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는 매화가 만발한다. 눈과 추위가 여전한 곳에서는 음력이려니 아니면 방 안 화분의 꽃이려니 했다. 오밀조밀 다듬은 분에는 물론이고 정원 가득 붉게 그리고 하얗게 매화가 가득하다. 으슬으슬한 냉기 속에서 봄이 피어났다.
생각 밖의 풍경을 감상한다. 사천 성도의 두보 초당에서다. 도시를 갓 벗어난 숲 속에 진풍경이 펼쳐진다.
어제 유비 유적지에서와 같이 분재의 명자꽃인줄 알았다. 줄기의 생김새가 달라 다가서니 매화다. 연분홍으로 망울망울 화사롭기 그지없다.
초당이라기에 그저 그러려니 했다. 역시 내버려둘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한 문인의 시향이 아직 생생한데 그만큼의 관심은 당연하겠다.
입구에서부터 싯구로 채워졌다. 돌에는 돌에, 나무판에는 나무판에 그리고 지금의 인쇄물까지. 울창한 나무와 고풍스런 기와가 싯구보다 더 시답다.
안개라 해야 할지 연무라 불러야 할지 사시사철 이런 모양이다. 잠겨 있는 옛 공간에 이월의 봄이 갇혀 있다.
안개에 젖은 추위가 매화의 향기를 억누른다. 한가롭게 거닐수록 붙잡혀 머물려 해도 움츠러든다. 보이는 것은 꽃인데 말이다.
봄이라 해도 아직 봄이 아니라더니 예서 나온 모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향기도 얼어붙고 가녀린 여인도 얼어붙는다. 수선화도 한창인데 청초로울 뿐 화사함을 전하지 못한다.
이월의 매화는 눈앞에서 차가운 안개에 짓눌려 활짝 피어났다. 몇 천 년의 시향이 머무는 두보가 머문 초당에.
불편한 몸이 애처롭다. 가녀린 몸매가 더욱 힘들어 보인다. 애써 견디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오고, 보일 듯한 눈물이 비수로 파고든다.
시간이 안타까워 농으로 던지는 말뜻을 애써 못들은 척 하지만 어찌 빈말로 들으랴. 홀기는 눈을 맞서 보기가 어렵다.
추위를 견디고 피어난 꽃잎은 어찌 붉은가. 화려함이 서러운 걸 예서 느낀다. 주위의 차가운 안개는 봄이라서일까. 어찌 일찍 피어나 어울리지 않는 화려함을 드러내는지, 사람의 마음이 더딘 것인지 모를 일이다. 겹으로 소담스러운 붉은 망울망울이 귀하고 곱기가 이를 데 없다.
흩어진 것이 마음을 흩었을까. 작은 분에 돌을 얹히고 그 위에 응집하였다. 방만한 글귀가 어지러워 싯구로 모으듯이. 시인의 자취가 서린 곳에서 제법 어울린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만 될 것 같은 조심스러움이 절로 인다. 향이야 눈으로 맡고, 굳이 손이 아니더라도 촉감이 없으랴. 저 귀한 모습은 약간의 냉기와 우수에 젖은 듯한 세상 때깔에 말미암았다.
여기에서는 꽃이 아니다. 그 송이송이로 갖은 선경이 보이고, 하늘하늘한 선녀의 야릇함이 나온다. 비로소 마음은 선경에 이르러 선녀의 은은한 향과 몸놀림에 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