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일희일비하면 안 된다
(서프라이즈 / 마늘한접 / 2012-01-20)
곽노현 교육감이 1심에서 벌금형을 받고 구속이 풀려 교육감직에 복귀하였다.
참으로 묘한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인신 구속이 아니니 일단 업무에 복귀할 수는 있지만, 8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이니 최종심까지 이 판결이 유지될 경우 당선무효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요컨대 당선을 확정할 법원의 판단은 최종심까지 유보가 되었다고 보아야 하며 이는 법원의 교묘한 줄타기로 이해된다. 당연히 곽노현 교육감은 물론이요 검찰조차 법원의 판단을 조롱하고 있다. 곽 교육감의 경우 항소로 그 의지를 보였지만, 검찰은 기자회견을 자청하며 법관모독죄를 서슴지 않았다.
사법부의 양 틀인 법원과 검찰의 문제는 단순히 판결 하나로 그치지 않는다. 정봉주 전 의원의 경우가 그러하고 한명숙 민주당 대표의 경우가 또한 그러하다.
네티즌은 법원의 판결 하나하나에 사법이 죽었다느니 혹은 정의의 판결이라 한다. 물론, 해당 판사가 다르고 양형에 있어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하나의 판결에 일희일비하는 양측의 모습. 어찌 해석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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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보자 매수 협의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아온 곽오현 서울시 교육감이 19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
1. 정봉주
나는 정봉주 전 의원의 경우 죄의 가늠이 아닌 절차상의 하자를 문제 삼았다.
법에 정해져 있는 최종심까지의 시간은 무시한 채, 법원 케비넷에 숨겨 있던 재판을 상당히 미묘한 시점에 판결했는가에 의문을 품은 것이다. 이 경우 법원은 법적 테두리 속에서 (올바른) 판결을 하였다고 볼 수 없다. 죄의 유무를 따지기 이전에 법원의 나태와 정치적인 상황까지 눈치 보아가며 판결을 유보하였다는 자체는 이미 사법부가 제 역할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정봉주 전 의원이 비록 유죄라 할지라도(이미 나온 또 다른 판결과는 분명히 차별이 있지만…) 이미 법원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버린 것이다. 삼권분립의 원칙을 스스로가 무너뜨리고 있다.
2. 한명숙
한명숙 대표의 경우는 법원에서의 판결보다는 검찰의 태도를 문제 삼고자 한다.
아니 단순히 한 대표뿐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각종 수사에 있어 검찰은 아직도 구태를 전혀 버릴 생각이 없다. 보도자료 혹은 국민의 알권리로 포장된 여론재판의 유도가 바로 그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와 한명숙 대표의 경우 검찰은 친절하게 수사 상황에 대하여 언론에 알렸다.
워낙에 검찰의 수사 방식이 그러한다 할지라도 피의자의 권리를 심각하게 위반하는 위헌 행위인데, 검찰은 여기서 더 나가 수사대상이 누구인가에 따라 피의자의 권리와 국민의 알권리를 자의로 판단한다. 권리를 누리는 피의자가 누구인지는 부언하지 않는다. 검찰이 왜 개로 불려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다.
3. 곽노현
워낙에 생채기를 받아서일까?
법원은 이번에 상당히 미묘한 판결을 내렸다. 벌금형, 일단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최종심이 나오기까지 곽 교육감은 업무에 복귀하겠지만, 최종심이 벌어질 때는 그때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능히 그 판결을 미리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비록 곽 교육감이 금전거래의 이유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다 하더라도 해당 선거 캠프에서 일어난 일이니 분명 책임을 져야 하며, 벌금형이라도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금액이니 보수 및 수구단체에서는 또한 곽 교육감이 사퇴하여야 한다고 당연히 난리다.
이번 법원의 판결은 법원이 제 역할에서 비켜 정치적 상황과 여론의 상황이 확정될 때까지 판결 자체를 유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양쪽 모두에서 욕을 쳐드시고자 작정을 한 것이리라….
4. 제안
국가의 제소에 의한 피의자 혹은 개인 대 개인의 형사소송에 있어 민사는 별개로 진행된다. 형사적 판결이 나온 이후, 이를 근거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거나 혹은 포기하거나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이미 한 차례 홍역을 치르신 분들이 또다시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형사소송 기간의 피해를 보상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판결문 하나로 명예훼손 혹은 무고의 이유로 피해 보상을 청구한다 하더라도 혹은 무시당하거나 또 혹은 과거의 아픈 추억을 되살리는 부작용을 부르기도 한다.
나는 제안하건대, 향후 형사소송에 있어 형사소송의 판결과 함께 민사적 책임 혹은 피의자의 권리가 침해당한 것에 대한 보상을 동시에 판결하였으면 한다.
법관 임의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송법상 혹은 헌법상에 명시하여 무죄를 받았을 경우 해당 범죄의 최고 벌금액을 보상금으로 하고 소송 기간에 대하여 피의자의 급여에 해당하는 보상금을 자동 지급하도록 이하 하위법률에 명시하자는 것이다.
이는 첫째,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막을 수 있다.
지금까지 벌어진 검찰의 수사와 양형의 과정과 결과를 보면 검찰에 의해 조준된 피의자는 최종의 결과가 무죄면 풀려나는 것 하나로 그치고 만다. 워낙에 정치적 사안이다 보니 피의자의 경우 또한 민사소송 등의 과정이 또다시 언론에 오르내리는 자체를 꺼리기도 한다.
검찰은 보도자료를 통해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말 한마디로 그간 피의자가 입은 손해와 명예훼손 등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상대적 강자라 할 국가기관이 개인에 대해 상당한 정신적 신체적 금전적 피해를 입히고도 이의 보상은 따로 법원에서 만나자는 꼴이 아닌가!
