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공학 교수인 '유현'이 자기 글을 고쳐쓰기 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기에 재미삼아 퇴고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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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우리 대학에 이사장이 새로 취임하는 바람에 나도 이런저런 행사에 불려다닌다. 그때마다 회식이 있게 마련인데 폭음을 하지는 않아도 술을 적당히 즐기는 나로서는 어제 내 주량을 넘고 말았다. 내일 울포회 라운딩을 위해 회식 처음부터 주량을 조절하느라 꽤 신경을 썼음에도 술이라는 게 워낙 관성이 심해서 결국 떡실신이 될 정도는 아니어도 아침까지 취기가 가시지 않았다.
결국 알람소리에 의지해 일어나지 못하고, 사랑스런 아내의 달콤한 속삭임이 나를 깨웠다.
- 여보, 동창들과 아침 일찍 골프 약속이 있는 날이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과음을 하면 어떡해요. 빨리 일어나세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내에게 가벼운 애정표현(?)을 하고 곧바로 찬물로 세수를 했다. 정신이 확 깨었다.
사실 아내에게 감사한다. 주변의 친구들을 보면 또다른 골프 약속을 제외하고, 울포회에서 비록 한 달에 한 번이긴 해도 이 새벽에 혼자 골프를 치러 나가는 것을 썩 달가와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아내는 늘 나를 따뜻한 마음으로 깨워주고 배웅도 해 준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아내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을까?
이틀 동안, 때 이른 겨울, 비가 내렸었는데, 오늘은 날씨가 아주 맑았다. 자동차 안의 온도계를 보니 섭씨 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내가 일찍 깨워준 덕분에 내가 울포회에 참석한 날 중 가장 일찍 도착했다. 시계가 6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썬힐 골프장의 기온은 -5도라고 내 차의 온도계가 말해줬다. 이 새벽에 한 시간 넘게 북쪽으로 달려왔고 이 지역이 내륙이니 어쩌면 당연한 기온이었다.
몸이 움츠러드는 추위를 느끼며 프론트로 행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따뜻한 공기가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초겨울의 싸늘한 바람은 가래떡 썰리듯이 밀려 나가고.
매달 그러하듯이 골프장 2층 식당에서 뷔페로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아직 친구들이 많이 오지는 않았다. 먼저 온 친구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어제의 과음으로 아내의 북어국이 간절했으나 어쩌랴! 북어국 대신 ‘죽’으로 아직도 약간은 쓰린 속을 달랬다.
내가 식사를 거의 마칠 때쯤 친구들 4개조 16명이 모두 도착했다. 지난 달에 네비게이션 업그레이드를 2년이나 안 하는 바람에 골프장을 찾아 헤매느라고 아침도 못 먹고 빈 속에 캔맥주 마시며 라운딩을 했었던 ‘정회준’도 ‘홍종원’이와 같이 왔는지, 이제는 네비를 업그레이드했는지, 시간 맞추어 와서 연신 수다를 떨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침 식사 후 커피를 마시고, 느긋하게 담배 한 대를 피웠다. 조별 기념 사진을 찍었는데, 매달 한 번씩 찍어서 그런지 친구들은 퍼팅 연습을 하느라고 사진 찍는 데는 신경을 덜 쓰는 거였다.
이어서 아침 8시가 조금 지나 티업. 첫 홀은 언제나 긴장이 되게 마련이다. 우리 조 네 명의 드라이버 샷은 모두 페어웨이에 안착을 했다. 날씨로 근육이 더욱 위축이 되었을 텐데도 첫 드라이버 샷에 성공한 친구들의 표정이 밝아졌었다.
날씨 즉, 기온의 문제는 당연히 퍼팅에서 나타났다. 전날 비가 온 뒤 땅이 얼어서 그린의 상태가 완전히 달랐다. 두 배 정도의 힘으로 굴려야 했던 걸로 기억한다. 공이 똑바로 굴러가지도 않고. 결국 네 명 다 퍼팅 난조로 더블 보기. 이게 오늘 라운딩의 복선이 될 줄이야 !
골프에서 내기가 빠지면 뭔가 활기가 없다. 오늘도 당연히 룰을 정하고 내기를 시작했다. 종열이가 정한 규칙에 따르기로 모두 동의했다.
더블보기 이상은 스킨을 취득할 수 없고, 버디는 무전무죄(?) 스킨스 게임을 하면서 계속 트는 홀이 이어져나가다가 드디어 4번 홀에서 성민이가 스킨을 획득, 만면에 미소를 짓는 거였다.
