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향을 찾아나서야 한다. 살아 있는 동안 이래야 될 것 같다. 다음의 세계를 찾는 것은 이미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일찍부터 꿈을 가지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어릴 때는 윗사람들의 말을 곧잘 듣는 편이어서 꿈을 가지라는 말을 그 의미도 모른 채 무조건 따르려고 노력했다. 이것이 습관이 된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그대로다. 아들 녀석이 꿈을 키우며 밀고 올라오는데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 땅에 발을 디디려고 애를 써도 허전함을 달래기 어렵다. 나이에 따라 상황에 따라 꿈의 내용이 달라진다. 정치적이기도 하고, 종교적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상향을 그리며 사는 버릇이 몸에 배어버렸다.
무던히 더운 여름 땀을 훔치며 몇 가지 일에 몰입해보지만 마음은 다른 곳을 떠돈다. 피서를 겸하여 이상향을 찾아 나선다. 분명히 있다고 하는데 아니 가보고서는 못 배기겠다. 중국 운남성 고원에 있다는 샹그리라(香極里拉, Shangrila)다. 급하게 일정을 잡고 길을 나선다.
좀 비싼 값으로 앞좌석에 앉아 밤 비행을 한다. 우선 운남성의 성도인 곤명(昆明, 쿤밍)으로 향한다. 캄캄한 하늘을 몇 시간 날아서 자정이 지난 시간에 닿았다. 환한 웃음을 가득 안고 안내를 맡은 여인이 나와 있다. 몇 번을 오가도 역시 외국이라 도우미가 필요해서 한국에 유학한 바 있는 젊은 여교수에게 시간을 청했다. 밤공기가 시원하다.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아 사시사철 봄과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상쾌한 공기와 여인의 향기로운 웃음으로 새 세상을 만난다.
아침 일찍 비행기에 올랐다. 대리(大理, 따리)로 간다. 우리에게는 돌로 더 알려져 있다. 이곳의 돌이 대리석이다. 구름의 빛깔이 참 맑다. 옆에서 조잘거리는 소리가 좋다. 산봉우리들을 밑으로 내려 보며, 여인의 향을 맡으며, 그렇게 몇 십분 지나니 밑으로 커다란 호수가 나타난다. 바다라 해도 좋을 만한 넓이다. 대리의 유명한 이해(洱海, 얼하이)란다. 그리고 사뿐히 산위에 내려앉는다. 속세의 찌꺼기를 씻은 듯하다.
제법 세찬 바람을 맞으며 택시에 오른다. 왼쪽으로 너른 호수를 끼고, 오른쪽으로는 상당한 높이의 산이 병풍처럼 늘어져 있다. 산 이름을 물으니 창산(蒼山, 창싼)이란다. 창산과 이해 사이에 조그만 도시가 대리다. 차창을 열고 서늘한 바람을 한껏 마신다. 기사와 함께 담배를 나눠 피우며 산과 물 사이를 내달린다. 바람에 흩날리는 담뱃재가 거추장스러워도 창을 닫지 못하겠다. 기사가 건네준 진한 향의 중국담배가 구수하다.
숙소를 미리 잡아놓았다고 한다. 그만그만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도시를 이룬 어귀에 닿아 골목길을 내려간다. 이내 자그마한 숙소의 간판이 눈에 띤다. 나인회가(懶人回家)라고 적혀 있다. 휴양소의 이름으로는 제격을 충분히 갖추었다. ‘게으른 자 집에 돌아오다.’ 시간을 잊고 쉬기에 적절하겠다.
들어서니 역시 그 이름에 어울리는 꾸밈새다. 조그만 마당에 간단한 의자와 탁자가 있고, 그 위로는 커다란 우산이 비스듬히 그늘을 지운다. 과꽃 한 무더기가 놓여 있고, 이편에는 백합과 국화가 꽂혀 있다. 주인장의 손님맞이도 역시 여유가 만만이다. 파란 하늘 아래 맑은 햇볕과 서늘한 바람에 마음이 풀린다. 밖 벽면에 새겨진 ‘懶是人福(게으름, 이것이 사람의 복이다)’라는 글자를 보고서 흐뭇함이 솟구친다.
