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당제, 일당제, 개성공단
(서프라이즈 / 개곰 / 2009-05-18 )
원로라는 말은 어떤 분야의 경륜이 있는 전문가라는 뜻으로 조선 시대부터 거의 지금과 비슷한 뜻으로 쓰였지만, 일본어에는 조금 색다른 뜻이 있다. 일본어 ‘겐로’는 메이지 유신에 혁혁한 공을 세운 원훈이 중심이 된 일본 군주의 자문 집단을 가리킨다. 겐로는 모두 9명이었는데 왕족인 사이온지 긴모치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메이지 유신의 양대 주축 세력인 사쓰마번과 조슈번에서 각각 네 사람씩 나왔다. 겐로의 가장 큰 역할은 총리를 지명하는 것이었다. 명목상으로는 군주가 재가를 하는 것이었지만 겐로들이 올린 지명자를 군주가 거부하는 일은 거의 없었으므로 나라의 실질적인 지도자를 9인의 겐로들이 정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9인의 겐로 중에는 우리 귀에 낯설지 않은 이름도 있다.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한 이토 히로부미도 겐로였다. 조선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강화도조약을 관철한 이노우에 가오루도 겐로였다. 러일전쟁 승리의 주역 야마가타 아리토모도 겐로였다. 조선을 일본에게 사실상 넘겨준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주역 가쓰라 타로도 겐로였다.
1868년 메이지 유신부터 1940년 마지막 겐로 사이온지 긴모치가 죽을 때까지 70여년 동안 10명도 채 안 되는 사실상의 건국 공신들이 일본의 중요한 외교, 군사, 경제 정책을 좌지우지했다. 일본은 19세기 말 국권파와 민권파가 충돌을 하면서 다당제의 틀을 일찍부터 세웠지만 중요한 결정은 초헌법 기구인 소수의 겐로들이 전담했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다당제라고 보기가 어려웠다. 일본은 거의 두 세대가 넘도록 무늬만 다당제였지 사실은 천황 중심의 일당 독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본도 1854년 페리한테 무릎을 꿇은 이후로 서방 열강들과 잇따라 일방적으로 불리한 불평등조약을 맺었다. 그리고 불평등조약을 개정하기 위해서 이 겐로들이 엄청난 노력을 일관되게 기울였다. 가령 이노우에 가오루는 리쓰메이칸이라는 서양인 접대를 위한 영빈관을 만들어서 여기서 파티를 정기적으로 열면서 서양 외교관들에게 일본도 서양과 동등한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애썼다. 심지어 일본 국명도 다르게 불렀다. 그 전까지는 '니혼'이었지만 너무 약하게 들린다고 해서 '니뽄'으로 바꾸었고 '유술'도 '유도'로 바꾸었다. 그러나 1895년 청일전쟁에서 이긴 다음에야 비로소 서양은 일본의 조약 개정 요구에 응해주었다. 불평등조약을 평등조약으로 고치는 데 무려 40년이 넘게 걸린 것이다.
일본은 자기 나라 국익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엘리트가 중심에 버티고 있었다. 일본이 처음부터 완전한 다당제로 굴러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아마 서양 열강들의 이간질로 분열과 반목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높다. 일당제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다당제라는 것이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이다. 물론 외세의 훼방과 간섭 때문이다. 일본은 정작 자신도 불평등조약으로 고생하면서도 조선이 처음으로 외국과 맺은 조약의 상대국으로서 조선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불평등조약을 강요했고, 조선이 내부 단결을 못하도록 끝없이 이간질을 했다.
흔히 북한을 왕조국가, 일당독재국가라고 비아냥거린다. 사실은 노무현 비웃기가 전국민 속에서 생활화되기 훨씬 전부터 이런 식으로 북한 비웃기가 예나 지금이나 성행한다. 나는 주사파다. 그러나 북한이 아니라 언제나 한국을 중심으로 놓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주사파다. 북한이 부르짖는 것도 그게 아닌가. 따지고 보면 선진국은 다 주사파가 잡고 있다. 한국처럼 친일파, 친미파가 잡고 있는 나라만 그걸 모를 뿐이지.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국가고, 정치적으로는, 그게 그 소리긴 하지만 자유민주주의국가다. 나는 한국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주사파이므로 한국이 가장 수준 높은 자본주의 체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이룩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핵심은 다당제다. 그런데 다당제는 아무런 에너지 투입 없이 저절로 굴러가는 줄로 아는 사람이 너무 많다. 절대로 그렇지가 않다.