그러나 성민이는 이 기쁨도 잠시, 곧 이어서 터진 종열이의 버디로 혼자서 일찍 스킨을 취득한 업보로 먹은 돈을 버디피로 토해내는 불운을 겪었다. 종열이의 버디는 10미터도 넘는 롱 퍼팅이었는데, 아주 그림처럼 이쁘게 홀컵으로 빨려 들어갔다. 맘씨 좋은 성민이가 웃었지만 속은 좀 쓰렸을 거다.
나는 구력이 동창들 평균보다 좀 되기 때문에 숏게임에 강한 편이다. 그러나 당연한 얘기지만 얼어붙은 그린에다가 잔디 상태도 나빴으므로 좋은 컨디션으로 실력을 발휘하기는 애초에 어려웠다. 물론 네 명 모두에게 동등한 조건이지만 말이다. 두껍게 껴입은 옷은 스윙을 방해하고, 게다가 그 동안 울포회를 통해서 만났던 캐디 중에 최악의 캐디를 만났다. 계집애처럼 예쁘장하게 생긴 녀석이었는데, 캐디 역할은 정말 빵점이었다. 따뜻한 동남아가 그리운 날씨에 예쁘고 똑똑한 여자 캐디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종열이의 멋진 버디 한 방으로 니어에, 버디에, 터왔던 스킨에, 비로소 금전적 정리를 말끔히 하였다. 이후 종열이의 버디 한 방에 다소 의기소침(?)해졌는지 형기와 나는 악성 슬라이스로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종열이의 날씨와 그린 상태를 뛰어넘은 플레이에 그래도 기죽지 않는 것은 성민이였다. 그의 드라이버 샷은 80% 정도의 힘으로 부드럽게 치기 때문에 페어웨이 안착률이 한결같다. OB를 내는 일이 아주 드물다. 그렇다고 상대적으로 거리가 짧은 것도 아니다.
그런 성민이도 왠일인지 드라이버에서 실수를 연발, 오늘은 완전 종열이를 위한 날이었다. 나머지 셋은 당연히 기쁨조였고. 이후에도 종열이는 파4, 8번 홀에서 세컨 샷을 핀에 바투 붙여 두 번째 버디를 낚았다.
이렇게 잘 나갔기 때문에 종열이는 드디어 OECD에 가입, 우리에게 한숨을 돌리게 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원래 그 순간부터는 OECD귀신이 붙어서 OB도 내고 샷도 흔들리는 게 인지상정인데, 종열이는 여전히 안정된 샷을 날리고 있었다.
나는 긴장의 끈을 더욱 당겼다. 이제 어제의 주독도 완전히 빠져서 조금은 따뜻해지는 날씨와 더불어 몸상태도 점점 좋아졌다.
울포회의 새로운 강자, 김형기는 슬라이스로 고전하고 있고, 성민이는 세컨샷과 숏게임이 매끄럽게 안 되고, 오늘의 상황을 고려할 때 ‘종열이의 독주를 막을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심기일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후반 라운딩이 시작되었다.
분위기가 다소 반전이 되었다. 전반 9홀에 그렇게 잘 나가던 종열이에게 3퍼팅 귀신이 씌었던 거다. 얼던 땅이 서서이 녹으면서 도대체 퍼팅감을 잡을 수가 없었는데, 종열이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을 했다. 따라서 종열이가 조금씩 벌금을 내주면서 내 주머니 사정이 점차로 좋아지는 거였다. 나는 공격적인 플레이를 했다. 그런데 내맘대로 되면 내가 싱글 골퍼, 아니 원래 골프라는 게 자식처럼 내맘대로 안 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힘만 잔뜩 들어가며 골프공은 나의 통제를 벗어나 마구 자유(?)를 만끽하는 거였다.
이번 라운딩에서 두드러지게 느낀 게 신예 강자, 김형기의 어프로치 실력이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숱한 연습과 구력으로 나도 그 방면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데 형기의 어프로치 실력은 예술 그 자체였다. 내가 한 수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아무튼 우리 울포회의 2012년 모임의 마지막 라운딩은 이렇게 저물었다.
우리 조 스코어 (김형기 98, 이성민 97, 최종열 88, 나, 유현 93) ※ 정회준 96 ^ ^
난 오랫동안 동창들과 가까이 지내지 않았으나 종열이의 이끌림으로 이 모임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골프도 즐기고, 만날 때마다 과거의 추억에 젖을 수 있어 행복하고, 이 모임은 내게 이제 없어서는 안 되는 즐거움이 되었다.
12월에는 내년에 울포회가 사용할 골프장을 바꿨기 때문에 2일날, 시범 라운딩이 있고, 그 며칠 뒤에는 납회 모임도 있고, 울포회 때문에 더욱 바쁜 연말을 보내게 될 것이다.
우신 울포회 친구들, 모두 파이팅 !!
2012. 11. 25. (‘유현’이 쓴 글을 ‘정회준’이 고쳐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