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택 고려대 교수·고구려고고학
입력 : 2005.12.25 21:16 16'
▲ 최종택 고려대 교수·고고학
지금으로부터 1450여년 전 어느날, 서울 아차산에서는 백제군과 고구려군의 일대 격돌이 벌어졌다. 수도 한성(漢城)을 고구려에 넘겨주고 웅진(熊津)으로 밀렸던 백제가 점령군 고구려를 공격한 것이다. 한강변의 보루들에는 10명씩의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으며, 아차산 보루에는 각각 100여명의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백제군의 기습으로 구의동보루를 비롯한 한강변 작은 보루의 병사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전멸했고, 상황을 파악한 아차산의 고구려 병사들은 무기와 주요 장비만 챙겨서 퇴각했다.
지난 10여년간의 발굴조사를 통해서 당시 고구려군의 편제와 생활상 등을 이해하는 데 더없이 중요한 자료들이 출토됐다. 지금도 발굴 중인 아차산 3보루에서는 디딜방아가 발굴됐다. 지난해에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응하는 자료로서 주목받기도 했으며, 덕분에 보루 전체가 사적 455호로 지정됐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아차산 보루들의 훼손 상태는 매우 심각하다. 군용 헬기장과 참호시설로 파괴된 보루가 5개소에 달하며, 나머지 보루들은 체육시설과 등산로로 인해 훼손되고 있다. 며칠 전에는 등산객들의 발길에 채여 새롭게 드러난 방앗간 시설의 일부를 확인하기도 하였다. 발굴조사가 끝날 때마다 문화재청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국가 차원의 보존대책 수립을 요구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다.
현재 아차산 보루 중 7개소에 대한 발굴조사가 끝났거나, 진행 중이다. 이러한 일련의 조사과정은 얼핏 체계적인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지금까지의 발굴조사는 구리시와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의 간헐적인 예산 지원을 통해 이루어졌다. 다행히 중국의 ‘동북공정 덕분’에 지난해부터 발굴이 재개되기는 하였으나 예산지원이 없어서 몇 년씩 발굴이 중단된 적도 있었으며,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더 이상 산발적인 발굴조사만 할 수는 없어 금년 봄에는 아차산일원 보루에 대한 조사·보존·활용 방안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관계당국에 제출하였으나 역시 묵묵부답이다.
발굴조사가 완료된 후의 관리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한 예로 아차산 4보루는 1998년 발굴이 끝난 후 구리시의 예산 지원으로 흙을 덮고 설명 패널을 설치하는 등 응급 복구를 하였지만 사후조치가 없어 훼손이 심각한 상태이다.
지금 당장은 보존대책이 시급하지만 활용 방안 역시 필요하다. 아차산은 평소에도 많은 시민들이 찾는다. 보호구역을 설정하고 출입을 통제하는 보존방식은 이제는 낡은 것이다. 유적을 훼손하지 않는 적절한 활용 방안을 마련해 유적을 시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아차산 일원의 고구려유적을 묶어 사적공원화하고, 현장을 정비하여 답사코스를 개발하며, 기념관과 박물관을 설치하는 등 종합적인 대책의 수립이 절실하다. 이미 정비를 마친 한강 남안의 백제유적지들과도 연계해 한강을 중심으로 하는 고구려·백제 답사코스의 개발도 고려해 볼 만하다.
강풍과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추위에도 발굴 현장에서 고생하는 단원들이 안쓰럽지만, 오늘도 필자는 그들에게 말한다.
‘아차산을 사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