중국의 어디를 가나 갖가지 구호가 적힌 붉은 천이 지천이다. 건설해야 되고, 발전해야 되고, 힘써야 하고 등등. 그런데 여기에서는 게으른 자의 미덕을 감히 드러내었다. 이상향의 길목에 있는 것이 확실한 모양이다. 이미 상당한 거리에 날아왔고, 낯선 땅의 공기가 맑아 나른한 여유를 찾겠다.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길어지고, 담배를 빠는 횟수도 줄어든다. 아무런 생각도 없는데 말이다.
여기는 운남성의 여러 소수민족 중 하나인 백족의 고장이다. 대리고성(大理古城)의 좁다란 골목에는 갖은 상점이 빽빽하다. 화려한 전통문양의 옷가지가 널려 있고, 먹거리 점방이 늘어섰다. 예서는 게으를 수가 없다. 번잡해서 정신을 놓지 못하겠다.
백족의 전통 의상이 화려하다. 원색 그대로의 조합이 전혀 촌스럽지 않다. 신발에서부터 모자까지 원초적인 꾸밈새가 맑은 하늘 아래 잘 어울린다. 햇살조차 가림이나 꾸밈이 없이 내리쪼인다. 그 빛을 받은 선명한 색이 제빛을 내뿜는다.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감정의 내면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하다. 손을 내밀면 언제나 하나가 될 것 같은 투명함이 아주 편하다.
멀리 유명한 오화루(五華樓)가 우뚝 자리를 잡았다. 옛 당나라 시기 남조국(南詔國)의 중심지다. 곳곳에 그런 대로 흔적이 남아 있다. 역이 있는 근처의 새 도시에는 제법 높은 건물이 있는데, 고성은 말 그대로 고성이다. 남쪽의 문헌루(文獻樓)에서도 위엄이 전해온다.
창산 밑자락에 높은 세 개의 탑이 멀리서도 우뚝 눈에 띤다. 三塔寺(삼탑사)란다. 남조국 시대에 세워진 웅장한 절인데, 탑과 건물을 다시 지었다. 불교의 영역을 짐작할 수 있는 유적지다. 산 아랫자락으로부터 일직선으로 세워진 건물이 꽤 높은 곳까지 이어져 있다. 투명한 공기에 그대로 쏟는 햇빛을 무릅쓰고 하나하나를 둘러본다. 안에 모셔진 불상의 이름이나 배치가 우리와는 달라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 맨 위 본전에서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중들이 염불을 외는데, 곡조와 자세가 마치 초등학교 입학식 모습과 비슷하다. 진중함과 엄숙함이 빠진 종교의식은 사람을 안정시키지 못한다. 역시 여기는 관광지로서의 절이다. 재건의 의도가 빤하다. 비싼 입장료만 치른 셈이다.
식당마다 백족 전통의 음식이라는 팻말을 내걸었다. 앞으로 호수, 뒤로 산을 둔 고장의 음식재료는 나름대로 풍부할 것이다. 물론 물고기와 나물이지만 이국에서의 맛이 궁금하다. 첫 식사에서 적응하지 못했다. 재료는 달라도 맛은 모두 신맛이다. 이곳 음식의 특징이 신맛이란다. 모두가 시다. 다른 식당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신맛이지 계속되는 신맛이 부담스럽다. 이쯤에서는 두고 온 이승의 매콤한 맛이 그리워진다.
다만 세 여인과의 자리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안내인을 옆에 두고, 새로 만난 사천의 아가씨와 감숙의 아가씨가 음식 맛을 대신한다. 특별히 대접을 한다고 명망있는 식당을 골라 몇 가지 특색 있는 음식을 준비해두었다. 그 배려의 고마움과 여인들 속에 파묻혀 먹는 시간이 즐겁다. 특히 여기 여인들과의 몇 마디로 주고받는 대화에 안내인의 질투심이 느껴져 야릇한 재미를 더하겠다. 권력의 맛이 그렇듯이 독점의 우쭐함이 흡족하다. 속세의 욕망은 풍광의 아름다움에 더해지는 듯하다.
