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이근덕
작성일 : 2001/06/20 18:51
좀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모양인데 하고싶은 말 다 하려면 적어도 하루는 걸릴 것 같음.
그러나 간략히 축약하자면, 아시아나 항공노동조합과는 약1년전부터 관계를 하고 있었고,
이번 파업이 진행되는 동안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지.
이번 파업이 KAL의 경우와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적법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조합이 법을 지켜야 한다는 의지가 있었고 주변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다.
사실 노동조합이 법을 제대로 지키면서 파업을 하게 되면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회사측이 됨을 또 한번 느꼈지.
파업 첫날 1,400여명의 조합원이 모인 광경은 최근 수년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질서 정연한 모습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항공사가 며칠씩 파업한다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이어서
(사실 파업기간중 청와대, 건교부, 노동부 등에서 전화가 빗발쳤음)
하루빨리 파업을 종료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중 파업 3일째 모처로부터 조정의 의뢰를 받게 되었지.
수차례 파업의 조정을 해보았지만 이번처럼 힘들기는 처음이었다. 회사와 노동조합간 불신의 폭이 너무나 커서 이를 좁히는데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 했다.
노사간 불신의 깊이는 사소한 문제에까지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였고, 중요한 원칙에 합의하고서도 양측 모두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아 2일밤을 세우고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노사가 넘어야 할 산은 크게 세가지였다.
하나는 회사의 전근대적인 노무관리에 대한 반발이었고,
둘째는 너무나 현격하게 벌어져 있던 수당의 인상율이었으며,
마지막은 무노동무임금에 대한 입장차이였다.
이 세가지 문제가 꼬여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시점에
서 내가 한가지 제안을 하였다.
이 세 문제를 한꺼번에 풀 수 있는 안이라 생각했기 때문인데 (그 내용은 공개하기 어려움을 양해해주시길)
우선 노동조합을 설득하였다. 어렵게 수용하였다. 명분을 놓쳐야 하는 것을 노동조합이 수용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대신 실리를 취하자는 주장을 받아들이는데 3시간 이상 걸린 것 같다.
마치 강의하듯 내주장을, 그리고 수용해야 함을 쏟아부었다.
회사를 설득하였다.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측을 자문하는 노무사에게 왜 그 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는가를 설득하였고, 함께 push하였다.
사실 그 안을 받지 않고 기존의 양측 안을 고수했을 때 파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다 되었는가 하면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되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하고......
이렇게 진행되다가는 도무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나는 양측을 자극하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회사측이 한시가 급한 상황임에도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것을 보고, 또 노동조합이 타결할 조건임에도 다른 문제를 결부시키는 것을 보고,
나는 각각에게 조정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극약처방을 내리고 말았다.
당시 나는 내 창구가 아니고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처방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과는 교섭의 급진전, 결국 18일 오전 05:10에 잠정합의를 할 수 있었다.
그러고서도 또 문제가 발생. 노동조합이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치지 않고서는 사인을 할 수 없다고 고수하자(이를 말릴 수는 없었음)
사장이 이제까지의 모든 합의를 무효로 한다는 선언을 하고 퇴장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를 어쩔 것인가? 이대로 중단될 수는 없다.
나는 법적으로 아무런 효력도 없지만 양측의 간사에게 무조건 서명날인을 할 것을 강요하였다.
그런 후 노동조합에게 빨리 투표하고 오라고 주문한 후 등을 밀었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조합원들이 모인 곳으로 함께 갔고, 쟁의대책위원회의 의결을 거친 다음 개최된
총회에 옵저버로 참여하였다.
1,500여명이 모인(나중에는 1,900여명이 되었음) 총회석상에서 또 한번 문제가 발생하였다.
조합원들이 특히 여성 승무원(스튜어디스) 중심으로 집행부에 대하여 반발하는 목소리가 높았고(우리가 이것 따내려고 6일간 파업했냐? 사퇴하라! 등)
이에 대하여 집행부가 적극적으로 대응을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대로 가면 부결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 이후는 ?
아무런 대책이 없다. 어쩔 것인가?
하는 수 없이 내가 위원장의 허락을 받아 마이크를 잡았다.
대중연설을 좀 해보기는 했지만 1,900여명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막연하기도 했다.
그래도 어쩌랴. 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런데 한 남성조합원이 "당신이 뭔데 마이크를 잡느나"며 항의한다.
이럴 때는 그 한 사람을 묵사발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내가 당하거나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나야 한다.
그래서 나는 "3일밤을 교섭위원들과 함께 지새운 내가 말한마디 할 자격이 없느냐"는 질문을 그 사람이 아닌 1,900여명에게 물었다.
"자격이 있습니다"라는 대중의 답변은 그 한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는데 충분하였다.
그 다음, 나는 비를 피하기 위하여 입었던 우비를 반쯤 벗어던지고서 노동조합의 현재 분열적인 태도에 대하여 맹렬히 비판하였다.
내가 생각해도 겁도 없지. 사실 자칫 열기를 띤 분위기에서 잘못 이야기하다가 작살난 사례를 많이 보아왔고, 나도 실은 주어터진 적이 있었거든.
그런데 그날은 나도 눈에 뵈는 것이 없었는가 보다.
내 이야기가 먹혀드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순간
나는 한발 한발 그사람들에게 다가가면서 크게 제스쳐를 해가면서 강력하게 내 주장을 폈다.
그리고는 "현명하게 판단하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그 자리를 떴다.
이후 분위기가 평정되었다고 들었고, 투표 찬성률이
78,4%였다는 말을 전해 들으면서
나에게 스스로 말을 던졌다.
You did a good job!
회사측 노무사로부터 회사가 고마와하고 있다는 전화가 왔다.
이어 노조에서 위원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