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식 (현대병원 부원장/내과전문의/의학박사)
내게 있어 산은 스승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삶의 다양함을 자연스레 가르쳐주는 스승.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고 다시 피어나는 봄철의 새싹과 꽃을 통해 생명의 신비로움을, 여름철 당당한 녹음진 푸르름으로, 가을철 다정다감한 단풍의 화려함으로, 때론 흰 눈에 덮여 순백의 세상을 만들어 주어 정결함으로 깨우침을 주는 스승과 같은 존재!
최근에는 바쁘다 는 핑계로 등산을 자주 하지는 못하지만 의과대학 시절 나는 산을 무척 좋아해서 산악반에 들어가 제법 여러 곳의 산을 올랐던 경험이 있다. 가입 초기에는 험한 코스를 많이 가고 심지어 암벽타기 까지 했으니 산악반 활동이 내게 큰 부담을 주기도 하였다.
북한산 인수봉 암벽타기를 하다가 추락할 뻔한 적도 있었고 설악산 종주를 하다가 한 나절 길을 잃고 탈진한 적도 있었으며, 배낭이 너무 무거워 선배 몰래 한밤중에 감자와 양파등 귀중한 식량을 몰래 버렸던 기억도 있다. 그런가 하면 힘든 산행 끝에 느꼈던 여러 가지 추억들도 많은데 그중에서도 오랜 갈증 끝에 마셨던 설악산 봉정암의 시원한 물 맛과 탈진 끝에 도착한 치악산 상원사에서 주지스님이 주셨던 오이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첫 무박산행이었던 소백산 정상에 펼쳐진 철쭉도 너무나 인상적이었고 속리산의 단풍도 황홀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대학교 산악반 시절이 내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바로 나에게 인내심과 자신감을 심어준 것이라고 생각 한다.
어려운 의학공부를 하면서 힘들고 지칠 때 마다 힘겨웠던 산행을 떠올리면서 이겨 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살아오면서 어려운 일이 닥칠 때 마다 ‘나는 할 수 있다’ 는 자신감을 갖게 해준 것도 그 당시의 산행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 나는 종합병원에서 성인병진료를 담당하고 있다. 삼십년간 환자를 진료하면서 많은 도움을 준 것 또한 다양한 나의 산행 경험이 아니었나 생각 된다.
내가 진료하고 있는 많은 환자들이 고혈압이나 당뇨병, 비만, 고지혈증 등 성인병(혹은 생활습관병)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질환들은 치료 및 관리 방법으로 운동이 매우 중요하고 그중에서도 유산소 운동이 특히 중요하다. 유산소 운동 중에서도 내가 가장 추천했던 운동이 바로 ‘등산’ 이다.
그렇지만 ‘등산이 건강에 좋다’고 하여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특히, 환자인 경우는 그 환자에 맞는 적당한 운동 처방이 필요한데 나는 환자분에게 등산을 권유할때도 나의 산행경험을 통해 그 환자분에게 적당한 산과 소요시간, 주의사항들을 전달하여 주곤 하였다.
등산의 목적은 다양하겠지만 심신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함이 제일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본인의 건강상태를 무시한 무리한 산행으로 치명적인 상황을 자초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따라서 본인의 체력 조건이나 건강상태에 맞는 적당한 운동 강도를 담당 주치의와 상의한 후에 등산을 계획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한다.
차 창 밖 멀리로 어렴풋이 도봉산과 수락산의 줄기가 눈앞에 보인다. 바쁘게 살아오면서 잊고 살았던 작은 것들이 ‘산’과 함께 다가오는 것 같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와이프의 손을 꼭 잡고 가벼운 산행이라도 해야겠다고 다짐 해본다.
( 이 글은 제가 8-9년전 등산전문잡지에 연재했던 칼럼 중 하나를 현재 시점에 맞춰 일부 수정한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