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올해 지점 몇 개를 통폐합하고 연말에 구조조정을 한단다.
10년 이상 근속자, 50세 이상자, 실적 부진자.....and so on.
헉 최소한 2개는 확실히 해당된다.
많이 늦은 감은 있지만 최근 무척 성실하게 근무했다.
나그네는 석양에 바쁘다고 지금 와서 열심히 하면 뭘 하나?
회사 그만두면 핏덩이 같은 애들은 어떻게 공부시키고 장가는 제대로 보낼 수 있으려나?
지금까지 정말 행복하게 살았다....하고 싶은 것 다하고.
그런데 지금부터가 문제다.
끝이 좋으면 전체가 좋은데.....!!
갑자기 정년이 있는 사람과 평생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부럽다.
탁용석, 우제학, 선계은, 이성민, 정우영, 이성섭, 박인호.......
변호사, 의사, 교수, 공기업, 사업가 .....etc.
평생직장이 그들을 선택했나? 그들이 평생 직장을 선택했나?
최근 안짤리려고 열심히 일했더니만 운동 할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어
두 달 운동을 전혀 안하니 땡기는 건 음식이요, 턱은 두개요, 배는 삼겹이요
걷기도 부담스럽다.
10월 28일 열흘 남은 춘천 마라톤 대회는 마치 구조조정처럼 괴물로 변신하여 다가오고
춘천가서 스텝이라도 밟아 보려고 어제 저녁 정말 오랜만에 동네 한강 잠원둔치에서
잠실을 향해 달렸다.
잠실종합운동장까지 6키로는 그래도 명색이 동네 달리기 회원이라 안 쉬고
달렸는데 오는 길이 벅차다.
뒤늦게 만난 동호회 회원들 다 앞으로 보내고 거의 슬로비디오로 뛰는데
갑자기 배가 고프고 머리가 어지럽다.
왜 어지러울까?
결국 동호대교 벤치에 누워 퍼져 버렸고 정말 하늘이 노르스름하다.
나 풀코스 세 번 완주한 사람 맞어?
한 30분 누워 있었나? 완전 저질 체력이 되어버린 스스로가 참담하고
동네에서 이게 무슨 짓인가? 풀코스 뛴 것도 아닌데.....
어지러움증이 좀 가셔 일어나보니 이제는 배가 고파 움직일 기운이 없다.
힘들게 걸어서 동네 치킨집에 도착하여 가지고 있던 만원으로 치킨 반 마리에
콜라 한 병시키니 500원이 남는다.
평생 치킨집에 혼자 들어가 보기는 처음이다.
허겁지겁 먹다보니 콜라가 다 떨어졌고 1,000원이 부족하여 추가 한 병을 시킬 수
없어 외상으로 한 병 더 달라고 했더니만 주인이 먹는 모습이 불쌍한지 캔콜라 하나 주면서
써비스니 그냥 먹으란다......고마웠다...정말 무지 고마웠다.
반쯤 부른 배를 팅기면서 집으로 가는데 고1 아들이 집 앞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다.
아빠 어디 다녀오세요?
“응 세 시간 달리고 왔어”
어디 까지요?
“글쎄, 어디더라 잠실 넘어서 한강 끝까지......!@#$%^&*”
내 대답 말꼬리가 기어들어 간다.
.
.
집에 들어와 읽고 있는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을 펼치니 이런 말이 우연히 적혀 있다.
몸속에 있는 모든 생체기관은 당신이 쉴 때도 항상 운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당신이 대신 운동을 하면 생체기관은 쉴 수가 있다.
당신이 쉬지 않고 생체기관을 쉬게 하는 것은 운동밖에 없다고.......
내가 일하지 않더라도 식구들은 끊임없이 활동을 해야 한다.
내가 일을 해야 그들이 편히 자신의 인생을 꾸려나간다.
내가 쉬지 않고 식구들을 쉬게 하는 것은 나의 끊임없는 자기발전 밖에는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