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중순 만주에 갔다 적은 것입니다. 때를 놓쳤으나 칸을 하나 늘려봅니다.>
만주벌판에 부는 겨울바람을 맞아보았는가. 오줌을 누러 갈 때는 망치를 들고 갔다는 거기, 또 오줌을 싸면 얼음덩어리들이 재겅재겅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는 바로 거기. 겨울의 만주는 아주 허무맹랑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태어난 곳도, 살아본 적도 없는 그곳이 뜬금없이 향수를 자아내니 스스로도 야릇하다.
끝없이 펼쳐진 설원의 한 복판을 달리는 마적 떼들의 말발굽소리, 눈망울만 내놓고 뒤집어 쓴 털모자, 묵은 장총, 그들이 내품는 하얀 입김. 사나이의 멋스러움을 다 가진 듯한 무리들. 그 아래 땅 위를 기는 개미마냥 한 자락의 궤도를 가진 만주의 개장수들. 잠시 좀 더 차원을 높여 연상되는 독립운동가.
흑백영화의 잔상이 아직 남아 발동을 한 것인지, 전생에 마적 똘마니라도 했던 모양인지, 그도 아니라면 미친 놈 저 혼자 중얼거리듯 도깨비에게라도 홀렸는지, 겨울이 닥치면 만주의 벌판이 그리워진다.
만주! 거기는 겨울에서야 그 이름값을 제대로 한다. 어디 만주엔들 사철이 없으랴. 짧은 봄에는 라일락의 향기가 진동하고, 제비가 집을 짓느라 분주하다. 대지에 쏟아지는 여름 햇빛이 지어낸 열기가 화로와 같고,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의 줄기도 거세다. 멀리 바라보면 초원으로 착각되는 옥수수밭과 그 위로 파란 하늘이 색다르다. 다소 바쁘게 찾아드는 가을바람은 해진 뒤의 청량감을 더해준다. 오직 하늘과 땅의 경계가 커다란 원주를 그리고, 그 선 위에는 파란 바탕에 흰 무늬가 원색으로 자리하고, 그 아래 누런 빛을 띠우는 말기의 생물들 뿐이다. 그 사이엔 산도 없고, 나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제법 긴 나무도 그 경계선에 매몰되어 버린다. 벌레소리를 핑계삼아 짐짓 고상한 상상을 해보려 해도 확 트인 공간에서는 공허함과 허전함에 허우적댈 따름이다. 구월이 저물어가며 겨울이다. 갑자기 여름에서 겨울로 곤두박질한 느낌이다. 시월에 들어서는 눈이 내린다. 이 눈을 시작으로 겹겹이 쌓여 설원을 짓고, 이듬해 사월에서야 땅을 볼 수 있다.
그래도 어떤 경위로든 뇌 속에는 냉기로 가득 찬 만주가 더욱 선명하게 자리를 잡았다. 노란 유채향이 가득하고, 물가에 버들가지가 하늘거리는 남방의 봄이 그렇듯이, 겨울이 되면 만주벌판이 며칠 참은 담배의 마력보다 강하게 찾아온다. 어떤이는 여름의 몽고초원에 그 병이 들었으나, 그래도 난 겨울이 더욱 그렇다. 동물원의 호랑이마냥 인간이 지어낸 온화함에 갇혀 지내다 잃어버린 야성을 되찾으려는 본능인지도 모른다. 사실 그곳에 가면 남성이 꿈틀거린다.
행사를 겸하여 연초 만주방문이 예정되었다. 몇 해 동안 거르지 않았다. 올 겨울 더욱 심하다는 추위가 두려워 재래시장에서 솜바지와 겉모습이 그럴듯한 외투, 털신, 목도리 등을 갖추었다. 그러고서도 며칠 동안 설레임을 억누르려 애써야 했다.
