울려 낙원의 이미지를 간직한 곳, '원시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사람사냥'을 하고 '식인종'으로 살고 있다고 믿어지기도 하는 뉴기니의 원시림이 있는 곳, 백인들에게 뿐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또 하나의 오리엔트가 되어 향수와 사랑과 낭만, 자연, 여성성, 순수의 이미지와 의미로 다가오는 지역이 바로 남태평양이다.
그러나 나에게 남태평양은 슬프다. 레비 스트로스가 남미 여행을 통해 문명 세계의 학자 눈에 비친 원주민들의 삶을 <슬픈 열대>라는 불후의 저작을 통해 기록으로 남기기도 하였지만 나에게도 남태평양의 현실은 너무 슬프고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강대국의 핵 실험장이 되어버린 작은 섬나라들, 원조를 먹고사는 사람들, 관광과 개발에 정체성을 잃어버린 주민들, 추장승계를 위해 분쟁하는 사람들, 식민지 경험과 기억이 낳은 날조된 전통과 제도들, 양고나를 먹고 부아이를 씹는 주민들, 혼혈화된 인종과 혼성화된 문화들간의 갈등, 그리고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침몰하는 섬들과 문명의 재앙을 맞은 21세기의 마지막 낙원을 생각하면 남태평양은 분명 슬프다.
나의 남태평양 이야기는 내가 10여년간 파푸아뉴기니와 피지에 대하여 인류학적으로 연구하고 현지에서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체험한 것들이다. 이 지역과의 처음 인연은 우리 정부가 1990년에 유네스코한국위원회를 통해 처음 시작한 한국해외봉사단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필자는 봉사단 신규 파견국을 사전조사하기 위해 파푸아뉴기니와 피지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다. 당시 필자는 선발된 봉사단원들을 국내에서 3-4개월 동안 훈련하여 파견시키는 일과 오지에서 이곳 저곳을 다니며 단원들과 함께 현지훈련을 하곤 했다. 물론 필자는 대학원 시절을 통해 말리노브스키와 같은 위대한 인류학자들의 글을 항상 접해 왔지만 현지에서 느끼는 충격은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에서 느끼는 감동 보다 더했다.
식민지 경험은 이들 순전한 원주민들의 세계를 완전히 파괴하고도 남았다. 도시는 온통 무법 천지와도 같이 치안이 부재하고 지방 도로 곳곳에는 '라스칼'이라고 부르는 떼 강도들이 부시나이프와 총을 들고 나타나곤 했다. 말라리아는 극성이고 주민들의 문맹율과 평균수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참했다. 일자리는 호텔관광 산업과 광산개발, 목재채벌 산업과 같은 환경파괴적이고 수탈적인 산업이 고작이었다. 야자수 열매와 담배 한 개피를 바꾸어 살아가는 사람들, 부아이를 씹어 입 속이 온통 핏빛으로 물든 사람들, 호주인과 같은 백인들에게는 노예처럼 생활하고 있는 원주민들, 산악지대에서는 돼지들과 더불어 사는 처녀림의 원주민들, 크릿켓과 럭비를 즐기는 도시 청년들, 호주의 에버리진들과 연계하여 원주민들의 땅을 회복하자는 독립운동 단체들, 세픽 강가에는 크루즈 유람선이 다니지만 강변에는 박제된 박물관 속에 전시된 문화 유품과도 같이 등가죽에 악어를 세기고 신음하는 원주민들, 노천 나이트 클럽에서 미치도록 춤을 추고는 패싸움을 벌이는 청년들... 더 이상 낙원이 아닌 뉴기니 섬과 다른 남태평양 열도의 현실은 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슬픈 남태평양 이야기는 식민지와 근대화의 격랑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도 없이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고 바쁘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개발도상국 민초들의 공통된 이야기이고 우리들의 과거이고 현재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른 문화 이야기는 자문화에 대한 거울이고 자성이며 문화비평이라고 했던가.
남태평양은 흔히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 마이크로네시아라는 세 개의 문화지역으로 나누어진다. 멜라네시아는 '검은 사람들이 사는 섬'이라는 멸시의 의미가 함축된 말이다. 멜라네시아는 뉴기니섬으로부터 솔로몬군도와 바누아투, 뉴칼레도니아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폴리네시아는 뉴질랜드와 하와이와 이스터 섬을 잇는 광활한 대양의 삼각형 안에 들어있는 작은 섬들을 포함하고 있다. 통가, 사모아, 쿡제도, 타히티 섬과 투발루, 니우에, 토켈라우 등이 이 지역에 속한다. 마이크로네시아는 키리바티, 나우루, 팔라우, 마샬군도, 괌, 마리아나제도 및 마이크로네시아 연방이 이에 속한다. 니우에, 나우루, 투발루와 같은 생소한 국가들은 인구가 2-3만명에 불과하여 수상이나 장관들을 음식점에서 쉽게 만나며, 축구를 하면 공이 바다에 빠져버릴 정도로 면적도 작아서 여의도보다도 작은 나라라고 상상하면 된다.
