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 반 학생들과 수시 1차 면담을 마치었다. 학생들의 수시 희망 여부와 지원하고자 하는 대학
과 학과를 알아 보고 필요한 정보를 제시해 주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시 1차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고 지원하고자 하는 소수의 아이들도 논술에 대한 부담 때문에 소신 지원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
다. 2학년 때부터 체계적으로 논술을 준비한 학생은 거의 없었다. 우리 학교에서 지난 겨울 방학동안 3학
년에 진학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논술 구술반을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강의하는 방식으로 운영했었다.
아이들의 반응이 좋았지만 지속적으로 계속 해주기가 어려워 지금은 논술 교육을 외부에 위탁하고 있다.
그만큼 학교에서의 논술 교육은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6월 27일 서울대에서 발표한 2008학년도 입학 전형을 보니 일부 계층에 유리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어 현장의 교사로서 더 큰 허탈감과 자괴감을 느끼게 되었다.
기본 원칙으로 ‘전형 유형의 다양화’와 ‘각 전형의 특성화’를 내세우며 능력 있는 학생들을 변별력 있게 뽑
겠다는 것인데, 결국 특목고 학생들과 강남 8학군의 우수 학생들을 독점하겠다는 발상인 것이다.
특히 특목고 학생들을 위한 특기자 전형 제도는 노골적으로 특목고 학생들을 유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어서 국립대학으로서 그 공적 책임감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논술, 문학, 외국어 능력 우수자는 외고 학생들에게, 수학, 과학, 정보 능력 우수자는 과학고 학생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특기자 전형의 비중을 30%로 늘리고 동일계 전형을 무시하면 그 만큼 일반고 출신 학
생들이 서울대를 갈 몫은 줄어들게 된다. 이것은 동일계 전형을 통해 다른 학과에 진학하는 것을 방지하겠
다는 교육부의 방침을 무시하는 것이어서 사회적 파장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이번의 서울대 입학 전형 기본 방침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논술시험의 강화라고 생각한다. 내신 비중
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키고(실질 반영률 5%정도) 수능 시험을 자격고사화 하면서 합격의 당락을 논술을
통해 확보하겠다는 이번 전형 방식은 일부 계층들만의 리그인 셈이다.
서울대 입학 관리 본부장은 인터뷰에서 특정교과목에 국한 되지 않은 다양한 형태의 논술고사를 통해 수
학능력을 판단하겠다는 것인데, 외피와 명칭만 본고사가 아닐 뿐 실질적인 본고사의 부활에 다름 아니다.
현재 상위권 대학에서 치러지고 있는 논술고사만 하더라도 역설적으로 정상적인 학교교육만 받은 학생들
이라면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로 출제되어진다. 솔직히 교사인 내가 봐도 무지하게 어려운데 오
랫동안 양질의 체계적인 논술 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들의 경우, 영어 혼합형 논술, 철학적 사유를 요구하
는 논제, 논술과 과학의 통합 교과적 문제 등은 사실 제대로 쓰기가 어렵다. 사정이 이러한대도 더욱 심화
된 논술을 실시하겠다는 뜻은 고가의 사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들을 결과적으로 배제하겠다는 뜻이다. 물
론 일부 유능한 학생들의 경우 논술학원을 다니지 않고 어렸을 적부터 꾸준한 독서 교육을 통해 서울대 논
술 시험을 감당할 수 있겠지만 과연 그 수가 얼마나 될 것인가?
그런 소수의 사례를 보편적인 양 전형화 시키지 말아야 한다. 기회의 평등이 주어져 있지만 과정의 평등
이 확보되지 않은 시합은 본질적으로 공정하지 못하다. 대도시 출신의 학생들이유명 대학 입학률이 농촌
출신 학생들에 비해 점점 상승하고 있다는 것은 현행 입학제도와 무관하지 않다.
어느 사회에서나 경쟁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나는 경쟁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경
쟁 시스템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느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시스템 속에서
시합을 한다는 것은 진실하지 않다.
지역균형 선발제도를 통해 국립대학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 하고자 한다면 특목고에 유리한 특기자 전
형과 정시 모집에서의 논술 고사 비중 강화라는 전형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가뜩이나 일선 교육 현장에서 전인 교육의 가치를 구현해 나가기 어려운 현실에서 이번의 서울대 입학 전
형은 학생들에게 더 큰 경쟁심과 위화감을 심어주게 될 것이다.
이것은 비단 서울대 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파급 효과가 상위권 대학으로 이어져 일선 학교의 진학지도는
심각한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서울대에 입학한 학생수와 유명대학에 입학한 학생수로만 학교를 평가하는 현실 속에서, 특목고 위주의
서울대 입학 전형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시키고 일선 학교의 우수 학생 키우기를 통해 교육의 본질적 기능
과 역할은 파행에 빠지게 될 것이다.
과연 학교 교육의 몫은 공동체 의식은 상실한 채 능력만 있는 인재를 길러 내는 것인가?
이번 서울대안은 대학의 서열화와 학벌 지상주의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고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의 카르
텔을 더욱 견고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