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요일 우연히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이휘재가 두 아들인 쌍둥이를 돌보는 프로를 보고
20여년 전 헤프닝이 갑자기 떠올랐다.
중국을 진시황 다음으로 두 번째 통일한 한고조 유방.
얼간이 유방이라 하듯이 그는 후덕한 인성으로 세상의 인재를 등용하여
집단지성을 이끌어 내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한다....거기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 이후 초특급 1등 공신 한신을 비롯한 여러 공신들을 차례로 죽여서
토사구팽이라는 말도 나왔다.
또한 목숨을 걸고 충성을 했던 신하들도 통일 후 여러 곳에서
세력을 규합해 각자의 이익을 위해 반란을 일으켰으니
200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변화무쌍은 별로 변화 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세상에 영원히 아름다운 사람도 나쁜 사람도 없고 자신의 처한 상황과
판단에 따라 자기 속에 감추어진 악마와 천사가 교대로 나타나는 것 같다.
30대 초반 내 직장이 MBC 바로 앞 건물이었다
오랜만에 야근을 하기위해 직원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오는데
밤중 대로변에 빨간 스포츠카에 남자와 여자가 앉아 있었다.
뭔가 주위의 상황과 조화가 안된다는 찰라적인 판단에 누군가 하고
가까이 가서 쳐다보며 이휘재라는 것을 인지함과 동시에
“안가...씨발놈아”
하는 말이 이휘재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 당시 일요일밤의 대행진에서 한참 이휘재가 뜰 때였다.
하도 기가 차 대답도 못하고 멍하니 쳐다보는데
“가란말이야 새끼야”
하는 것이다.
급 짧은 판단으로 이거 내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멱살을 잡기위해 뛰들었고 동료들이 나를 붙잡고 참으라고 막았다.
나도 배고픈 것은 참아도 모욕감은 참을 수 없는 젊은 혈기에
“뭐라고 이 씨발놈아...내가 너 가만 안둔다”
그렇다고 나를 잡고 있는 동료들을 밀칠 수는 없어서
잠시 밀리는 척 하여 나를 잡은 강도가 약해졌을 때
잽싸게 뿌리치고 뛰쳐나가
“이 개새끼”
(지금 와 생각하니 역발산 기개세 항우의 모습이 이랬으리라)
하고 덤벼들었으나 갑가기 차가 순발력있게 차똥꼬에 불을 붙이고 시야에서 급속 사라진다.
주위를 둘러보니 일밤 촬영팀들이 눈에 들어오고
분을 못 참아
꿩대신 닭이라고 그네들한테 가서 훈계반 하소연 반 뭐라고 했는지
기억도 잘 안난다.
그런데 반응이 썰렁하다.
겉으로는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데 얼굴표정은 전혀 미안하게 안느껴졌다.
그 이유도 안다.
그래, 여기까지만 하자하는 판단에
발걸음을 돌렸으나
야근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 당시 대학 과동기가 PD수첩 기자로 한참 TV에 나오는 중이라서 전화도 한번
해 볼까 했지만 기대한 만큼의 대답을 못 들을 것 같아 포기하고
지금까지 가슴에만 묻어두고 있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었으면 이휘재도 섣불리 그리하지 않았겠지만
나도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 당시가 한고조 시대였고 내가 군사력을 가진 지역변방의 조그만 제후라도
되었으면 나는 이휘재에게 모욕감을 돌려주기 위해 거병을 했을 것이다.
“진격 앞으로.........나를 따르라!!!!”
“우리는 죽으려고 싸우는 것이지 이기려고 싸우는 것은 아니다~~~~~”
비록 깨지더라도....
그래서 나는 TV에서 이휘재만 보면 그 속의 악마(내 입장에서)가 자꾸 보여
채널을 돌렸었다.
그런데 오늘 본 쌍둥이 두 아들을 돌보는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보았을 때
혼란스럽다
나한테는 즐겁지 않은 기억일지 몰라도 자식과 아내한테는 세상의 전부일 수 있겠다.
그러나 자신이 웃을 때 이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어서 되겠는가?
어떠한 상황과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말아야 하는 덕목들이 있다.
그러나 사람이 그러기에는 참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사람을 존경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