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강의가 있는 날이다. 시간에 맞춰 오면 항시 붐벼서 일찍 나서곤 했다. 오늘도 역시 몇 시간 전에 도착했다. 며칠 춥더니 이제 풀리려는 듯 햇볕이 아주 따뜻하다. 아침 기온은 영하에 머물러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바야흐로 해가 바뀌었다. 사무실에 인사도 할 겸 왔더니 시간이 너무 이르다. 현관문마저 아직 열리지 않아 그냥 차 안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오가는 사람도 없다. 초봄의 햇살만 커다란 건물의 유리창에 부딪혀 요란스럽다.
그냥 등받이에 늘어졌다. 모심코 고개를 들었다. 목에만 신경이 집중될 뿐 눈에는 아무런 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머리로는 무료한 시간의 양만 헤아렸다. 몇 십 분 동안 이렇게 있어야 했다.
그런데 곧 멍한 눈에 움직임이 잡혔다. 주차장과 건물 사이의 좁은 화단에는 몇 가지 나무가 있다. 그 중 제법 큰 향나무가 눈앞에 있다. 가지마다 잎과 가지를 동그랗게 다듬어 놓았다.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덩어리 몇 개가 불규칙한 층을 이뤄 달려 있는 셈이다. 그 맨 위쪽 덩어리 안에서 무언가 움직이고 있었다.
초점을 정리하고 가만히 응시했다.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 같더니, 멧비둘기 한 마리가 마른 가지를 입에 물고 움직이는 게 보였다. 둥지를 마련하고 있다는 것을 금새 알았다. 회색과 갈색, 그리고 푸른색으로 단장된 몸매가 소박하면서도 화려하게 빛났다. 계속 들여다보니 한 마리가 아니고 둘이다. 더 깊은 속에 또 하나가 같이 움직인다. 한 녀석은 계속 나뭇가지를 물어 나르고, 남아 있는 놈은 그 가지를 받아 작업을 한다. 새로 눈이 맞았는지 몇 해째인지 모르지만 신혼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직 추위가 남아 있는 이른 봄이다. 이 놈들은 벌써 봄을 알고, 새 살림을 마련하고 있다. 새해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지켜보는 동안 머릿속에는 여러 생각들이 빠르게 스쳤다. 그 중 하나가 새에 관한 것이다.
늦은 입대를 앞두고 시골에서 부모님과 함께 농사일을 거들고 있던 86년도 봄이었다. 이른 봄의 시골에는 할 일이 많다. 날이 밝으면서 시작된 일은 해가 저물어야 끝이 난다. 쉽게 마무리 될 것 같지 않은 일이 반복된다. 월말이 되어도 월급도 없는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하는 지루함이 컸다.
지금과 같은 3월 초 어느 날 변소에 가다 새를 보았다. 가는 길목의 처마 밑에 노랑할미새가 드나든다.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변소에 갈 때마다 눈에 뜬다.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한 쌍의 새가 허드레 것을 넣으려고 처마 밑에 둔 낡은 장롱 위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이때부터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일과의 하나가 되었다.
재료, 진행과정, 모양새 등이 우선이었다. 거친 가지에서부터 시작되어 가는 풀뿌리 등으로 마무리될 때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두 마리가 분주하게 오갔다. 주변의 모든 리듬이 해의 움직임과 같아 무료하기 이를 데 없는 한적한 시골 생활에 커다란 흥미꺼리였다. 밖에 나갔다 돌아오거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우선 들를 정도로 아주 중요한 일과가 되어버렸다.
둥지가 마무리될 무렵 한 마리가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그마한 알이 보였다. 반질반질하고 무늬가 곁들여져 귀엽기 짝이 없었다.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아마 세 개였던 것 같다.
이때부터는 들여다볼 때마다 한 마리가 둥지에 있었다. 인기척이 느껴질 만도 한데 불안한 눈망울만 깜박거리고 자리를 뜨지 못했다. 행여 방해가 될까 봐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워졌고, 서 있는 자리도 멀어졌으며, 관심이 없는 부모님께도 주위를 당부했다.
부화의 날이 기다려졌다. 얼마만인지 새끼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모습이야 영상으로 본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집중된 관심으로 한동안 지켜봐서인지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두 마리 노랑할미새는 부화 뒤부터 아주 바빠졌다. 먹이를 잡아 먹이느라 쉴 새가 없었다. 몇날며칠을 그렇게 하더니, 어느덧 새끼의 모양새가 제 어미와 비슷해졌다. 작은 둥지가 버거워보였다. 간혹 날갯짓을 하는가 싶더니 이소(둥지떠나기)를 준비한다. 땅에 떨어질 듯하더니 곧 바로 옆의 나뭇가지에 앉을 정도가 되었다.
부모가 된 두 마리는 이때까지도 여전히 바빴다. 아직 익숙하지 못한 자세를 불안하게 지켜보고, 또 먹는 양이 늘어나 더욱 그랬다. 새로운 녀석들은 제 어미만한 등치에도 짹짹거리며 먹이를 기다리고, 두 놈은 먹이느라 정신이 없다. 겉으로 봐서는 분간할 수 없지만, 뒤뚱한 자세로 앉아 있는 놈은 새끼이고, 날렵하게 오가는 놈은 어미와 아비다.
하루 이틀이 지나 둥지에서 점차 먼 곳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사라졌다. 어느 곳으로 날아갔는지는 보지 못했다. 다만 둥지 근처의 가지에 남아 있는 두 마리는 보았다. 처음 집을 짓던 녀석들이다. 더위가 느껴질 무렵이었던 것 같다.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품고, 먹이를 물어다 먹이고, 이제 새로운 놈들은 어디론가 떠나고, 그 짓을 하다가 앙상하게 말라버린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아 서로 바라보기도 하고, 가볍게 움직이면서 울어댔다. 한동안 그 옆에 있었다. 슬펐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러나 가슴속에서 서러움이 북받쳤다.