개인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주는 다당제가 나도 좋다고 생각하고 일당제는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고 생각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다당제는 적어도 현재까지 인간이 도달한 수준으로는 굉장히 무책임한 제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미국을 보자. 클린턴이 북한과 거의 합의한 내용을 부시가 들어서면서 뒤집었다. 피를 말리는 신경전을 벌이면서 협상을 해온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황당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북한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영국만 해도 그렇다. 보수당 집권 때 짐바브웨가 백인 지주 땅을 무상몰수하지 않는 대가로 짐바브웨 정부한테 토지구입비를 융자해주기로 해놓고 노동당 정부로 바뀌니까 하루 아침에 약속을 뒤엎었다. 한국이야 말할 나위도 없다. 북한으로서는 휴전선을 코앞에 둔 개성을 그야말로 무방비로 내주고 파격적으로 싼 임금을 감수했는데, 이명박 치하의 저질스러운 한국 자본주의는 쥐뿔도 없으면서 시건방을 떨고 까불다가 그야말로 북한한테 된통 걸렸다.
6.15 합의를 존중하지 않을 생각이냐고 북한이 수차 물어봤는데도 딴청만 피우면서 미국 눈치만 살피고 삐라가 든 풍선이나 날리면서 세월을 보냈다. 아무 생각 없이 나라를 위험에 빠뜨린 것이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한국의 좌우 언론은 북한의 외교 정책을 <벼랑끝 전술>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벼랑끝 전술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벼랑끝 전술이 나빠지는 것은 이랬다가 저랬다가 약속을 헌신짝처럼 뒤집으면서 자기 말을 안 들어주면 너 죽고 나 죽자 하고 배째라 하는 식으로 나올 때다. 북한이 이랬다 저랬다 했던가? 전혀 그렇지 않다. 북한은 미국과 교섭을 하면서도 행동 대 행동으로 하자고 일관되게 요구했다. 약속을 번번이 뒤집은 것은 미국이었다. 물론 미국 언론이 세계 언론을 잡고 있으니까 서방 언론은 모두 북한이 땡깡을 부린 것으로 묘사한다.
남북 문제도 그렇다.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이 집권한 10년 동안 한국이 태평로창작단(일명 조선일보), 서소문창작단(일명 중앙일보), 세종로창작단(일명 동아일보)의 악다구니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대북 평화 노선을 유지하니까 휴전선을 코앞에 둔 개성을 북한으로서는 위험을 감수하고 내준 것이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이전까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한국의 잘난 다당제 체제를 보면서 일당제 북한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양식이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시민이라면 북한을 일당제 왕조국가라고 비웃기 전에 명색이 다당제지 나라와 나라의 약속을 겨우 10년도 못 가서 뒤엎는 정권을 뽑아주는 허약한 한국 다당제의 한심한 수준에 얼굴을 못 들어야 마땅하다. 벼랑끝 전술에 매달린 것은 김정일이 아니라 이명박이다. 개뿔도 없으면서 벼랑끝 전술을 구사했으니 그냥 떨어지는 수밖에 더 있나.
나야 개인을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전체를 중시하는 인민민주주의보다 체질에 맞고 또 장기적으로는 그것이 바람직한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다당제를 제대로 굴리는 것은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시민이 깨어 있지 않은 나라의 다당제는 결국 부자, 그리고 한국처럼 식민지를 겪은 나라는 외세추종세력의 일당 독재로 굴러가기 쉽다. 그리고 그런 일당 독재의 강력한 무기가 바로 개인의 자유를 억누르는 국가보안법이다. 조선일보는 아마 북한에서도 아주 잘 적응할 집단이다. 조선일보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생리에 잘 안 맞는 무리이기 때문이다. 괜히 태평로창작단이라는 이름이 붙었겠는가.
북한의 일당제를 욕하기 전에 우리가 지금 정말로 다당제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정권이 바뀌어도 극과 극으로 노선이 달라지지 않는 그런 안정된 다당제를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할지, 그 점을 고민하는 것이 생산적이다. 조중동 족벌 왕조 집단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한국은 무늬만 다당제지 실상은 국가보안법을 국시로 하는 일당 독재 체제다. 일당 독재 체제에서 살면서 북한을 일당 독재 체제라고 비웃으니 이 어찌 코미디가 아닐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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