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은 굉장히 기발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선거를 치릅니다. 스웨덴의 의원정수는 349명이며 310명의 지역구와 39석의 균등의석으로 구성됨니다. 지역구 형태는 중대선거구이며 선거구별로 적게는 2명에서 많게는 10명 이상의 당선자를 선출합니다. 통상의 비례제와 마찬가지로 내각제를 연동합니다. 독일의 비례제와는 달리 스웨덴의 비례제는 정당투표가 없습니다. 한 후보를 찍으면 그 후보의 소속정당을 정당투표로 인정합니다. 찍고싶은 후보가 없으면 정당만 찍어도 됩니다.
여기서부터 이들의 민주적인 아이디어가 한가지 튀어나옵니다. 스웨덴은 하나의 중대선거구에서 각 정당들이 여러명의 복수후보를 출마시킵니다. 이 후보들은 자체 당원투표등를 통해 배정받은 순번이 있는데 순번이 높을수록 우선적인 당선권을 가집니다. 하지만 정당이 정한 순번이 유권자의 맘에 들지않는다면 투표시 순번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민주당에서 다선의 1번 후보와 신진 2번 후보가 출마하였는데 1번 후보가 구태인물이라 싫다면 2번 후보에 투표할 수 있고 2번 후보가 더 많은 표를 얻게되면 당선1순위는 2번 후보로 바뀜니다. 한국의 경우 대통령 또는 계파의 수장같은 정당의 배후권력자에게 공천권이 독점됩니다. 하지만 스웨덴은 한 정당내에서도 복수의 후보를 출마시킨뒤 유권자가 그중 선택할 수 있게 함으로써 국민의 의사에 따라 국민에게 공천권이 주어지는 장치를 만들어놨습니다.
(참소주구역님께서 결선제의 허점과 극복방안이란 글의 댓글에서 말씀하신 구속식 , 비구속식 정당명부는 이에 해당하는 용어입니다. 정당이 정한 당선 우선 순위를 국민이 바꿀 수 있으면 비구속식 정당명부제이고 정당이 정한 당선 우선 순위를 국민이 바꿀 수 없으면 구속식 정당명부제입니다. 당연히 비구속식이 국민의 의사를 더 많이 반영하므로 민주주의에 충실한 선거제도입니다.)
각 선거구별로 선거를 마치고나면 복잡한 메커니즘의 스웨덴식 비례제가 작동합니다. 먼저 지역구당선자 선출방식을 보게되면 일단 각 선거구별로 각 정당이 득표한 표를 집계하고 그 다음 집계한 득표수를 1.4로 나눔니다.(왜 나누기를 하는지 몰라도 일단 나누고 봅니다;;)
예를 들어 한 선거구에서 A당이 24906표, B당이 49337표를 얻었다면 이를 1.4로 나누어 A당에겐 17790.00, B당에는 35240.71이라고 하는 소숫점까지 들어간 "비교수치"라는 걸 매깁니다. 이런 식으로 모든 정당들의 득표를 전부 1.4로 나누어 비교수치를 산출합니다.
실제 98년도 총선시 6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한 선거구의 각 정당별 득표수와 비교수치를 보면 이렇습니다.
사민당 득표 49337표 비교수치 35240.71
보수당 득표 24906표 비교수치 17790.00
중앙당 득표 15409표 비교수치 11006.42
좌익당 득표 6689표 비교수치 4777.85
국민당 득표 6246표 비교수치 4461.42
환경당 득표 5523표 비교수치 3952.14
기민당 득표 5522표 비교수치 3944.28
여기서 일단 비교수치가 가장 높은 정당에게 의석을 하나 배분합니다. 사민당이 1석을 가져가겠죠. 이때 앞에서 말한데로 정당의 배후권력자가 아니라 국민이 정한 1순위후보자가 당선됩니다. 1석을 가져간 사민당의 득표수를 3으로 나누어(또 나누기;;) 비교수치를 다시 계산합니다.
그러면 사민당의 비교수치는 16445.66이 되어 보수당의 비교수치가 가장 높게 됩니다. 그럼 보수당이 1석을 가져감니다. 4석이 남은 가운데 보수당이 1석을 가져갔으니까 보수당도 득표수를 3으로 나누면 비교수치가 8302.00이 됩니다. 그러면 다시 사민당의 비교수치가 가장 높아져 사민당이 1석을 가져갑니다. 2석째 챙겨간 사민당의 비교수치는 득표수를 5로 나누어 재산출합니다. 그러면 9867.40이 되고 이제는 중앙당의 비교수치가 가장 높아져 중앙당이 1석을 가져갑니다. 중앙당의 비교수치도 득표수를 3으로 나누어 재산출합니다.
이런식으로 1석, 2석, 3석 가져갈 때마다 3, 5, 7, 9로 나누어 비교수치를 재산출하는 과정을 반복하여 한 선거구에서 각 정당이 배분받을 의석수를 결정합니다. 예로든 선거구의 경우 최종결과는 사민당이 3석, 보수당이 2석, 중앙당이 1석의 의석을 가져가 6석의 당선자를 모두 확정합니다.
