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막바지다. 봄이 목전이다. 봄은 역시 꽃과 함께 찾아온다. 추위에 떨던 무채색의 빈가지에 예쁜 색과 향을 가지고 피어나는 꽃이 어찌 신기하지 않으랴. 날마저 따뜻해져 얼음과 함께 마음이 녹고, 화사한 꽃은 새로운 세상을 여는 선봉이다.
그 첫째가 매화다.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사군자의 하나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 매화는 정말 신비스러움을 가졌다. 어떻게 이 추운 날에 꽃을 피울까 의아해진다. 그 의아함은 제 생각일 뿐이고, 그래도 매화는 눈앞에 보란 듯이 피어난다.
얄팍한 생물 지식을 동원해보면 온도가 적절해야 될 터인데, 아마 달력을 손에 쥐고 시기를 가늠하는가 싶다. 두터운 옷으로 무장하고, 겨울에 두 손을 든 무기력의 눈앞에 신천지로 나타난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추운 날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굵직한 일로 몹시 힘들었다. 일의 하나로 어느 집무실을 찾았다. 너른 문 앞에 수줍은 빛이 보였다. 많은 화분 가운데 앙상한 작은 가지에 흰꽃이 달려 있다. 매화다! 인사도 잊은 채 서 있었다.
아직 제대로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 수줍은 듯 겨우 모양을 낼 따름이다. 꽃술이 잎보다 더 크다. 세 개의 분에 20여 송이다. 모두 희다. 향은 온 신경을 써야 겨우 맡을 수 있다. 올 첫 봄꽃은 이렇게 마주 했다.
옛글에 매화는 정월(음력)에 핀다고 했다. 믿지 않았다. 아마 방안에 둔 분재의 것을 가리킨다고 여겼다. 억지로 조건을 짓지 않는 한 한겨울에 꽃이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세상은 한 사람의 머리로 다 해석이 될 만큼 작지 않다. 오만도 유분수다. 섣부른 놈이 항시 문제다. 아주 초보적인 몇 가지를 알았을 때 모든 것을 이해한다고 자부한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아직 오만함의 일부를 자존심으로 알고 버티고 있지만, 그래도 이전처럼 막무가내는 아니다. 처절하게 낭패감을 몇 차례 맛본 뒤에야 조금 나아졌다. 겸손함을 수없이 되뇌었어도 말은 말이고, 생각은 생각이고, 몸은 몸이다.
꽤 오래 전 중국 소주(쑤저우)에 간 적이 있다. 2월 중순이었다. 맞은 친구가 좋은 때 잘 왔다고 하면서 매화구경을 가잔다. 집에 매화분이 많은가보다 했다. 바다만큼 넓은 태호를 지난다. 많은 사람이 북적이고, 정상적인 차 운행이 힘들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느린 속도 때문에 길가의 광고물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梅海祝祭’다. 해마다 이쯤 태호에서 열린단다.
닿아서 눈에 들어온 광경은 충격이었다. 작은 동산을 멀리 두고, 끝이 보이지 않는 들에 매화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말 그대로 매화바다다. 마음을 먹고 심었는지 그만그만한 나무가 가득하다. 마치 과수원이다. 그 많은 나무에 잔뜩 꽃을 달고 있으니 바다일 수밖에. 사방이 꽃이다.
애써 여기는 아열대 지역일거니까 그러겠거니 고집을 피워보지만, 펼쳐진 꽃바다를 보면서 체면을 차리기에는 턱없다. 매화는 정말 정월에 핀다는 것을 똑똑히 확인했다. 흰매화, 붉은매화, 겹매화 갖가지 종류의 매화를 다 보았다.
겨울에 사천 성도(청두)의 유비와 제갈량의 사당에 갔을 적에도 마찬가지의 경험을 하였다. 연무에 덮인 사당 안의 줄지어 선 커다란 나무에 붉은 매화가 주렁주렁 피어 있다. 개화 시기 때문에 놀라지는 않았으나, 안개에 핀 꽃의 인상이 아직도 남아 있다. 꽃에서 풍기는 신비로움이 경외스럽고, 음습한 추위가 메마른다. 행여 얼어 죽지나 않을까 염려도 된다. 매화만이 아니다. 수선화, 명자나무꽃 등이 매화의 외로움을 달랜다.