간단한 안마로 지친 몸을 달래고, 잠자리에 든다. 게으름에 게으름을 더한다. 개 짖는 소리와 닭 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중국 서쪽에 치우친 여기는 시간보다 해가 늦게 뜨고 늦게 진다. 여름의 긴 하루가 더욱 길게 여겨지기 마련이다. 새벽인가보다 해서 창밖을 보니 아직 캄캄하다. 시계의 시간은 해가 한참 솟아 있어야 했다. 문득 이국에서 고향을 맛본다. 동지섣달의 개 짖는 소리와 닭울음소리를 한 여름의 낯선 땅에서 듣는다. 새벽마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닭이 운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창산에 오른다. 묵은 도시에서 바라보면 항시 구름에 덮여 있다. 이방인을 위해 리프트가 놓였다. 매표소에 이르는 길가에 가게가 양쪽으로 즐비하다. 과일을 피해가지 못하겠다. 말랑하게 익은 커다란 망고가 그렇고, 옻칠을 한 것 같은 야자열매가 또 그렇다. 주먹만한 크기의 대추도 눈여겨볼만 하다. 네모난 복숭아는 전설에도 나오는 신선의 과일이다.
창산의 푸르름은 소나무와 잣나무가 지어냈다. 버섯이 많은 환경을 이해하겠다. 꽤 높은 데 이르러서도 이렇다 할 비경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산속에서의 맑은 공기와 서늘함이 상대적인 만족감을 더해준다. 가을이다. 더위에 묻혀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짓궂게 본전을 따져본다.
대리의 저녁은 아늑하다. 게으름이 미덕인 숙소의 안락함부터 그렇다. 좁은 뜰 안에 백합의 향이 진하다. 항아리에 꽂힌 각색의 과꽃이 어여쁘다. 용나무의 그늘 아래 작은 의자에서 약한 담배를 맛본다. 수채화로도 좋고, 진한 유화로도 표현이 될 성 싶은 한적한 시간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 싫지 않다.
신맛에 질린 입을 달래야 했다. 수소문을 하고 식당을 찾아 나섰다. 골목길의 희미한 가로등에 보이는 벽면마다의 시구가 눈을 끈다. 글씨체가 맛깔나다. 내용이 가벼워 빠져들지 못하지만 붓끝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주린 배가 보채는데도 눈은 머물러 있다.
첫길인지라 어두운 거리를 돌고 돈다. 작은 공원에 모여 집단 체조를 하는 아낙네들의 몸짓이 적막함을 깨뜨린다. 중국 어디를 가나 이런 풍경이 벌어진다. 통일된 동작이 씁쓸하다. 여기 남서쪽 끝에서도 예외가 없으니 그리 반갑지는 않다.
대나무로 꾸며진 너른 식당은 벌써 사람들로 가득하다. 밖의 공기를 마시고자 처마 밑에 자리를 잡았다. 여유로운 눈과 다르게 손발이 바쁘다. 달려드는 모기를 방치할 수 없다. 여러 요리들이 다 되는 모양이다. 약속한 두 아가씨는 일 때문에 오지 못했다. 비위를 맞추려는 안내인의 노력이 애처롭다. 몇 가지 음식에서도 여전히 신맛은 사리지지 않는다. 오골계 국물로 허기를 달랜다.
댓잎의 흔들림과 투명한 하늘에 서쪽 초생달이 곱다. 그 주변에 몇 개의 밝은 별들이 수상쩍다. 문득 떠나기 전 우주의 쇼가 벌어진다는 기사가 떠오른다. 달과 화성, 수성, 토성, 목성 등이 가까운 거리에 모인다고 했다. 그때서야 눈길을 떼지 못한다. 창산 바로 위에 달과 별무리들이 어우러져 그 모임의 의미를 떠올린 놈에게 손을 흔든다. 입으로의 불만족스러움을 눈으로 달랜다. 조그만 지구에서 멀미를 느낀다. 자그마한 덩어리로 허공에 위태하게 떠 있는 모습이 불안하다. 급하게 눈을 내려 시궁창의 냄새를 맡아야 했다.