또 다른 재판이 진행되는 사회적 비용도 막을 수 있고 또한 검찰이 확증이 없이 무리하게 공소장을 남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며, 개개인간의 송사에 있었어도 일방의 주문에 대한 판결에 있어 상대 측이 받을 피해까지도 (무고자의 재판 청구가 없이)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당장의 민사소송 역시 재판기간에 소요되던 변호사비 등 제반 비용의 지불로 그칠 것이 아니라 최종심이 나오기까지의 기간에 당사자의 급여에 상당하는(물론, 여기서 최저 비용은 미리 정하여야 한다. 최소 일일 10만 원 이상) 보상금을 판결하도록 한다면 꼬리를 무는 재판의 소모적 비용도 아낄 수 있으며 고소중독자의 횡포나 대기업의 시간 끌기 등도 막을 수 있다.
5. 일희일비
우리는 암암리에 재판의 정치적 결정을 비난하면서도 또한 정치적 판결을 주문하기도 한다.
정치적 역학관계의 따짐 이전에 여론몰이식의 압박 또한 사법권의 보장과 공정한 집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법관과 검사 당사자의 의지와 국가 기관인 법원과 검찰의 확고한 준법의지가 물론 우선 요구되지만, 한가지 재판 결과에 따라 혹은 ‘죽일 놈’, 또 혹은 ‘살릴 놈’ 식으로 가늠하고 평가하는 것은 분명 장기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경우 또한, 위법이나 위헌 여부를 다시 묻는 과정이 존재하며 헌재의 결정에 따라 법원의 판결은 물론 법 자체가 개정되기는 하지만, 위헌소지의 법률에 의거 피해를 입은 당사자에 대한 보상 또한 별도의 재판이나 청구 절차를 요구한다.
헌재의 결정이 모든 사안에 있어 정치적 발전이라는 작은 위안을 삼을 수 있겠지만, 당사자가 겪는 고통에 대한 보상에는 이르지 못한다. 피해 당사자가 다시 청구나 재판 등의 고통을 지나야만 그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이다. 피해자의 입장에 이는 분명 또 다른 ‘지옥문’과 다름이 없다.
또 한가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봉주 전 의원의 경우, 법원의 판결은 분명 법이 정한 시한을 넘겨 결정이 되었다. 이 경우에 대한 법률적 장치가 전혀 마련이 되어 있지 않다. 법률의 허술함인데 단순히 정봉주 전 의원의 경우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각종 법률에 해당 법률을 어겼을 경우 이에 대한 법률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경제에 관한 법률조항에 있어 독과점의 방지법은 독과점이나 담합을 한 기업에 대하여 과징금을 물을 뿐이며 이 과징금은 결국 국가로 귀속이 된다. 실제 피해자인 소비자에게는 아무런 보상이 없다. 국민이 기업을 대신하여 세금을 내는 것과 무엇이 다르며, 기업이 실제적으로 입는 징벌은 전무한 상황이다.
이 경우 또한 소비자에 대한 피해보상을 당연히 지불하는 것으로 규정해 두고 지급토록 한다면 기업의 횡포 또한 막을 수 있다. 물론, 현금으로 해당 물품을 산 경우 구제받기 힘들겠지만, 카드 거래나 통장입금(직불카드 등)의 경우 최소 5년 이상은 자료가 남아 있으니 가능할 것이며 현금 거래에 따른 세금이 탈루 또한 막을 수 있는 부수적인 이득이 있다.
국가 변호인제 또한 몇 가지 보완할 사항이 있다. 돈이 없어 변호인을 구하지 못할 경우 국가가 변호인을 지정하여 주기는 하지만, 그 혜택은 변호사의 변호비에 국한할 뿐이다. 앞서 말한 민사상의 손해를 판결과 동시에 이루어지도록 하고, 만약 국선변호사가 제 역할을 가하지 못하는 경우 엄중히 그 과오를 묻고 보상하도록 한다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도 충분히 이루어질 것이다.
글을 잇다 보니 다소 중구난방으로 흐른 경향이 없지 않으나 국가인권위처럼, 법률의 허점을 찾아 이를 보완하고 이의 개정을 요구하도록 하는 권리를 갖고 있는 기관은 입법기관과 행정부에 그치고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두 기관과 별개로 법률의 허점을 찾아 이를 보정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별도의 기구를 두는 것이다.
물론, 완전할 수는 없다. 옥상옥이 될 가능성도 있으며 강자에게 더 유리한 결과만을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사법적 시도와 입법적 분권은 분명 개인의 인권신장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며 국가 기관의 횡포를 막는 기관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국가인권위는 개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기관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국가인권위는 물론이며 법률판단의 기관 역시 독립성이 훼손당하지 않도록 법률적인 지위를 보장하고 그 위원의 선정에 국민의 직접적인 선출이 가능하도록 한다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또 다른 권력의 보호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헌법 휘하 각종 법은 분명 개개인의 행복 추구를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이 목적에도 불구하고, 법은 상대적 강자에 유리하도록 조정이 되어 있고 또 그리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 현실의 근원적 해결에는 누구나가 다 몰라라 한다.
단지 판결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면서 혹은 안도하고 또 혹은 두고 보자는 다짐뿐이며 법조계 역시 확인된 모순과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 정봉주 전 의원의 경우 선거법 개정의 목적 자체가 선거법상의 위반 여부만을 초점으로 할 뿐 국가 기관이 법원의 태만과 판사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는 방향으로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며 하루하루 죽 끓듯 하는 유권자의 행태도 분명 한몫을 한다. 꾸준히 제기하고 또 정치적 힘을 갖도록 노력하여야 하지 않을까 한다.
마늘한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