인천을 나선 비행기가 바다를 지나다 요동반도 끝자락에서 대륙으로 올라선다. 저 아래로 마을들이 눈에 선명하다. 아마 여순(旅順)일 것이다. 올막졸막 산자락이 이어지는 땅을 바라보다 몇 십분 더 가다보면 갑자기 대지가 펼쳐진다. 눈에 덮여 있다. 눈 위로는 강렬한 태양과 파란 하늘, 그리고 옆과 밑으로는 흰 구름이 둥실거리고, 그 아래에 설원이 이어진다. 제법 볼만한 풍경이다.
공항에서 내려서 우선 문밖의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는 일이 먼저다. 텅 열린 땅을 바라보며 길게 숨을 들이쉬면 잔뜩 얼어붙은 공기가 폐안으로 들어와 그 동안 묵은 니코틴을 다 씻어버린다. 그 상쾌함이야 한 여름의 깊은 계곡의 시원함에 못지않다. 깨끗한 폐에 다시 연기를 불어넣는 것이 그 다음의 순서다. 이번에는 좀 다르다. 반도 채 피우기 전에 추위를 견디지 못하겠다. 이번에 심하다더니 강도가 예사롭지 않다.
차창으로 보이는 벌판의 초라한 나무들에는 눈꽃이 가득하다. 그 경관이야 아름다움의 하나지만 안에까지 파고드는 냉기 때문에 나무들에게 동정이 인다. 수평에 늘어 선 흰 빛깔의 나무들은 판화의 소재로 적격이다. 그 간결하고 고상함이 참으로 멋쩍다. 나무의 종류도 한정되어 있다. 주로 한꺼번에 작정하고 심은 포풀라가 대부분이고, 아직 어린 소나무들이 길가에 줄지어 있다. 멀리 미루나무 같은 큰 키의 나무가 벌판에 어울린다. 한 시간 여를 달려도 매 그 모양새다.
만주가 왜 만주인지는 잘 모른단다. 청나라에 들어 황실에서 그들의 본거지를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고, 1930년대 일제에 의해 만주국이 세워지면서 우리들은 만주로 줄곧 듣고 있을 따름이다. 현재의 중국 동북 3성(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과 러시아 연해주가 우리가 아는 만주다. 이 중에서 두만강 이북지역은 간도라 했고, 더 북동쪽인 연해주는 북간도라 불렀다.
역사적으로는 고구려가 요녕 지역에 자리하였고, 발해는 만주의 거의 전역을 나라로 삼았다. 흑룡강성 동쪽 끝자락 영안이라는 지방에 아직 발해의 상경유적지가 남아 있다. 그곳이 행정구역상 발해현이다. 하얼빈에서 장춘으로 가는 길 옆 부여라고 불리는 도시도 있다. 간도와 북간도는 독립운동의 근거지다.
20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이주민들이 길림성(지금의 연변 등지)과 연해주, 흑룡강성의 동쪽 지역에 터를 일구었다. 중국 영역의 이 지역 농토 대부분은 이들에 의해 개간되었다. 지금도 논밭의 모양이나 농사의 방법이 우리의 시골과 거의 같다. 여름 나절 논길을 따라 걷다보면 고향에 온 것과 꼭 같은 감흥이 인다.
러시아령의 연해주에는 엄청난 농토가 유물로 남아 있다. 이곳의 이주민들은 1937년 강제 이주에 의해 지금의 우즈베크스탄으로 실려 갔고, 옥토가 황무지로 변해 잡초만 무성하다.
이와 달리 중국령의 농토는 옥토로 제 구실을 하면서, 여기에서 생산된 쌀의 향기와 맛은 우리의 보통을 넘는다. 하얼빈 인근의 오상 지역에서 나는 오상미를 비롯한 동북미가 바로 여기의 산물이다. 소도 가져갔고, 씨앗도 가져갔고, 땅은 더욱 기름져서 더욱 맛좋은 산물이 나온 것이다.
