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6일 아버님께서 하늘 나라로 가시어
한국에서 여러 가지 절차를 잘 마치고 싱가폴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위로의 말씀으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부족한 나를 격려해준
모든 친구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느낀 점을 아래와 같이 몇자 적어 봅니다.
싱가폴에서 김형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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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아버지…" 이제는 이렇게 목청껏 불러 보아도
"오냐, 내 새끼" 하며 대답해 줄 내 육신의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가고 안 계신다
올해 구정 바로 전 날에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식당에서
우리 네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하면서 뵈었던 모습이 마지막이라니......
지나고 나서 이런 후회는 아무짝에 쓸데없다고 살아 생전 잘해 드려야 한다고
아내는 늘 강조했지만 건강하셨던 분이 이렇게 갑자기 가실 줄은......
여든 다섯의 연세에 10년 전 어머니까지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터라 다들
호상이라고 했지만 어떤 상에 호상이란 없는 법,
그날 아버진 정말로 많이 드셨고 행복해 하셨다
큰 아들 한결이에게는 미국에서 어떻게 공부 하는지? 음식은 뭘 먹고 사는지?
작은 아들 한솔이 에겐 건강과 학업 심지어 미국과 싱가포르 왕복 비행기 값까지 하나하나
궁금함에 물어오신 아버지께 단답형인 작은 아이 한솔이에 비해 스위트한 우리 큰아들은
할아버지를 놀려대면서까지 세세하게 대답해 드려 식사 시간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미국에서 올라면 비행기 값이 얼마나 드냐?"
"할아버지, 아빠가 비행기 샀어"
아버진 말도 안되는 큰아이의 대답에 웃음 띤 눈흘김을 하신다
"싱가폴에서 올라면 요즘은 얼마나 드냐?"
"할아버지,한솔이도 아빠가 사 온 비행기 타고 왔어 그래서 우리 비행기가 두대야"
아버진 허허실실 말씀을 잊고 웃으셨다
"할아버지, 울 아빠 공부 잘했어?"
"그럼, 공부를 잘했으니 비행기를 두 대나 샀지"
하하 호호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얘기치 못한 대답에 지존개그, 대박개그라며 배꼽을 잡고
뒹굴었다
그렇게 난 그저 아버지께 공부 잘하고 착한 아들이었다
2주 전에 작은 아이 한솔이가 학교에서 히말라야 트래킹을 간다하여
거금을 들여 신발을 사 주었는데도
작은 아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좋다, 감사하다,뭐 이런 반응이 분명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그저 네, 네 일색으로만 단답이었다
그래서 한국에 머물고 있던 아내에게 전화로 작은 아들의 괘씸함을 낱낱이 고발하였더니
아내의 말이 “그게 바로 당신의 모습이야, 자기가 아버지한테 똑같이 하잖아, 네, 네”
아내의 이 말 한마디는 내 머리를 한대 내리쳤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정말로 착한 아들이라고 생각했으며,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그리고 그것이 자식으로서 최고의 고가점수인 줄 알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훈계할 일이 있으면, 나는 그런 지난 날의 내 모습을 은근 자랑처럼
읊조리곤 했다
'아빠는 할머니 할아버지 속 썩인 일이 하나 없는 착한 아들이었노라고'
그러나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내 육신의 아버지는 속은 썩힌 적은 없지만 특히나 나로 인하여 정말로 외로우셨겠다' 하는.
아버지는 초등학교, 중학교..고등학교… 대학교… 심지어 직장에 다릴 때…. 결혼해서 떨어져
생활할 때도 …늘 내게 먼저 말을 붙이며 다가오시는 분이셨다 그리고 뭐든지 궁금해서
물어 오시던 분이셨다
“오늘 학교에서는 어땠니….” “친구들과는 잘 지내니…”
“필요한 것 더 있니…” “춥지는 않니….” “덥지는 않니….” “회사에서 상사와는 어떠니….”
“회사 일은 어떠니…” “힘들 일은 없니…” “아픈데는 없니…” 수 많은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언제나 간단했다.
“예….” “ 없어요…” “알겠어요…” “문제없어요….” 항상 이런 식으로... 마치 지금의
내 작은 아들 한솔이처럼 말이다
나는 착한 아들은 되었을지 모르나, Sweet Son 은 아니었다.
그로 인하여 본의 아니게 아버지를 외롭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작은 아이를 통해
이제사 들여다 보게되니.....
작은 아이 한솔이도 공부 잘하고 자신의 일도 제법 알아서 하는 착한 아들이지만 지난 날의
나처럼 스위트한 아들은 아니기에, 아버지가 된 나는 상처를 적잖이 받는다 묘한 아이러니다
2007년에 아버지 학교를 통하여 초등학교 시절에 내 마음에 묻어 두었던 아버지에 대한
서운한 일을 아버지께 편지 드리면서 내 속마음을 고백하여,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둔
아프고 서운한 것들을 하늘로 훨훨 날려 버렸다.
갑작스럽게 떠난 아버지를 생각하면 정말로 잘한 일이라 생각된다.
요즘 내가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어린 아이는 어떻게 걸음마를 하게 되는가 ?
의사는 이야기할 것이다. 근육…뼈의 조합, 등등 과학자는 직립보행의 원칙, 진화의 원칙 등등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린 아이는 12달 동안 또는 그 이상의 시간 동안에 아빠,
엄마가 걷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걷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어떤 궤변 같지만 자녀는 가정에서 부모가 한 그대로를 닮아가는 것이다
살아 생전 다하지 못한 효도였지만 아이들에게 결코 부끄럽지 않은 할아버지의 막내 아들
모습을 보여준 것은 다행이나 가슴 저 밑에서 아버지께 미처 다하지 못한 조불조불한 얘기가
이처럼 넘쳐날 줄은 참 몰랐었다
스마트한 아들도 좋지만 스위트한 아들이 더 좋아지는 요즘 이제사 난 진짜 아버지가
되어가는 것일까?
아버지, 형오가 이제 철이 나려나 봐요... 어머니 계신 천국에서 잘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