이국 여인네의 향기를 그리면서 슬그머니 잠에 들었다가 닭소리를 듣고 깨어났다. 아직 어둡다. 아침 여강(麗江, 이쟝)행 버스를 타야 했다. 국수 하나를 말아먹고 차를 기다린다. 길가의 나팔꽃이 이슬을 머금고 소담스럽게 피어 있다. 풀잎의 이슬이 가을을 떠올린다. 배낭을 맨 몇몇 서양인들도 같은 처지라는 생각에 친밀한 정을 느낀다.
중국의 시외버스는 처음이다. 우선 뒷문에 딸린 화장실이 이채롭다. 국수로 달랜 허기가 탈을 일으켜도 낭패될 일은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고성에 묻혀 있다 벗어나니 또 다른 별세계다. 이제 게을러진 마음을 추스르며, 그저 이상향을 찾아 나선 여행객임을 자각한다. 푹 젖었던 이삼일이 긴 세월처럼 여겨진다. 꿈속의 꿈이다.
창밖에 펼쳐진 운남의 풍경이 가깝게 다가온다. 멀리 바다만한 호수가 보이고, 산 아래 옹기종기 무리지은 집들이 객체로 바뀐다. 좁은 의자에 나란히 앉아 밖을 응시하다가도 허벅지에 전해지는 젊은 여인의 감촉에 신경이 예민해진다. 눈은 밖을 향하고 있지만 뇌와 심장은 온통 다리에 집중된다. 향기도 그만이다. 제법 전문가다운 안내와 조언을 계속한다. 운남에서는 담배를 쉽게 주고받지 말라는 둥, 여기의 고도가 몇 미터라는 둥 이런 말이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밀착의 정도를 더하고자 몸을 움직여본다. 아는지 모르는지 아랑곳하지 않아 애간장을 녹인다.
도로가의 논과 밭에 작물이 가득하다. 밭에는 옥수수, 해바라기, 담배가 대부분이고, 논에는 물론 벼가 자라고 있다. 대리에서 여강으로 가는 길은 고갯길이다. 상당한 높이의 산을 굽이굽이 돌아 올라간다. 밑으로 보이는 호수와 산과 마을이 정겹다. 오를수록 고원이 지어낸 초원이 볼만하다. 소, 말, 양들이 노니는 모양이 그림이다. 계속 오르기만 한다.
한참을 오르고서야 잠시 멈춰 선다. 기사가 급했나보다. 담배 하나를 피우면서 주위를 돌아본다. 쪽파밭이 넓다. 담장 아래 키가 큰 풀 하나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뜬다. 대마다. 삼이 여기 저기 흩어져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다. 어릴 때는 밭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것이 마약으로 취급되어 다가서기에도 죄의식을 가져야 했다. 대마에 대한 여러 추억거리를 떠올리며 몇 잎을 따서 감추고 싶은 충동을 억누른다. 샹그리라의 길목에서는 굳이 이의 도움을 얻지 않아도 될 것이다.
두세 시간을 오르고서도 내려가질 않는다. 그리고 잠깐 내려간다 싶을 즈음 멀리 도시를 보게 된다. 여강이다. 대리보다 훨씬 높은 고지에 자리하고 있다.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처음 찾는 여행객을 반긴다. 젊은 시절 상큼한 아가씨들과 설악산을 찾았을 때의 빗물은 초록빛이었다. 지금도 초록색 비만 내리면 마음이 설렌다. 여기 고원에서 다시 이국의 초록비를 만난다. 야릇한 젊은 처녀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수긍이 어려운 값을 치르고 택시를 탄다. 숙소 인근의 모든 집이 나무로 지어졌다. 높은 것도 없다. 그만그만한 것들이 마치 한옥집을 연상시키듯 연이었고, 사이사이 골목길은 예스러움을 간직하였다. 작은 호텔마저 그 모양이다. 이층에 작은 방을 고르고, 창밖의 비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마신다. 높은 곳에 올라와 있다. 추위가 몰려온다. 찻잔의 열기를 보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