그 넓은 만주땅에 어찌 조선족만 살았으랴. 말갈족, 숙신족과 여진족의 터전이고, 거란족의 삶터이며, 몽고족이 말 달리던 곳이다.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오온커족을 비롯해서 타타르족, 선비족 등등 수많은 종족이 이곳에 발붙이고 살았다. 선비족은 남북조 시대에 북위라는 나라를 세우고 중원 북쪽까지 진출한 바 있고, 거란족은 요나라를 건설하여 일대를 무대로 삼았다. 이어 등장한 징기스칸은 원나라를 세우고 유럽에까지 그 위세를 떨쳤다. 여진족은 금나라와 청나라를 세워 만주는 물론이고 중원을 다스렸다. 청나라의 영토가 지금의 중국 영역이고, 티벳이 보태졌다.
거란은 고려 초기 몇 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침략을 해서 고려 전체를 크게 유린한 바 있다. 원나라야 고려말기를 틀어쥐었고, 청나라는 바로 병자호란의 ‘호’였다.
지금의 국경선이 대체로 조선 세종 때에 정해졌으니, 만주로부터 한강까지는 말갈, 여진, 거란, 몽고족들이 오락가락 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만주에서는 대부분 한족들이고, 소수민족으로 몽고족, 여진족(만족), 조선족, 극히 소수의 오온커족 등을 만날 수 있다. 여기의 한족들은 대부분 20세기에 남쪽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다. 특히 산동지역의 사람들이 대규모로 여기에 들어와 농토를 일궜다. 그래도 사는 사람들 중에 그 후손이 섞여 있을 텐데 거란족이나 선비족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에 살면서 여기를 우리와 어떻게 관련지어야 할 것인지 잘 모르겠다. 사라져가는 종족들에 비하면 이 좁은 곳에서 말과 문화를 면면이 이어온 선조들의 노력이 참으로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인다. 기적이라 부르고 싶다. 예나 지금이나 큰 놈들의 등쌀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근대의 과제가 민족국가의 건설이라고 했으니, 시간이 흐르면서 공간적인 국경선이 문화적인 영역으로 대신될 때도 올 수 있다. 어떤이는 남북통일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아직 우리에게 근대는 끝나지 않았다고 하고, 어떤이는 이제 근대를 정리하자고 한다. 전자는 민족통일국가건설을 근대 최종의 역사적 과제로 삼는다. 후자에서는 민족의 개념이 희박하고, 경제나 문화면에 천착한다. 후자 중의 일부는 조선근대화에 끼친 일제의 역할을 인정하고, 그 연장선에서 미국을 대단하게 여긴다. 원론적으로 우익에게는 민족이념이 우선인데, 우리에서는 민족과 통일을 강조하면 좌측이고, 우익이라 불리는 이들은 성조기를 들고 시위를 한다. 민족을 가치기준으로 삼아야 할 지, 경제적 사회적 계급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지, 아니면 매국과 독립으로 해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뒤죽박죽이다. 그래도 정리를 해보려는 의지가 남아 있은데, 나이가 들수록 희박해진다.
사실 난 민족적 입장이 상당히 강한 편이다. 노력과 실천의 양은 크지 않지만 대부분 전자의 입장에서 사고해왔고, 지금도 그 성향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일제 때문에 민족국가 건설이 늦어졌는지 근대화에 도움을 받았는지 또 청산이 되었는지 어쨌는지 시간이 흘러가고, 미제인지 구세주인지 한 동안 영향을 끼치고 있는 참에 이제 중국이 등장한다. 그럼 중국은 또 어떻게 해석을 해야 되는지, 아니면 말아야 하는지 참 난감하다.
겨울의 만주 얘기를 하려다가 삼천포로 빠졌다. 그런데 대단히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한반도 옛 자체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삼국시대가 시작될 무렵 중국 한나라의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하니, 한나라 이전의 진나라와 춘추전국시대에 여기 한반도에는 삼한과 가야가 있었다고 중국기록에 있을 뿐이고, 삼국에 대한 기록도 고려시대에 와서야 쓰여진 삼국사기가 우리의 처음 기록이고, 서기나 국사가 있었다고 하는데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광개토왕의 비석이 외롭고, 고구려 왕릉들이 이국에 갇혀 있고, 발해의 상경에는 궁궐지가 불도저에 밀리고 관광사업을 목적으로 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북한이 혈육의 하나인지 주적인지 뒤죽박죽 섞여 있고, 우리들은 서로 옥신각신 안에서 에너지를 소비중이고, 중국의 조선족은 돈벌기에 여념이 없다.
