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째 아이는 중학교 2학년, 성남에 있는 하탑중학교를 다닙니다.
오늘 학교에서 아버지의 날 행사가 있어서 이른 아침, 아들 박성호와
함께 학교로 향했습니다. 남들은 아이들 다 대학 보내고 군대 보내는데
결혼이 늦었다 보니 늦은 나이에 중학생 아버지 노릇 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학교에는 3-40명의 아버지들이 아들 딸과 함께 행사 참가를 위해 모여
있습니다. 다들 젊은 아버지들 일거라 생각했는데 머리나 행색을 보니
내 나이는 돼 보이는 아버지들이 많이 있어 놀랐습니다. 나이든 아버지들이
어린 자식에 대한 관심이 더 큰 것인가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이 행사가 교장선생님이 작년도 부임한 이후 가지는 2년차의
행사로 여러가지 많은 준비를 한 것 같았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 인사말에서
우리 아이들은 ‘꿈을 품은 행복한 인간’으로 자라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중등교육의
목표는 진학교육이 아니라 진로교육이 되어야 한다고도 하셨습니다. 교장선생님
말씀에 참 바른 교육철학을 가지신 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서 한 여선생님이 ‘자녀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셨는데 강의중 재미있는 내용이 있어 소개합니다.
오노도후와 정주영
화투의 비광에는 우산을 쓰고 있는 남자와 그 밑에 펄쩍 뛰는 모양의
개구리가 나옵니다. 비광에 나오는 사람은 일본 헤이안 시대의 서예가인
오노도후라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젊은 시절 서예공부에 지친 오노도후가
공부가 발전하지 않는데 실망하여 방황하던 중에 어느 날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도랑 옆에서 개구리 한마리가 물살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옆에 있는 버드나무의 가지로 펄쩍 뛰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몇번을 도약해도 이르지 못하는 모양을 보고 곧 포기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개구리는 필사의 노력끝에 버드나무 가지를 붙잡게 되고
나무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이를 본 오노도후는 크게 깨달음을 얻어
공부에 매진, 일본을 대표하는 최고의 서예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화투칠 때 늘 보던 비광에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정주영의 일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정주영회장이 젊은 시절 가출한 후 공사 현장에서 일할 시절, 직원들
숙소에서 빈대들 극성으로 직원들이 다 잠을 잘 못 이루는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직원들은 꾀를 내어 커다란 밥상을 가져온 후 네 다리를 물 그릇에
담그고 그 위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이제 편하게 잠을 청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니 이게 웬걸, 빈대들이 몸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빈대들이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 그 위에서 사람들에게 떨어진 겁니다.
청년 정주영은 이를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빈대 같은 미물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구나. 포기하지 않고 죽을 힘을 다하면 이루지 못할게 없어’
선생님 특강중의 두 일화를 들으면서 우리 성호가 백번 꺾여도 굴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소망해 봅니다.
이어서 아이들과 아버지들이 함께 학교 인근의 맹산으로 함께 산행을 다녀
왔습니다. 맹산은 성남 야탑동에 있는 산인데 조선 초기의 명재상 맹사성이
인근 땅을 하사받아 그 이후로 맹씨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어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산행중 교장선생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데 환갑이
다 되신 분이 성수동에 있는 집에서 야탑까지 때때로 자출을 하신다고 합니다.
또 캠핑이 취미이고 4대강 자전거길 순례를 버킷 리스트에 두고 계시는
원기 왕성하신 분이셨습니다. 젊게 사시는 교장선생님을 보고 문득 여주
이포보를 왕복으로 다녀 온 원기가 떠올랐습니다.
아들녀석과도 오랜만에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고 산행을 마치고 난 후
학교에서 제공한 김밥으로 점심 맛나게 먹고 선생님들과 간담회 가진 후
귀가했습니다.
정말로 오랜만에 아들 녀석 위해 봉사한 하루였습니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핑계로(주로 후자가 많았습니다) 놀아 주지 못했었는데 오늘 하루
아들에게 힘이 되어 준 것 같아 기분이 뿌듯합니다. 먼 훗날 성호에게
오늘이 그리운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