나는 앞으로 나의 원주민 마을 피지(Fiji)섬의 따마부아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나는 따마부아 마을에서 주민들과 살면서 학위논문을 썼다. 매일 밤 마시던 양고나의 시원 씁쓸한 입맛이 지금도 새롭다. 나는 남태평양에서의 유럽과의 접촉과 전쟁, 토착종교와 기독교, 언어와 문화지역, 오지의 인류학자들, 마가렛 미드와 사모아 여성들, 남태평양의 관광과 문화, 침몰하는 섬들과 마이크로네시아의 비극, 원주민들의 성생활과 축제, 카바(양고나) 마시기와 의례의 세계, 文化誌(ethnography)와 현장연구, 문화 상상력과 남태평양 문화, 식민주의와 문화 제국주의, 글로발리즘 등의 주제로 이야기를 계속하고자 한다.
또한 이스터 섬의 신비와 교훈, 남태평양의 동성애와 성, 피진어와 영어, 남태평양과 혼성문화, 술루와 전통의상, 식인풍습과 전쟁, 희생제의, 역사의 날조와 조상 이야기, 샬린스와 역사의 섬 하와이의 신화, 마리화나와 양고나를 마시는 사람들, 토지제도와 관습법, 추장과 기독교 개종, 유럽인과 인도인 및 아시아계 인종들의 갈등, 관광산업, 코코넛과 돼지와 상징, 음식과 문화, 의례의 상품화, 에로티시즘, 야만과 문명, 친족과 사회조직, 마가렛 미드와 인류학의 대중화, 민족지의 보고와 살아있는 인류학 박물관 등에 대하여도 이야기 하고자 한다.
나는 일련의 글을 통해 각각의 문화지역들에 관하여도 상세한 현지 경험들을 제공할 것이다. 먼저 멜라네시아에 관하여는 파푸아뉴기니와 피지, 솔로몬군도, 티코피아, 바누아투와 콘도미니엄, 이리안쟈야와 인도네시아, 트로브리안드, 솔로몬 프로젝트, 보우겐빌과 이리안쟈야의 지역 분쟁 등의 사례들을 다루게 될 것이다. 폴리네시아에서는 역사의 섬 하와이를 둘러싼 쿡선장과 역사인류학 논쟁, 마가렛 미드 여사와 사모아 논쟁, 남태평양의 대중적 이미지와 관광, 폴리네시아 인류학과 정체성의 위기, 마나와 양고나, 통가와 타히티 섬 등을 다룰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로네시아 편에서는 식민지의 비극과 미국령 군기지, 개발문제와 응용인류학, 마샬군도, 마리아나제도, 투발루, 키리바시, 사이판과 괌제도 등의 개발과 환경 및 문화 갈등을 살펴보게 된다.
필자는 남태평양 이야기를 통해 세계화가 세계사의 주변부인 이 지역에 미치는 사회문화적 영향들에 관하여도 기록하고 싶다. 남태평양의 경험은 인류문명의 현주소를 바라보는 거울이다. 여기에서는 뉴질랜드의 마오리족과 호주의 에버리진 문제, 호주와 뉴질랜드의 원주민운동, 남태평양의 생존위기와 식민지적 문화재현의 재생산, 헤게모니와 이미지, 판타지와 상상력, 글로발리즘과 전통주의, 발전문제와 지속가능한 환경, 텅빈 지구의 1/4 공간화, 핵 실험과 섬들의 미래, 닫혀진 섬과 열린 세계, 인간과 문화의 실험장, 풍토병과 의료인류학, 식민지 정책과 원조, 코카콜라, 비디오와 대중문화, 천년왕국운동과 밀레니엄, 문화 다양성과 생존의 위기, 남태평양의 토착인류학자들을 하나씩 다루게 것이다.
남태평양은 사라져가는 문명과 원시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을 초월하는 다중 공간이다. 남태평양은 우리 문화와 삶의 깨어진 거울이기도 하다. 남태평양 이야기가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이기를 바란다. 침몰할 것 같은 작은 섬들의 이야기가 희망이고 교훈이 되기를 바란다. 슬픈 남태평양 이야기가 이질적이고 낯선 문화를 용인하고 더불어 할 줄 아는 문화담론으로 회자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