의석배분을 마치고 난 최종 비교수치는 이렇습니다.
사민당 7048.14
보수당 8302.02
중앙당 5136.33
좌익당 4777.85 (실득표 6689표)
국민당 4461.42 (실득표 6246표)
환경당 3952.14 (실득표 5523표)
기민당 3944.19 (실득표 5522표)
이 수치를 좀 있다 써먹습니다.
이와같은 방식을 통해 모든 선거구에서 각정당들이 배분받을 의석수를 정하게 되고 각 정당들이 선정한 순번과 유권자가 선정한 순번을 종합하여 최종적인 지역구 당선자를 결정합니다. 당선자를 정하고 나면 이제 각 정당들의 정당득표율과 지역구 당선의석수의 비율이 맞는지를 비교합니다.
정당득표율이 지역구의석수 비율보다 높으면 39석의 균등의석으로부터 의석을 배분받게 되는데 이때 종전의 최종비교수치를 활용하여 비교수치가 높은 당부터 차례로 배분합니다. 이 대목에서 스웨덴의 선거제도에 담겨있는 "소수의견에 대한 배려"를 확인하게 됩니다. 지역구에서 1석의 의석도 배분받지 못한 정당은 균등의석 배분시에 비교수치가 아닌 득표수를 기준으로 배분받습니다. 즉 가장 소수의견을 가진 이들에게 1.4배의 어드밴티지를 배려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란 다수의 의견을 따르되 소수를 존중하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균등의석에는 한국처럼 따로 비례대표 후보들이 있지는 않고 지역구 선거에서의 차점자들이 비례대표 명목으로 의석을 배분받습니다. 비례대표를 정당이 아닌 유권자가 택하게 함으로서 국민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려는 것입니다.(비례제는 다양한 방식이 있습니다. 비례대표로 등록된 후보들을 유권자가 직접 투표하여 선출하는 비례제도 있습니다. 이유는 단 한가지, 국민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것입니다.)
소수정당의 난립을 막기 위한 옵션으로서 스웨덴은 정당득표율이 4%를 넘긴 정당에게만 의석을 배분합니다. 이때 4% 미만이라도 한 선거구에서 후보자가 12% 이상을 득표했다면 사표방지를 위해 그 선거구에 한해서 의석을 배분받을 수 있습니다. 소수자를 포함하여 최대한 많은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스웨덴 선거제도의 의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식으로 복잡하기 그지없는 선거제도를 거치고 나면 정당득표율과 당선의석수가 일치에 가깝게 비례하는 비례제가 완성됩니다. 실제 스웨덴의 선거제도는 제가 말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순서와 방식도 다소 다르지만 전체적인 원리는 동일합니다.
(몇년 전에 쓴 글인데 스웨덴의 선거제도를 풀이한 원문을 보고 이 정도까지 단순화시키는 데도 골치가 아팠썼습니다. 이해 안되는 부분은 패스하고 이해가능한 부분들만 단순화한 겁니다. 1.4, 3 , 5, 7 ,9순으로 정당득표율은 나누는 이유는 정당득표율=당선의석수를 구현하기 위한 수학적 원리입니다. 비례제를 최초로 고안해낸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라 벨기에의 수학자입니다. 지역구의원은 물론 비례대표의원들까지 몽창 유권자가 직접 뽑으면서도 정당득표율=당선의석수를 구현해내기 위해 기백년 전에 저런 복잡한 수학공식을 만들어냈습니다. 실제 이 수학자가 만들어낸 공식은 이와 조금 다른데 세월이 흐르면서 원안공식을 응용하여 다양한 의석배분 계산방식이 등장했고 비례제도 점점 발전해왔습니다.)
스웨덴은 왜 선거제도를 한국처럼 단순하게 승자독식제로 하지않고 복잡하게 꼬아놓았을까요. 한국과 스웨덴은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스웨덴의 선거제도에는 소수자를 포함하여 국민의 의사를 한 올이라도 더 많이 반영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민주주의가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선거제도는 조금이라도 더 적게 국민의 의사를 반영합니다.
예를들어 한국이 스웨덴식이든 독일식이든 비례제로 투표를 한다면 진보정당을 찍어도, 민주당을 찍어도, 또는 참여당을 찍어도 사표가 없이 득표율대로 의석이 나오기에 한나라당이 어부지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만약 진보정당에 투표를 하게되면 <반한나라+진보정당 성장희망 + 민주당 채찍질>이라고 하는 최소 3가지의 의사표시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선거제는 비례제가 아니기에 정당득표율과 실제의석수의 차이가 현저합니다. 정당투표를 진보정당에 하고 지역구를 민주당에 한다고해도 진보정당은 여전히 듣보잡형 소수에 머물고 민주당 채찍질의 의사표시는 할 수 없게됩니다.(이것은 참여당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확률이 높습니다.) 유권자는 단지 반한나라 하나의 의사표시만 가능합니다.
비례제라면 17대총선에서 우리당 119석(실제 152석), 민노당 40석(실제 10석), 민주당 22석(실제 9석)의 의석점유가 나옴니다. 선거제로 말미암아 진보정당은 40석의 비중있는 소수에서 10석의 듣보잡형 소수로 전락당합니다.
