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증권가는 비상경영체제이다.
많은 지점을 폐쇄하는 등 구조조정의 고삐를 죄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 회사도 출근 시간이 6월부터 7시 20분으로 당겨져
최소한 6시 이전에는 일어나야 한다.
9호선 고속터미널역발 여의도행 6시 50분 급행 전철
오늘 월요일, 무심히 그 전철에 몸을 얹고 사람사이의 틈을 이용해 가판 신문을 펼쳤다.
전철 안은 모두들 각자의 세계에 몰입하여 바퀴소리만 달칵달칵 들리는데
어디선가의 핸드폰 통화 목소리가 내 어릴 때 대청마루에서 낮잠을 깼을 때
들렸던 아주 귀에 익은 목소리다.
한 번 더 귀의 근육을 긴장시켜 노약자 석에서 들려오는 전화목소리에 집중했다.
순간적인 느낌이었지만 누군가에게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라
마치 내 몸 속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환청같은 느낌에 나도 모르게
사람을 헤치고 그 곳으로 다가가 보았다.
경로석,
81세의 노인이
서류가방을 옆에 끼고
전철 안의 정적을 깨며 핸드폰으로 뭔가 열심히 이야기 하고 있다.
내가 어떻게 그 사람이 81세인 줄 아냐고?
왜냐하면 그 사람은 바로 아버지였던 것이다.
“웬 일 이세요, 아버지”
“반갑다”
주변에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대화 내용과
분위기가 사뭇 자연스럽지 못하다.
죽전에 사시는 분이 이렇게 이른 시간
그것도 80이 넘으신 분이
혹 여의도에 취직하셨나?
내리자 마자 가는 방향이 틀려 곧바로 헤어졌다.
사무실 책상에 앉으니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오늘 만나서 무척 반가웠다. 너무 기뻤다”
“예 저도 반가웠어요”
마치 몇 년 만에 처음 만나는 사람이 나누는 대화 같다.
훗날 내가 80이 되어 우연히 전철에서 아들을 만나면 기분이 어떨까?
지금 기분으로는 하이파이브도 하고 안아 보고도 싶겠지만 아들이 받아줄지?
지금도 밖에서 우연히 만나면 아는 둥 마는 둥 하는데
그 때 설마 나를 보고 모른 채 하지는 않겠지.
아는 채 하더라도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얼마나 속상하겠나?
그래서 난 항상 길거리에서 아들을 만나면 오버해서라도 반가워 한다.
먼 훗날 나를 우연히 봤을 때 내가 한 것 처럼 해주기를 바라면서....
아버지가 언젠가 돌아가시면 오늘 전철 속에서 만났던 느낌이
많이 기억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