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는 흔히 '아이폰'과 연관되지만 실은 그보다 훨씬 더 엄청난 일을 해낸 사람이다. 그는 꿈을 꾸었고 그 꿈을 개척했고 그 꿈을 이뤘다. 정보 기술을 '개인화'(personalize)시켜서 개인을 위한, 개인에 의한, 개인의 소통 도구로 만든 사람이다.
정보기술은 산업사회, 관료사회의 제어기술로 시작되었다. 이 개념은 지금도 군에 남아 있다. 군에서는 C3I 란 개념이 있다. 명령(command), 제어(control), 통신(communication), 정보(information)이다. 즉 군에서 communication은 소통이 아니라 통통신이며 information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정보'가 아니라 '작전을 위한 지식'을 뜻한다.
한마디로 통신과 정보는, 명령과 제어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이는 정보기술의 태동을 보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최초로 정보기술이 사용된 곳은 인구조사 통계처리, (거대조직의) 인사/급여 처리, (거대물류 조직의) 물류/병참(logistics) 처리 분야였다. 또한 최초로 정보기술이 사용된 곳은 복잡한 계산이 필요로 하는 곳이었다.
포탄, 총알, 미사일의 탄도(ballistics) 계산에 사용되었으며 교량과 대형건축물의 구조분석(structure analysis)에 사용되었다. 정보기술은 초거대 조직, 초거대 프로젝트를 위한 도구였던 것이다.
그래서 불과 20년 전까지만해도 사회학자 중에는 정보기술을 '제어기술'(control technology)이라고 불렀던 사람이 많다. 정부, 거대항공사, 거대 선박회사, 거대 은행, 거대 철도회사, 거대 전력회사, 군 병참, 거대 엔지니어링 프로젝트....이런데용되는 기술이었던 것이다. 정보기술은 막스 베버(Max Weber)가 말하는 근대 관료제도(modern bureaucracy)를 완성시키는 도구로 시작된 셈이다. 1946년 IBM이 최초의 상용 컴퓨터 Mark IV를 내놓았을 때, 마케팅 전문가들은 2000년 까지 반세기동안 전세계에서 불과 수백대 정도 팔릴 것으로 보았다.
이를 바꾸어낸 사람이 스티브 잡스이다. 1976년 애플 사를 차린 잡스는 허접한 조립 키트 같은 '개인용 컴퓨터 보드'를 내놓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전자제품 diy 광팬'을 위한 컴퓨터 키트만 존재할 뿐 아직 상용 PC는 없던 시절이었다.
Commodore, Apple, Tandy 같은 회사가 이런 조립 키트용 보드를 내놓던 시절이다. Apple I 보드는 이런 허접한 보드 중의 하나였다. 첫 주문 50장은 스트브 잡스 부모 집의 침실에서 그 누이의 도움을 받아 납땜질을 해서 만들어졌고, 두번째 주문부터는 스티브 잡스 부모 집의 차고가 조립공장 역할을 했다.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미 애플은 당대 최고급의 하드웨어 설계자인 워즈니악(Wozniak)이 합류한 상태였던 점. 칩의 선정과 회로 설계에 있어 다른 경쟁사보다 우월했다.
1976년에 나온 Apple 1보드를 10년이 지난 1986년에 들고 서있는 잡스와 워지니악.
1977년 애플은 Apple II를 내 놓으며 명실상부한 '개인용 컴퓨터'(PC)의 시대를 열었다. 불과 60 KBye 도 안되는 메모리가 장착된 컴퓨터였지만, 이제 비로소 '일반인이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가 생긴 셈이다. 이는 잡스와 워즈니악, 두 사람의 파트너십 때문에 가능했다.
1977년에 나와서 선풍적 인기를 끌은 Apple II
잡스 최대의 실수는, '마케팅의 귀재'로 알려진 펩시콜라 사장 존 스컬리(John Sculley)를 영입한 일이었다. 스컬리는 워튼 스쿨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자로서, 펩시콜라를 코카콜라에 버금가게 만들었던 사람이다. 그가 만들고 진두지휘했던 마케팅 캠페인이 '펩시 첼린지'(Pepsi Challenge)였다. 이 마케팅 캠페인에 힘입어 펩시는 한때 코카콜라를 추월하기도 했다.
