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꽃으로 가득 찼다. 어디에나 개나리와 진달개가 한창이고, 벚꽃은 망울이 부풀었다. 그래도 북쪽이라고 꽃이 다소 늦다. 서울에는 벚꽃이 흐드러졌고, 조팝꽃도 피어났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분부시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없다. 그저 고요할 뿐이다. 빛에 소리가 있다면 아주 시끄러웠을 것이다.
꽃을 보며 무언가 가슴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은데 하지 못하고 있다는 조바심이다. 곧 지고 말 것이라서 더욱 그렇다. 해마다 겪는 가슴앓이다.
춘심이라는 말이 있다. 봄이 되면 설레는 마음을 누구나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이 생겼을 법하다. 조금은 야한 뜻이 포함되어 있다. 꽃 그것이 생식작용이기에 당연히 그 의미를 갖고 있겠다. 덩달아 나도 짝을 찾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일고, 설렘은 예서 말미암았다고 해야 맞다.
세상의 여러 생명들이 암수로 나뉘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이상하다. 진화의 과정에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는지, 아니면 절대적 우주법칙으로서의 음양이 있어야만 하기에 그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굳이 알려고 해도 알 수 없을 것이고, 안다고 한들 별반 달라질 게 없다.
세상의 일이 대부분 그렇다. 미미한 존재로서 해석은 분분하게 할 수 있어도 조작하기가 쉽지 않다. 아직까지는 해석할 능력만 주어졌다. 그럴듯한 해석을 하려고 조그마한 머리를 요리조리 굴릴 따름이다. 아직 우주에서의 주체가 되기에는 너무 멀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수컷으로 태어난 한계 속에서 수컷과 암컷의 본원적 구별의 의미를 찾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그냥 그렇게 있었다는 답이 현명하다. 행여 그 이유를 찾았다 하더라도 수컷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역시 아는 것과 실현하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거리가 있다. 불가능에 도전하라는 분기탱천의 용기에 대한 칭송도 일리가 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에 순응하라는 말도 지혜로운 자세의 하나로 여겨진다.
생명덩어리의 하나인 이 놈을 가만히 더듬어보면 딱히 특별할 게 없다. 제가 생각하고 계획한 대로 사는 것 같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각적인 의지보다는 본능에 맡겨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지를 앞세우려는 의도는 사람됨에 대한 우월감이나 주체성과 자율성에 대한 지나친 과시일 수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자연의 미미한 존재의 틀을 벗어나기는 역시 어렵다.
이렇게 꽃이 지천으로 피어나면 벌써 몸이 알고 꿈틀거린다. 마음은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어디론가 흩어져 헤매고, 구체적으로 대상이 없는데도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하던 일에 매달리려고 애를 써도 유체이탈의 상태가 이어진다. 이내 몸마저 견디지 못하고 흐물거린다.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본능이 몸 어디에서인지 벌써 꿈틀거린다. 그리고서야 봄이 왔다는 것을 인지하고, 꽃을 해석하기 시작한다. 예쁘다는 표현을 넘어서기 힘들고, 곧 질 것이라는 생각에 짧은 인생을 더듬어본다. 조바심이 일 수밖에 없다.
바야흐로 교접의 계절이 찾아 왔다. 꽃들도 때가 되어 이렇게 피어난다. 그들 나름대로 번식을 위한 작용이라고 배웠다. 꽃 하나에 암수가 같이 있기도 하고, 개체가 전혀 다를 수도 있다. 달콤한 꿀과 향기로 중매자를 부른단다.
꽃과 벌은 봄날 하나의 쌍으로 비유되었다. 예쁘게 치장하고 향을 머금은 꽃은 암컷이고, 벌은 그 향을 찾아드는 수컷이었다. 꽃이 피면 벌과 나비가 꼬이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비유하면서 자신의 본능적 욕망을 은근히 내비추었다. 암컷은 암컷대로 부푼 가슴을 견디기 힘들어 발그레한 얼굴을 매만졌을 것이고, 수컷은 두 손을 가랑이에 두고 향기를 찾아 코를 벌렁거렸을 것이다.
그런데, 때로는 아는 게 탈이 되기도 한다. 이미 꽃에는 암수가 있고, 벌과 나비는 매개자에 지나지 않는다. 제 이미 모든 것을 갖추고, 스스로 하지 못해 도움을 청한다. 값진 답례품을 갖추고 말이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누군들 그냥 무시해버릴 수 없는 유혹의 향을 풍기며, 도움을 청하는 저 꽃들이 정말 곱다. 각기 종자가 다르다 하더라도 어여쁘고 향기롭기는 마찬가지다. 정말 벌과 나비가 되어 달콤한 꿀을 빨면서 저들의 교접을 도와주고 싶다. 관음증 환자라고 비난을 받는다 하더라도 굳이 변명하지 않고 그냥 바로 옆에서 구경이라도 하고 싶다.
이렇게 하는 말은 꽃과 벌의 비유에 맞춘 다소 응큼한 표현일 뿐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나도 본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평범한 수컷으로 살짝 붉은 암컷의 향에 취했으면 좋겠다. 조바심의 본 모습이다. 의지의 인간이기보다는 자연의 한 존재로서 어쩔 수 없는 감정에 매몰되고 싶다.
온갖 꽃들이 피어난 나른한 봄이다. 인생은 정말 짧다는 옛 문인들의 멋진 말을 빌리지 않아도, 지는 꽃잎에서 늙어가는 자신의 세월을 본다. 인생은 짧고, 봄날은 더욱 순간이다. 그래서 마음에는 조바심만 가득하다. 이 망할 놈의 춘심은 해마다 너무 사람을 괴롭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