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년쯤 전부터 탈모가 시작이 되었다. 얼마 전에 자전거 타다가 넘어져서 왼쪽 팔을 다
쳐, 응급처치를 큰 병원 응급실에서 한 다음 이틀 뒤, 드레싱(소독과 거즈감기?)을 하러 내가 근
무하는 학교 앞 피부과에 갔었다. 드레싱을 한 다음에 30을 조금 넘은 듯한 여의사가 하도
예뻐서 말도 걸 겸 나의 탈모 증상에 대하여 문의를 했었다.
- 의사 선생님, 한 2년 전부터 정수리를 중심으로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는데 어떡하죠?
나의 질문에 여 의사는 옥수수처럼 가지런한 이를 보이며 미소지었다.
- 당연히 치료하셔야죠? 약, 20% 정도 빠지셨는데, 이 때부터 관리에 들어가야지, 더 빠지거나
모공이 완전히 닫히면 늦습니다. 있을 때 지키라는 말씀이죠.
그 여의사는 친절하게 머리카락이 젓가락 만하게 보이는 기구를 머리가 빠지는 부위를 집중적으로
스캔해서 확인해 주는 거였다. 과연 건강한 모공에서는 머리카락이 서너 개씩 나고 있었으나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가늘게 한 개가 겨우 나고 있고, 아예 구멍만 보이는 곳도 있었다.
- 제가 알기에 머리카락이 난다는 것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들었는데요?
-그렇지 않아요. 요즈음에는 확실한 약이 나왔답니다.
그 여의사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내게 처방을 권하는 거였다.
사실, 여자들에게 외모로써 남자를 생각할 때 키가 작은 남자보다도 머리카락이 없는 남자
를 기피한다는 설문 조사를 본 적이 있다. 여자의 경우는 체중이 부담스럽게 많이 나가는
사람을 남자들이 싫어하고....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탈모도 개인에 따라 그런대로 어울리는 사람도 있다. 기분은 나쁘
겠지만, 수필은 솔직하게 쓰는 것이므로 내 생각을 직설적으로 말하겠다. 사실 나의 절친
‘김주동’의 경우 제법 빠진 뒷머리와 앞머리 이마의 넓은 모습이 심성 좋게 생겼으며, 늘 실
실 쪼개는 그의 이미지와 딱 맞는다. 탈모가 오히려 상대방에게 안정감을 주고 심지어 삶을
경영하는 데 많은 노하우를 갖고 있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의지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러한지를 떠나서) 한 마디로 그의 탈모는 인생의 ‘연륜과 신뢰’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 주동이처럼 뒤에서 보면, 헤픈 웃음을 웃는 듯한 '숲속의 빈터' 가 있는
내 모습은 상상하기에도 끔찍하다.
만약, ‘김원기’가 ‘김주동’과 같은 머리 모양이라면, 'N'이고 나발이고 그의 작업 전
선은, 아니 그가 구가하는 발군의 직업적 실적에도 상당한 지장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김원기 쪽에 가깝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그래서 나는 그 여의사가 친절하게
처방해 주는 처방전을 받아서 약국으로 갔다.
그런데 약값이 장난이 아니었다. 한 달 먹는데 5~6만원인 거였다. 생명과 관계가 없으니
의료 보험이 안 된다는 거였다. 평생을 먹어야 머리카락을 유지할 수 있으니 중학교에서
선생을 하는 나로서는 부담이 안 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얼마 전에는 치과에 갔다가 이
빨 한 개를 씌우고 잇몸을 때우는 데 100 만원이 들어간 적도 있다. 또 오징어 먹물로 염
색을 한다나? 어쨌든 ‘블루클럽’에서 2만 5천원을 주고 염색을 했다. 훨씬 젊어 보이는 거
였다. 이 것도 평생 투자해야 한다.
나이를 먹어가니 이렇게저렇게 건강을 위해, 또는 품위 때문에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다.
요새는 골프 연습을 하느라 또 많은 돈을 쓰고 있으니, 이 또한 ‘나이’와 전혀 관계가 없다
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 우리 동기들 중에 동안이 몇 있다. 지난 겨울에 1학년 반창회 때 ‘유웅식’을 만나고 깜
짝 놀랐다. 대학 교수임에도 30대 후반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맹수’ 또한 나보다 더 동
안이라는 것에 내 스스로가 동의한다.
난 여학교에 근무한다. 평소에 늘 느끼는데 특히 여학생들은 나이든 교사를 싫어한다. 난 아이
들이 기피하는 교사이고 싶지 않다. 그래서 학생들이 좋아하는 음악과 그 주변의 연예인 이
야기에도 관심을 가지려 노력한다. 그래야 학생들과 소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김
원기가 독서와 온갖 경험을 바탕으로 ‘작업’을 통해서 덩치 큰 고객을 유치하는 것과 비슷
한 원리로 살아간다면 ‘견강부회’(牽强附會)일까?
그런데 약을 두달째 먹으면서 심각한 고민이 생겼다. 누구보다 자신하던 허리띠 아래가 말
을 듣지 않는 거다. 참, 옛말에 “한 다리가 길어지면 한 다리는 짧아진다.”는 말이 있는데,
내가 그 꼴이다. 머리카락을 유지하자니 오십대 초반에 벌써 '고자'가 될 처지이고, 옛날처럼
그쪽 방면으로 끝없이 관심을 갖자니, 머리카락을 잃어야 하는 이 아이러니여. 인생은 참 어
려운 선택의 연속이다.
2012. 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