만주에 대한 뜬금없는 향수는 핏줄과 연관이 깊은 모양이다. 그래야 향수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갖고 간 모든 옷가지를 층층이 껴입고서도 추위를 느낀다. 얼굴을 가리지 않으면 통증을 견디기 힘들다. 코까지 감싸면 위로 솟는 입금이 안경을 가려 불편하기 짝이 없다. 맑은 눈으로도 눈길을 걷기 힘들 기경인데 보지 않고서야.
칼바람이 불라치면 두려움이 앞선다. 취향의 하나로 즐기기에는 너무 상황이 긴박하다. 이쯤에서는 일상의 습관된 이상의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한가로운 농담도 얼어버린다. 오직 자신을 추위에서 보호하려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자연의 상황에서 한계를 느끼는 기회는 흔치 않다.
이상하게도 강한 추위 속에서는 언제나 어머니와 고향이 떠오른다. 어린 적 겨울 날씨가 이와 비슷했던 모양이다. 추위가 강했는지 방한의 장비가 허술했는지 몸으로 맞는 추위가 이곳에서 떠오른다. 아침상을 준비하는 좁은 부엌에서의 어머니 몸짓이 우선 자리를 잡는다. 아궁이에서는 불이 살아 움직이지만 상위에 놓으려는 김치그릇이 미끄럼을 타고, 이를 제 자리에 놓으려고 반복되는 어머니의 우스꽝스러운 손길이 보고 싶다. 눈에 덮인 들판, 눈 녹은 물과 땀에 젖은 고무신, 언덕 위에서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어대는 나무들. 모두 여기에서 되살아난다. 몸은 만주의 복판에서 혹독한 추위에 고생을 하고, 마음은 훈훈하게 고향을 헤맨다.
어디 소박한 생각뿐이랴. 말을 탈 수도, 뛰어다닐 수도 없는 하얀 벌판을 자동차라도 달려보라. 히이잉 소리를 한껏 울부짖으며 숨에 겨운 하얀 입김을 토해내는 말이 연상된다. 약탈의 대상으로 삼은 마을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중인지, 기아를 달랠 작은 동물이라도 잡으려는지, 그도 아니면 침입자를 물리치려는 전투중인지, 어쨌거나 극도의 긴장감 속에 말을 타고 저 하얀 들판을 거침없이 내달리고 싶은 욕망이 한동안 들썩거린다.
여기에서는 이리저리 얽힌 관계의 피곤함을 씻어버릴 수 있다. 그냥 사람이 아닌 자연의 한계에서 오로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려는 야성으로만 단순해져서 좋다. 복잡하고 오묘한 맛이 왜 없으랴마는 때로는 아주 단순하고 간단해지고 싶다. 이것이 겨울 만주에서 가능하다. 사람보다 자연이 더욱 크게 느껴져서 그럴 것이다.
그리고 나의 본처를 헤아려보게 된다. 아마 본적지인 경주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혹 거란족이나 몽고족, 여진족의 피가 섞여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혈통적으로 의미가 분명하겠으나, 이곳에서의 향수는 출처를 헤아리기 힘들다. 핏속에 녹아 있어서 발동이 되는지, 아니면 어쩌다 이리저리 습득된 몇 가지의 정보에 매몰되어 착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디를 가나 감흥이 이는 것을 보면 아직 살아 있는 감수성의 발로이기도 하겠다. 그래도 겨울은 만주에서 보내야 제 맛이 나는 것은 사실이다. 망치를 들고 오줌을 싸고 나서야 한참을 지나 매화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