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은 이랬다. 여름 휴가철인데도 휴가를 엄두도 못 내는 가장이 안스러웠는 지 집사람이 일요일에
견지 낚시나 한번 가자고 했다. 나 또한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던 터이라 작년 모임 이후로 영돈이 차
트렁크에 처박혀 있을 낚싯대를 영돈이에게 전화하여 택배로 받았다. 8월 들어 거의 매주 토요일마다
본부에서 부진보고 겸 대책회의를 하는 터이라 일요일 하루만 시간을 내기로 한 것이다.
이번 토요일도 대책회의에 뭔 모임 때문에 늦게 들어갔고, 일요일 아홉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준비라야 여분 옷가지 두어 벌에 낚시도구 대충, 코펠과 가스 렌지 그리고 라면 3개가 전부였다. 하늘마저
시덥잖다고 느끼셨는지 꾸리꾸리 한 날씨에 영동 쪽은 비까지 온다고 했다.
그래도 모처럼 떠나는 낚시 여행이라 약간은 들뜬 기분에 김밥까지 몇 줄 사서 차 안에서 부터 소풍 기분을
냈다. 장소는 특별히 생각나는 곳이 없던 터에 작년에 모임에서 갔던 홍천의 개울이 생각나 주동이에게
전화해 확인하고 방향을 수타사로 정했다.
외각도로 의정부를 지나 퇴계원 I.C.로 접어드니 멀리 낚시 가게가 보여 미끼용 덕이를 한통 샀다. 토실토실
살이 오른 놈들이 뭔가 해줄 것 같은 예감도 잠시, 경춘 고속도로를 타기도 전에 앞이 안 보이는 폭우가 쏟아
진다. 가다 못 가면 돌아오면 된다는 편한 맘으로 설렁설렁 차를 몰았다. 가평 휴게소에 도착할 무렵부터는
비가 많이 약해졌다. 해마다 이 무렵이면 함께 다니던 승욱이가 생각나 잠시 습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홍천I.C.에서 나와 수타사로 가면서 보니 잠시 동안의 소나기로 여울의 물살이 드세 보였다. 오늘 견짓대를
잡아보지도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잠시 있었으나 그러면 또 어떠리 하는 여유로운 호기도 생긴다.
수타사에 도착해 사진도 찍고 경내도 거닐면서 잠시 여유를 누렸다. 경내에서 찍은 사진을 지인들에게 보냈
더니 누군가가 ‘철없는 어른이들’이라며 시샘을 한다. 아무려면 어떠랴.
작년에 친구들과 견지를 했던 콘크리트 다리 옆 개울로 가니 물살이 너무 쎄져서 접근도 어렵고 견지 흘리기도
쉽지 않았다. 부득이 혼자 들어가 시도를 해 보았다. 서너 마리 피라미를 걸었지만 함께 하기에는 너무 위험해
보였고 마침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해 개울에서 나왔다. 장딴지에 온통 벌긋벌긋하게 풀 독이 올라 말 그대로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주동이에게 다시 전화해 이번에 모임이 있을 반딧불이 펜션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철정 검문소를 지나 현리
쪽으로 방향을 잡고 20여분 가까이 들어가니 큰 여울 곁에 그림처럼 자리잡은 펜션이 보였다. 까무잡잡한
아낙에게 보름 후에 예약한 고객이라며 답사를 왔다고 하니 커피를 끓여주며 반갑게 맞이 한다. 집사람이
아낙과 이야기하는 동안 견짓대를 들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펜션 바로 앞에 있는 작은 개울은 폭이 좁아 견지가
어려웠고, 좀 떨어진 큰 여울로 가니 소나기가 온 후라 물살이 거셌다.
준비해온 라면을 끓이고 묵고 있는 손님들과 막걸리를 한잔했다. 현지의 옥수수 막걸리였는데 걸죽한 것이
동동주 같은 느낌이었다. 막걸리가 한 통이 다 떨어질 무렵 새롭게 손님들이 오는 바람에 우리는 자연스레 일어
서야 했다.
다리를 건너기 위해 여울 쪽을 오르다 보니 견지꾼 몇이 보였다. 잘 잡히는가를 묻고 대답도 하기 전에 차를
세우고 도구를 챙겨 들고 여울로 내려갔다. 여울 폭이 넓고 물이 얕아 견지를 하기에 그만그만해 보였다.
앞서 견지하던 사람들의 살림 망을 보니 피라미 몇 수들 밖에 안보여 어차피 기대는 안 하기로 했다. 비는
툭툭 떨어지고 집사람이나 나나 입질을 못 받아 물살이 좀 있는 하류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서도 안되면
일찌감치 보따리를 싸자고 무언의 약속을 한 상태로 각자 자리를 잡고 스침질을 시작했다. 주변이 먹구름으로
어두워 오고 멀리 보이던 다른 꾼들이 안 보인다고 느낄 무렵부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집사람이 한뼘 쯤 돼 보이는 불거지(피라미 수컷)를 올린 것을 신호로 내게도 툭툭 거리면서 강한 입질이
들어왔다. 배에 노란 줄무늬가 가로로 그어진 예쁜 갈견이였다. 이후로 입질은 지속 되었고 늦은 오후라는 시간
대 때문이었는 지 한 시간 여 동안 제법 손맛을 봤다.
슬슬 팔이 아파올 무렵 갑자기 폭우가 퍼붓기 시작해서 허겁지겁 짐을 챙겨 차에 올라야 했다. 비 맞은
생쥐 꼴이 우스워 차 안에서 한동안 서로 킬킬거렸다. 어획고는 집사람의 견지 실력이 일취월장한 탓에
제법 푸짐했으나 집까지 가져가서 배딸 생각을 하니 도저히 내키지 않아 모두 방생 해 버렸다.
어차피 보름 후에 다시 볼텐데 뭘…
가는 길은 두시간 남짓 이었는데 오는 길은 꼬박 다섯 시간이 걸렸다. 경춘 고속도로가 대략 주차장이었다.
늦은 휴가를 보낸 사람들의 귀경 탓이었다. 집에 도착한 시간이 열시 남짓, 아침 아홉시에 출발했으니 13시간
동안 휴가를 보낸 셈이다. 그러나 그 13시간의 여행이 며칠 휴가를 보내고 온 것처럼 푸근하게 느껴졌고,
이제 둘만의 여행을 이따금씩 가게 될 것 같은 예감도 덤으로 얹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