스컬리가 만든 '펩시챌린지' 켐페인 때의 펩시 캔. "나는 펩시 챌린지를 택했어요'라고 써있다...
정보기술에 대해 아무런 철학과 전략이 없는 스컬리가 애플을 말아먹고 스티브 잡스를 쫓아냈다...쫓겨난 데에 대해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be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ppen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쫓겨난 것은 정말 다행스런 일이었다. 성공이 주는 부담이 없어지고, 새로 출발하는 사람의 경쾌함을 되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확신하지 않는 경쾌한 마음....해고 상태 및 경쾌함은,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 ...내 인생의 새로운, 가장 창의적 시기로 접어들 수 있게 해 주었다.
애플에서 쫓겨난 잡스는, 허접한 애니메이션 회사를 인수해서 이를 픽서( Pixar)로 비약적으로 발전시킨다. 픽서는 CG와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다시 썼다. 토이 스토리(Toy Story), 인크레더블(The Incredible), 니모를 찾아서(Findig Nemo)...이러한 명작을 양산했다. 나중에 픽서가 디즈니사와 병합했을 때 그 회사가치는 약 8조로 평가되어, 스티브 잡스는 디즈니 사 최대의 주주(약 7% 소유)가 되었다.
PC 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사람이,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쫓겨난 후, 컴퓨터를 이용한 애니메이션을 정복하고, 디즈니사의 최대 주주가 된 것이다.
한편 스티브 잡스를 쫓아낸 스컬리는 1987년에 '오딧세이'(Odysseay)라는 자화자찬 책을 써서, 애플 회사의 돈으로 모든 애플사 직원에게 한 부씩 돌렸다. 이 책에서 스컬리는,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사업가이며, 자신이 왜 잡스를 쫓아냈어야 하는지...구구절절 썼다. (내가 읽어본 책 중에 젤 구역질나고 조잡한 책이다) 스컬리는 애플을 말아먹고....사기를 당한 후에....애플에서 쫓겨났다. 1996년 애플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그 후 15년에 걸쳐 엄청난 3개의 일을 해낸다. 하나는 막강한 운영체제를 확립시켰다. Mac OS. 흔히 운영체제 중에 가장 '단순하고 아름답고 강력한 운영체제'로 BSD Unix를 꼽는데...Mac OS는 BSD Unix를 발전시킨 OS이다. 한편으로 운영체제를 확립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pc 사업을 다시 강력하게 일구었다.
둘은, 음악 컨텐츠와 함께 제공되는 아이팟이다. (이 아이팟 때문에 세계의 MP3 플레이어 회사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셋은, 아이폰이다. 이제 컴퓨터가 휴대폰과 결합해서...스마트 폰의 시대가 되고, 진정한 유비쿼터스 시대가 열린 게다. 아이폰 사용자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우리 아이폰 사용자는 매뉴얼을 안 써. 우린 그딴거 필요 없어. We iPhone people don't use a mamual. We don't neet such a thing. "
단순성, 직관성, 편리성.....배터리 수명도 오래 간다. 운영체제(OS)가 좋고, 소프트웨어가 운영체제 위에 바로 짜였기 때문이다. (삼성 안드로이드도 제발 좀 Java VM 돌리지 말고, 안드로이드 위에서 소프트웨어를 바로 짜기를....삼성엔 3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밖에 없나???)
잡스는 3개의 꿈을 꾸고 셋을 실현시켰다. ..
하나는, 개인의 개인에 의한 개인을 위한 컴퓨터--피씨를 확립시키는 것.
둘은, 현실과 꿈을 오갈 수 있는 컴퓨터 그래픽을 만드는 것.
셋은, 휴대폰을 컴퓨터와 결합시켜 유비쿼터스 시대를 여는 것.
정보 기술에 뛰어들기 전, 인도에 가서 평생 살면서 정신수양을 하겠다던 기이한 청년은 ....
지구의 사이즈를 축소시키고, 인류의 생활방식을 뒤집어 놓고...
이제 숨을 거두었다.
아마, 지구와 인류가 잠시동안 만큼은 좀 편안해 질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