18대 총선을 비례제로 보면 민주당 78석(실제81석) 민노+진보신당의 진보진영은 25석(실제5석)의 의석점유를 기록합니다. 여기에서도 진보진영은 25석의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소수정당에서 5석이란 완전 듣보잡 소수파로 전락당합니다.
비례제 하에서의 진보진영은 재정적, 인적 지원을 받게되므로 빈익빈의 악순환을 벗어나 좀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기반이 제공됩니다. 또한 민주당은 진보진영, 참여당과 경쟁을 해야만 합니다. 유시민의 말처럼 한국의 현행선거제도는 오늘의 소수파가 내일의 다수파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봉쇄합니다. 본디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란 양당제를 강제하기 위해 착안된 선거제도입니다.
하지만 비례제라는 것은 민주당이 진보진영 또는 참여당보다도 소수파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민주당이 진보정당이나 참여당보다 소수정당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정치구조를 파생시킬 것입니다. 어느 정당이 되었든 유권자를 지금보다 휠씬 더 무서워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의 선거제도는 수십개의 소수정당의 난립으로 정치적 혼란이 극심했던 시대에 근거를 가졌던 선거제도입니다. 하지만 비례제를 지지하는 정파들은 "평등선거권"을 침해하는 단순다수제는 민주주의에 어긋나기에 받아들일 수 없고 최저득표율 옵션만 채택하면 일부 다수정당과 몇개의 소수정당으로 수렴될 것이라 주장하며 비례제를 지지했습니다. 결국 이들의 이론대로 정당들이 수렴되면서 민주주의 초기의 정치적 혼란은 안정되었고 "평등선거"가 보장되는 비례제가 정착되었습니다.
영국, 미국, 캐나다도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를 체택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선거제도도 민주주의가 아닌 것은 아님니다. 허나 이 제도가 원천적으로 훼손하는 중대한 민주적 가치들이 엄존합니다. 정치선진국들에서 비례제가 채택되는 비율이 높은 것은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한국의 경우 선거제도의 원천적 결함들이 끔찍하거나 못난 다수정당들과 맞물리면서 한국에 끼치는 악영향이 지대합니다. ※비례제는 평등선거권이 가장 중요한 민주적 근거입니다. 다음 기회에는 평등선거권 떡밥을 올려보겠습니다.)
반한나라 진영의 정당들은 서로 합치든가 아니면 선거가 있을 때마다 후보단일화를 하든가 아니면 유권자가 가장 지지율 높은 놈한테 몰아서 주든가 아니면 선거제도를 바꿔서 서로 공정한 룰에 따라 경쟁하든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국민의 입장에서 가장 좋은 것은 당연히 국민의 의사가 최대한 반영되는 선거제도하에서 한나라당이 어부지리를 본다는 걱정없이 반한나라의 의사도 표현하면서 자신의 지향점에 따라 정당도 골라서 투표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가 바뀌는 겁니다. 그게 선진국이 구현해온 민주주의입니다.
앞으로 있을 세번의 선거에서 반한나라 진영의 정당들이 [비결]을 연대의 목표로 합의하거나 반한나라 진영의 시민들이 정당들을 향해 [비결]을 연대의 공동목표로 삼으라고 요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후자가 실은 핵심이지요. 그게 없이는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기득권들의 필사적인 반대를 뚫고 선거제도를 바꿀 방법이 없습니다.
또한 선거제도는 단순히 어느 정당이 유리하냐 불리하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스웨덴의 경우에서보듯 선거제도에는 그 나라 국민들의 민주적 시민의식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성숙한 정치의식을 가지고 있는 반한나라 성향의 대중들이 한국의 선거제도에 대해 지금까지 보여온 행태는 전혀 민주적이지 못했습니다.
"반한나라 진영의 정당들은 단결하여 민주적인 선거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한나라당에 맞서 선거제도를 바꿔라." 대신 "한놈한테 몰아주자. 그게 민주주의다."를 외쳐왔지요. 진보진영 또한 선거제도를 바꾸기 위해 비진보 반한나라 성향 대중들에게 연대를 호소하는 대신 늬들은 한나라당과 다를 게 없으니 진보정당을 지지해야 한다고 뻘소리를 해왔습니다.
전국적으로 1:1로 한나라당과 붙자며 유시민이 후보단일화의 포문을 연바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선거 때마다 후보단일화를 할 수는 없습니다. 곧 있을 지방선거에서도 후보단일화가 이뤄질지 어쩔지 모르는 일입니다. 합당들을 할 것이 아니라면 앞으로는 후보단일화같은 거 안해도 되도록 선거제도를 바꾸는데 반한나라 진영의 정당들과 시민들 모두 연대할 이유가 있습니다.
덧글, 스웨덴이 단순히 선거제도가 좋아서 좋은 국회의원들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닙니다. 스웨덴이 선진국인 이유중에는 비례제라는 선거제도도 있는 것입니다.
출처 : http://www.ddanzi.com/ddanzi/section/club.php?slid=board&bno=8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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