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꿈꾸어 왔던 동해안 남해안 서해안을 잇는 한반도 드라이브를 방학을 맞이하여 아내와 오붓하게 즐기게 되었습니다.
방학식이 끝나자마자 나는 모든 일로부터 아듀를 외치곤 강릉을 향해 달렸습니다.
일출을 보러 가는 행렬이 아직은 도심을 나서지 않은 듯 영동 고속도로는 한산했지만 흩날리는 눈발은
설레는 우리 마음에 살짝 서스펜스 스릴감까지 선사합니다.
첫 번째 코스는 ‘테라로사 커피공장’이었는데 눈발이 굵어지고 지방 국도에 들어서자 차가 에스자로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차 한 대 지나다니지 않는 그 길을 따라 목적지 근방 200m 앞까지 도착했지만 아내는 차량의 흔들림에 마음까지 심하게
흔들렸나 봅니다.
낭만 따위에 목숨을 걸고 싶지 않다며 마지막 이면도로 앞에서 그만 유턴을 외칩니다.
아내의 명령에 충직한 나는 일말의 주저함 없이 유턴을 하려는데 차가 슬며시 슬라이딩을 하였고
스포티지 내 차도 놀랐는지 와이퍼가 급 작동을 합니다.
조심 조심 제자리를 잡아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2번 째 코스 참소리 박물관을 향했습니다.
덕분에 강릉시내를 관통하게 되었는데 단아한 느낌이 묻어났습니다.
참소리 박물관은 십수년 전에 갔을 때는 오래된 찻집 같은 고풍스런 느낌과 소담스러운 이미지였는데
박물관의 외양도 모던해 지고 내부 분위기도 확 바뀌었습니다.
축음기 중심에서 에디슨 박물관이라 할 만큼 에디슨의 발명품 위주로 전시되어 있었고
전문 해설가들의 맛깔나는 해설도 곁들여 있었습니다.
소강당에서 ‘오 솔레미오’를 옛날 버전 엠프로 듣는데도 웅장함이 대단했습니다.
‘테라로사 커피공장’ 대신 찾은 커피샵은 이승기가 탐방했던 커피 마을의 ‘할리스’였는데
바닷가 제방위에 지어 놓아 푸르른 전망이 끝내 줍니다.
쿠션에 몸을 맡긴 채 아내와 나는 느긋하게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날이 어둡도록 오래도록 책을 읽었습니다.
션 샤인 이라는 모텔에서 여정을 풀고 청국장에 막걸리 한 잔을 하는데 맛이 끝내 줍니다.
찐하지 않고 구수하고 부드러운 청국장 맛이 갓김치 특유의 싱싱한 풋내와 찰떡궁합으로 침샘에 녹아드는데
막걸리 한잔을 들이키면 온 몸이 행복 호르몬에 감전되는 듯 합니다.
둘째 날 메인 코스는 주동이가 알려 준 울진에 있는 ‘덕구 온천’입니다.
내려가는 길에 정동진 기차역도 들러 봅니다.
정동진역은 처음 와 보는 곳인데도 어쩐지 옛 추억이 서려 있는 것처럼 정감이 묻어났고 편안했습니다.
레일과 역사를 배경으로 한 컷 찍을 때는 예전의 MBC ‘베스트 셀러 극장’의 한 장면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했습니다.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새로 포장된 7번 국도보다 구불구불한 예전의 7번 국도를 더 원했던 까닭에
우리는 한참이나 네비게이션과 씨름해야 했습니다.
최단 코스를 알려주는 네비와 낭만의 옛길을 원하는 나는 자꾸만 어긋났습니다.
근대화의 표상인 직선을 거부하는 나는 고집스레 바다를 끼고 마을을 지나치며 창문을 열고
시린 겨울 바람에 영혼을 헹구며 드라이브를 즐깁니다.
옛길은 마을의 모습과 함께 어울어지며 해안선과 가까워졌다 다시 멀어졌다를 반복합니다.
우리네 인생이 사랑과 이별의 순환이듯이 길도 그러합니다.
심곡항에서 금진항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드라이브의 백미입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따라 파도가 지척에서 부수어 지는데 파도 소리가 바람 소리와 어울어져 오케스트라 협연같았습니다.
눈이 그치고 난 후의 청아한 하늘 빛이 비취빛 바다와 그 음악의 배경으로 펼쳐지는데
나이 들면서 사라졌던 원형질의 그리움이 무장 무장 피어오릅니다.
누구든 이 장엄한 향연앞에서 그리움 한자락씩 저마다 은밀히 호명을 하게 됩니다.
그 곳을 지나쳐서도 우린 케니 지의 섹스 폰 연주를 들으면서 그 여운을 반추했습니다.
덕구 온천 물은 자연 암반수라 그런지 미끈 미끈하고 부드러웠습니다.
겨울 산행을 마치고 이 곳에 몸을 풀면 모든 집착에서 자유로워 지고 그대로 온 몸을 자연에 맡기는
열반의 경지에 다다를지도 모를일입니다.
온천 후 울진항에서의 곰치국은 그대로 별미였습니다.
해장에 곰치국이 최고라는데 어제 저녁 술을 조금 밖에 안 한 것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마음 씨 좋아보이는 식당 아주머니가 대게를 권했고 마음 씨 약한 우리는 흥정 하나 없이 흔쾌히 2만 5천원 짜리 3개를 샀습니다.
그리고 영덕 항에서 나부끼는 대게 선전 문구를 보고 잠시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냐는 식으로 어항에서 어항으로 길은 끝없이 이어졌고 우리의 7번 국도행드라이브도 끝없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