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이태주 조회수 3086 추천수 7 다운횟수 :0
2002/02/27
나를 먹으라!
전쟁에서 잡아 온 두 전사의 시신을 메고 오는 것을 보고 마리 월리스가 묻는다.
"이 사람들은 묻으러 가는 건가요?"
"아니 먹을 겁니다"
"이런 잔학하고 바보같은 짓을 언제나 끝낼 것입니까?"
"한 사람을 배로 가져가서 소금쳐 드시겠습니까? 그러면 남편께 작은 돼지 한 마리를 드릴 수 있습니다."
<피지에서의 생활: 식인종 사이에서의 5년>이라는 여행기에 기록된 일지의 일부이다.
흔히 뉴기니 섬이나 다른 세계의 오지 인간들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항상 '식인종' 이야기가 수반된다. 식인종 이야기는 유럽의 선교사들과 무역상인들, 탐험가,학자들과 식민지 지배자들에 의해 지나치게 강조되고 확산되어 마치 오지의 인간들은 모두 '식인종'들인 것과 같이 날조되기도 했다. 서양인들은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원주민들이 문화적으로 열등하고 미개하여 개종이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설명해야 했으며 이러한 작업에서 '사람을 먹는' 원시인들이라는 이미지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남태평양의 원주민들도 지금까지 '식인종' 이야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인류학자들은 식인풍습을 카니발리즘(cannibalism)이라고 설명한다. 세계적으로 카니발리즘은 아스텍, 뉴기니, 마오리족, 이로쿼이족 등에서 대표적으로 발견되었다고 설명된다. 남태평양에서는 아주 다양한 식인풍습이 행해졌다고 보고되고 있다.
뉴기니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장례의식을 통해 조상신과의 결속과 신비한 영험을 지속시키기 위해 시신의 일부를 나누어 먹었다고 보고되고 있다. 특히 조상의 성기를 나누어 먹음으로서 상징적,감정적으로 부족과 조상신간에 완전한 일체를 체험하였다.
피지와 쿡 제도, 마오리족과 마르케스 섬 등에서는 전사들에 의해 식인풍습이 행해졌다. 부족간의 전쟁으로 집단간의 갈등과 증오가 극대화되면 자신이 속한 종족의 용맹성과 대추장에 대한 충성심, 그리고 집단의 결속을 과시하기 위해 상대편 전사들을 잡아 인육을 굽는 특별한 화덕에 구워 먹었다. 물론 이러한 행위는 전쟁의 시기에만 추장의 지시로 행해졌으며 평화로운 시기에는 금기시 되었다. 그런데 서양의 화포와 화약과 전함이 들어오면서 소규모의 부족전쟁은 대규모의 살육전으로 확대되었고 순식간에 한 마을과 부족이 몰살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식인풍습은 전사들의 의례적 행위에서 급속히 학산되고 세속화되어 사람고기 맛(다른 고기와는 달리 전혀 냄새가 없다고 기록됨)을 아는 사람들이 늘고 인육을 찾는 일이 벌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절대 권력을 지녔던 대추장은 추장의 집을 지을 때나 카누를 진수할 때와 같은 특별한 의식을 통해 조상신께 사람을 바치는 희생제의를 올리기도 하였다.
아스텍에서는 매년 약 1500명의 사람들이 이러한 인신공의로 희생되었다고도 보고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문명도 인신공의 풍습을 가지고 있었으며 문화대혁명 기간까지도 식인풍습이 행해졌다고 보고된 바도 있다. 물론 전쟁과 기아가 극심한 곳에서는 항상 식인풍습이 있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생태인류학자들은 이러한 식인풍습이 단백질을 공급할 방법이 없는 극한적인 상황에서의 불가피한 적응방식이라고 설명한다. 동물행태학자들은 침팬치들이 간혹 동료나 자식을 잡아먹는 것을 관찰하여 인간의 식인풍습을 설명하기도 한다. 서양에서도 루마니아의 뱀파이어나 헨젤과 그레텔의 마녀와 같은 설화를 통해서 식인풍습이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어떤 학자들은 돼지와 얌과 타로, 양고나와 같은 음식을 조상신께 바치는 것은 인신공의의 상징적 대체물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코코넛과 바나나가 인간의 몸과 영혼을 상징한다고도 설명한다. 마치 성경에서 예수가 떡을 떼고 포도주를 주며 '이것이 내 몸이니라. 또한 이것은 나의 피라'고 했던 상징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나를 먹으라!'고 하는 상징은 유대 땅에서나 남태평양의 작은 섬들에서나 똑같은 것이다. '내가 너를 먹는다'는 것은 섭생과 섹스 뿐 아니라 조상과 신과 공동체 및 인간의 합체를 의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