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살해사건?
(서프라이즈 / 강남 아줌마 / 2010-03-23)
취향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추리소설을 오래 읽다 보면
밀실살해사건 같은 내용은 피하게 된다.
작가는 수많은 장치와 트릭으로 머리가 빠지게 썼을 텐데,
범죄자의 복잡한 심리나 사회적 문제의식 같은 건 없이,
그저 어떻게 해서 잠겨있는 밀폐된 공간, 아니면 공개된 장소에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지에만 몰두하는 것은
단지 퀴즈 풀기, 퍼즐 맞추기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아가사 크리스티나 코난 도일 수준의 입문서에 불과하고
삼천피스퍼즐은 되야 쫌 재미나겠구나 하는 우리 연변에선
서너 살짜리 어린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이다.
연쇄살인사건이나 흉악한 범죄가 일어났을 때,
용의자의 신상이 파악되기 전에 대강의 프로파일링을 해보는 게
취미 아닌 취미가 되었고, 범인임이 밝혀진 후에도
진범인지, 성장배경은 어떠했는지, 범죄를 저지르기까지 심리상태 등….
쓸데없는 일에 신경이 쓰이는 와중에….
한명숙 전 총리의 ‘오만달러 분실사건’
(어떤 글에선가 이 대목에서 오랜만에 웃었다.)
총리공관 현장검증을 보면서
유치원생들을 위한 추리소설보다 못한 시나리오에
이 나라 검사들의 수준을 새삼 깨닫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손님들이 먼저 나가고 한 총리가 십여 초 동안의 짧은 시간에
의자에 놓여있는 돈 봉투를 서랍에 넣고 얼른 손님들을 앞선다.
(대역하는 검사는 아예 뜀박질을 하더만)
문이 열리고 5초 후엔 경호원들이 보고 있으니 나머지 5, 6초 안에
의자 위에 있는 봉투를 건너편 서랍장에 넣어야 하는 긴박한 순간.
대통령이 외계인을 물리치는 황당무계한 내용도 흥행이 되는
헐리웃 영화라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외부와 접하는 창문이 있고
(일부러 내다볼 염려가 없는 창문이니 상관없다는
불리한 조건은 배제하는 ‘빈틈없는’ 대한민국 검찰 측 주장)
누군가 잃어버린 물건이 있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고,
한 총리가 돈 봉투를 미처 보지 못할 수도 있는
수많은 변수가 있는 상황에서 두꺼운 봉투 두 개를 의자 위에 두고 나온다?
떳떳하지 못한 돈을 공개된 자리에 놓고 나올 만큼
배포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이미 여러 차례 재판에서 보여줬지만,
사과상자라도 사용할 만큼 기본적인 성의조차 없고,
‘그깟 오만 달러’쯤 티 안 나게 줄 수 있는 방법이 백만 가지는 넘을 텐데,
그런 무리수를 둘만큼 잔머리도 없는 사람이라는데
곽씨 아저씨 자기 실망이야~~
싸울 때 심정 상하는 말 툭 던져놓고, 나중에 따지면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니가 오해한 거다, 그러니 상대할 가치가 없다…. 라며
싸움의 원인을 상대방의 오해 탓으로 돌리며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사람을 보면,
한마디로 쳐죽이고 싶을 만큼 미울 때가 있다.(…라고 한다 -_-)
요즘 이런 싸움의 기술이 최신 트랜드인지
대통령부터 어제 안상수까지 내놓고 하는 수법이다.
치고 빠지기 수법보단 차라리 이렇게 재판이라도 하게 된 게,
속 시원하긴 하지만, 검사들 하는 짓 보면 답답해 돌아가실 지경이다.
추리소설 기초 편만 뗐어도
봉투와 의자 아래나 식탁 아래에 자석을 붙여서 봉투를 감출 수 있게 하던지,
누군가의 알리바이에 구멍을 찾는다든지,
좀 더 내용을 발전시켜서 훈련된 애완 원숭이가 서랍에 넣었다던지.
하다못해 요즘 어디서나 출몰하는 돈 좋아하는 쥐새끼들도 많지 않나 말이다.
작가가 아무리 머리를 써도 트릭이 허술하면 만화가 되는데
검사들이 좀 더 영리해서 내용의 진위와 상관없이
멋진 추리소설 하나 만들어줬으면 모처럼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을 텐데,
얼기설기 짜놓은 프롯에 억지로 꿰맞춘 질 낮은 코미디가 되고 말았다.
검사들, 느그들도 실망이야~~
제발 부탁건대,
쪽대본 쓰는 것처럼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넘어가려 하지 말고
치밀한 구성, 당위성 있는 사건, 진지한 인물탐구로 허구를 창조하라.
처음 건강하고 다양한 가족관계, 또는 각자의 애환을 그려보겠다는 취지가
막장드라마로 흘러가 시청자들의 질타와 외면을 받게 되는데
‘한명숙 오만달러 뇌물사건’이 ‘곽영욱 오만달러 분실사건’으로 끝나면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응?
밀실살해사건에 취미는 없지만,
기막힐 정도로 딱 떨어지게 쓰는 작가를 보면
그 작가의 뇌를 들여다보고 싶다.
지금은 반대의 이유로 우리나라 검사들 뇌를 들여다보고 싶다.
보나 마나 주름 하나 없는 순진무구한 뇌겠지만….
(cL) 강남 아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