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에 홀로 지리산을 종주했다는 친구의 소식이 예사롭지 않은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도시의 한 가운데에서도 추위에 움츠린 모습이 초라하다. 많은 눈이 볼만한 광경을 지어내어, 따뜻한 방안의 포근함이 유난히 안온하게 느껴지고, 잊어버렸던 자연이 어설픈 인공을 걷어버려 모처럼 생생한 공기를 호흡하고 있다고 흡족해 하던 차이다. 엄동설한에 그 큰 산을 혼자 다녀왔다는 것이다.
산. 지금 우리에게 산은 헬스클럽의 운동기구쯤으로 여겨진다. 건강을 위해 등산이 좋다는 통에 온 인간들이 산을 오르내린다. 바로 집 앞에 산이 있어 가끔 찾는다. 4백여 미터 높이다. 평일에는 온 동네 노인네들과 아줌마들의 차지이고, 주말이면 많은 가족들이 찾는다.
산의 입구에서부터 꼭대기에 이르기까지의 통행로는 고향 이웃동네 가는 길보다도 넓다. 대부분 우측통행이나 좌측통행으로 규칙을 정해야 할 만큼 번잡하다. 바위가 거의 없는 육산이라 길은 계속 파인다. 여름 폭우에 이 길은 물길이 되어 더욱 깊이를 더한다. 깔딱고개로 불릴 정도로 제법 경사가 심한 곳도 있다. 비교적 평평한 곳곳에는 긴 의자가 놓여 있다. 꼭대기에는 작은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고, 가까운 곳 한쪽에서는 막걸리까지 마실 수 있다. 가장 높은 곳에는 아무렇게나 지은 정자가 건방지게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은 거의 이 길을 따라 오가기만 한다. 오직 건강해야 되고, 날씬해야 되고, 오래 살아야 한다는 일념이다.
지리산! 이에 비하면 동네 산은 단순히 정원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산이라고 오만 나무가 가득하고, 봄이면 생강나무로부터 진달래와 산벚이 피어나고, 5월엔 꾀꼬리도 모습을 드러낸다. 한여름의 짙은 녹음은 계곡물이 없어서 서운할 뿐 더위를 만끽한다. 가을과 겨울에도 그 나름의 변화를 모두 갖추어 그냥 자연의 하나로 여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리산을 생생하게 전해 들으면서 문득 초라함을 느낀다. 아무리 눈으로 치장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오물조물 지어낸 모든 생각들이 역시 초라한 모습으로 손에 잡힌다. 넓은 세상, 깊은 관념. 자연의 경외스러움을 떠올린다.
삶은 역시 한계에 부딪혀야 그 참 의미를 드러낸다. 짜여진 틀에서의 습관으로 반복되는 것과 비교된다. 큰 산속에서 혼자에게는 단순한 외로움만 찾아들지 않는다. 생존의 절박함과 죽음에 대한 공포감이 곁들여져 흥얼거릴 여유를 주지 않는다. 외로움은 그냥 현재의 처지일 뿐 두려움과는 견주지 못한다. 해가 지기 전에 밤을 지낼 곳까지 반드시 가야만 하는 절박함은 말 그대로 절박함이다. 아무 곳에 누어도 얼어 죽지 않을 여름에도 그러한데 이 엄동설한에랴.
때로 외로움은 멋을 풍긴다. 늘 엉켜 지내므로 혼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다가 외로움에 처해서야 비로소 혼자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잠깐이라도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참 시간을 갖는다. 그래서 외로움 그것만으로도 멋을 부릴 수 있다.
온 산에 나는 새 없고, 千山鳥飛絶
모든 길에는 인적 끓겠는데, 萬逕人蹤滅
외로운 배에 도롱이 입고 삿갓 쓴 늙은이 孤舟蓑笠翁
눈 내리는 차가운 강에 홀로 낚시질. 獨釣寒江雪
이 시에서는 외로움의 멋이 잔뜩 우러난다. 겉으로는 동양화 한 폭이고, 그 늙은이의 심정을 헤아려보아도 굳이 동정심이 일지 않는다. 여유롭고 달관한 모습이다. 늙은이는 자연에 녹아버렸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몸뚱아리의 고통도 있을 리 없다.
바람과 추위만이 있는 그 큰 산을 홀로 걷는 인간과 너무 다르다. 산의 그 사람은 자연과 하나 된 모습도 아니다. 오히려 산과 맞서 있다. 자신과 맞서 있다. 외롭고 쓸쓸한 그 머리와 가슴엔 무슨 생각과 감정이 일었을까.
외로움은 진짜 멋이 아니다. 처절하다. 멋은 그 다음이다. 보이기 위한 것과 보이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온 세상이 보여주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미쳐 날뛰는데, 아랑곳 하지 않고 혼자 맞서는 그 외로움이 너무 멋지게 다가온다. 아무렇지 않게 웃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웃기에도 자격이 필요하다.
산을 찾은 사람이야 그 나름의 뜻이 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상관없이 겨울 지리산을 혼자 종주했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옆에서 바라보는 눈에는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고고하다. 생각할수록 지리산 능선에 칼바람의 싸늘함이 몸 가득히 전해온다. 긴장감이 들면서 정신이 또렷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스친다. 가을의 국화보다도, 2월의 매화보다도 더 짙은 향이 느껴진다. 난초의 향까지도 초라하게 여겨진다.
삶은 역시 내질러버려야 맛이 나는 모양이다. 한껏 태워버려야 빛이 난다. 맛과 빛은 이미 내는 자의 것이 아니다. 옆에서 맛보는 놈의 것이고, 눈을 움츠리는 놈의 것이다.
50에 이르러 이제 늙는다는 것이 실감이 나기도 하는데, 이 벽두에 왠 신선함이냐. 늙지 말아야 하겠다. 아직 청춘이다. 이렇게 안으로 안으로부터 솟구치는 열정을 가진 녀석이 옆에 있는데. 사는 날까지 그저 내질러버리고 태워버려야 하겠다. 굳이 윤시내의‘열애’에서처럼 사랑이 아니더라도 삶은 태워버려야 제맛이겠다.
새해 벽두에 값진 선물을 받는다. 우리는 동창이다. 그리고 같은 인류이다. 같은 류이기에 하나의 류가 저지른 것을 다른 류가 그대로 받는다. 몇 년의 세월로도 잠재울 수 없는 청춘의 끓는 피를 선물로 받는다. 고맙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