우리의 매화는 언제인지 비교해보고 싶었다. 집안의 매화는 이때쯤 가능하다. 얼마 전 감상했던 대로다. 그래도 매화는 섬진강과 하동이다. 역시 축제를 연다. 3월 중순이다. 벚꽃과 개나리에 앞선다. 산에 드문드문 생강나무가 노랗게 피어나고, 공원의 산수유가 필 때이다. 온산이 하얗다. 다소 비릿한 향기가 진동한다. 축제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포장마차들이 어울리지는 않는다. 그래도 완연한 봄 속에서 보는 매화밭이 좋은 건 어쩔 수 없다.
일본의 매화를 감상하기는 조심스럽다. 일본인도 매화에 대해서 유난을 떤다. 그림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사람의 손이 많이 가서 마음에 싫지 않은 의무감이 같이 한다. 있는 그대로 흐드러지게 핀 벚꽃의 화려함에 비해 매화는 다소 고상하다. 범접하기 어렵다. 아주 차분하게 리듬을 낮추고 들여다 보아야 한다.
며칠 전 오사카에 들렀다. 도시 골목길을 서성거리다 담장 위로 솟은 가지에 매달린 홍매화를 보았다. 곧 꽃에 홀렸다. 또 다른 게 있나 샅샅이 살폈다. 사천왕사로 가는 길에 무슨 종자인지 벚꽃까지 눈에 들어왔다. 수선화도 노랗게 작은 화단을 꾸민다. 그래도 매화가 주류다. 드문드문 집안에서 기르는 매화꽃이 보였다. 절 마당에서도 그렇다. 투명한 공기를 넘어 파란 하늘 아래 귀하게 모습을 드러낸 몇 가지 꽃이 여행의 재미를 보탰다.
본격적으로 찾아보기로 했다. 오사카성에 매화밭이 있다는 것을 문득 알았다. 높은 곳에 성이 우람하게 서 있고, 그 아래 오른편 뒷쪽에 매밭이 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마침 때가 맞았다. 머리로 장면을 그리며, 한 시간 이상을 걸었다. 첫걸음이라 제법 먼 길이다. 힘든 줄 모르고 발을 옮겼다.
역시 머리에 그린 대로다. 제법 널찍한 공간에 수천 그루의 묵은 나무에 꽃이 한창이다. 오랜 시간 그 자리에서 이렇게 피웠을 것이고, 지금은 여유를 머금은 고목이 되었다. 가지 하나하나에 사람의 손길이 미쳤다. 이리저리 다듬고 매만져서 방안의 분재와 같다. 그 가지마다 각양각색의 꽃이 가득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모두 옛 사람들이다. 전통적인 복장의 남녀가 대부분이다. 특히 아름다운 여인의 몸짓과 얼굴이 생생하다. 스스로의 꽃이 꽃숲을 조심스럽게 걸으며 봄을 맞는 몸가짐이 그리워진다. 꽃과 꽃.
여기 꽃밭에 온 것만으로 잃은 돈까지 포함해서 모든 비용의 본전을 찾은 기분이다. 아니 오히려 남는다. 수줍은 양 조심스러운 가지에 아주 차분하게 피어났다. 구경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정성스럽다. 커다란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꽃을 손님으로 맞는다. 그 아니 반갑고서야. 보면서도 신기하다.
매화는 때를 잘 택했다. 모양과 향을 크게 내세우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다만 겨울이 한 가운데서 피어나 봄을 부르고, 사람을 흥분시킨다. 겨울의 봄 손님이다. 반갑고 귀하다. 해마다 반복된다 하더라도, 겨울의 추위가 길어서일까. 매해가 새롭다. 사람들이 지어낸 어수선함이 매화의 고상함을 건드리지 못한다.
매화로 말미암아 봄이 활짝 열렸다. 이렇게 본격적인 일 년이 시작된다. 누군가에게 꽃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