부모님이 다시 보였다. 같이 생활하고 있는데도 전혀 새롭게 여겨졌다. 자식을 다섯이나 낳아 기르고 가르치느라 나뭇가지보다 더 말랐다. 저기 남아 있는 할미새 한 쌍의 모습과 어찌 그렇게 같은지.
이때 세상살이가 별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저 때가 되면 부모가 그랬듯이 새끼를 낳아, 부모가 그랬듯이 열심히 키우고, 역시 부모가 그랬듯이 늙어 죽는 것이구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랬고, 지금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리 하시고, 그 위의 조상님들인들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나 또한 당연히 그리 하면 된다고 답을 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는 독재, 광주 등이 크게 다가오지 않았고, 86 아시아, 88 올림픽은 단순한 구호에 지나지 않았다. 오로지 먼 조상으로부터 나에 이르기까지의 시간과, 대를 잇기 위해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상상과 추측이 머리에 가득했다. 피와 살, 생김새, 사고틀 등 나에게 있는 모든 것이 그들의 것이었고, 나는 그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다만 짝을 만나 새끼를 낳아 기름으로써 나의 가치가 있을 따름이라고 여겼다.
참 편안했다. 애를 써서 찾을 것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하고 있던 공부도, 사회정의도, 남북의 통일도 모두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새끼 기르기 이상은 되지 못했다. 생명의 삶은 그저 새끼를 낳아 기르다가 늙어 죽은 것이다. 앞서 저를 키운 어미와 아비처럼.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아시안게임이 끝날 무렵 군대에 갔다. 그 동안 빈 둥지를 습관처럼 지켜보았다. 주인들이 떠나고 덩그러니 남은 둥지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낡은 장롱 위의 빈 둥지는 생명의 흔적일 뿐이었다. 둥지를 볼 때마다 그놈들이 떠오르고, 어미와 새끼가 어디에선가 만나 혈육인지나 알고 지내는지 하는 등등의 잡스런 생각들이 또 다른 추측을 낳아 머리와 가슴이 쉼 없이 움직였다. 추위를 느끼면서 신병훈련을 하는 동안에도 그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럭저럭 군 생활을 마치고, 89년 1월 제대했다.
부모님과 같이 설을 쇠고, 제대를 했으니 새로운 각오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망월동으로 가던 중 친구 집에 머물러 있다가 날벼락 같은 연락을 받았다. 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친구가 주선해준 1톤 트럭을 타고 밤길을 달렸다. 눈발이 흩날렸다. 제 정신을 유지하려고 애를 써도 꿈만 같았다. 빨리 가도 이미 일은 벌어져 돌이킬 수 없을 것이고, 아니 가더라도 고통은 마찬가지 일 게 뻔하다. 희미한 전조등에 비친 가로수가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초라한 시골집 아랫방에 어머니가 누워계셨다. 어제의 복장 그대로다. 몸이 차가웠다.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장작개비처럼 말랐다. 방바닥마저 차가웠다. 죽은 이에게는 따뜻함이 필요 없다. 차가운 방에 차가운 어머니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때 노랑할미새가 떠올랐다.
홀쭉한 몸의 어머니와 군대에서 찐 살이 아직 남아 있어 피둥피둥한 내 몸이 비교되었다. 내 몸의 뼈와 살, 그리고 움직임, 생명 모두가 저 말라비틀어진 몸에서 옮겨진 것이 분명했다. 저 몸에 있는 온갖 영양분을 빨아먹고 난 이렇게 자랐다.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빨려버리고, 저렇게 뼈와 가죽만 남아 누워 있다.
이십 초반에 시집와서, 새끼를 낳아 기르는 것이 삶의 전부였고, 새끼들이 거의 컸을 즈음에 숨을 거두었다. 평소 어머니의 모습은 먹이를 물어 나르는 할미새의 부산한 몸짓과 똑같았다. 난 낼름낼름 받아먹기만 했던 세 마리의 할미새 새끼 가운데 하나였다.
새끼를 보내고 남아 힘겹게 울어대던 두 마리의 노랑할미새에게서 느껴졌던 묵직한 허전함이 어머니의 주검에서도 보여 아주 슬펐다. 사는 게 다 그렇지 하며 태연하려고 해도 감정은 의지대로 조절되지 않았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다시 어머니를 떠올린다. 노랑할미새의 마지막 모습도 선하다. 그때 그 집은 헐려버리고 남아 있지 않다. 집터 위로는 차들이 달린다. 아침이 무겁다. 아직 빈 학교에서 창에 부서지는 햇살을 혼자 맞으며 가슴이 무거워졌다. 초라한 시골집,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노랑할미새가 가득해서다. 순전히 저 멧비둘기 때문이다.
지금 난 새끼를 키우면서 다른 재미를 애써 찾고 있다. 이십 대일 때 생각대로라면 반칙이다. 어머니와는 달리 내 스스로의 욕심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달라진 것인지, 내가 반칙인지 모르겠다. 하기야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도 아니 하고, 제 할 일 찾기도 힘들다고 한다. 어느 세월에 새끼를 낳아 기르겠는가. 분명 세상이 달라지긴 했다. 멧비둘기에서 옛 추억이 묻어난다고 해야 할까보다. 그 동안 흐른 세월의 양을 헤아려보고, 그냥 허탈해진다. 각기 저 마다의 시대와 상황이 있겠지. 세월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