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욱이가 우리 곁을 떠나간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는데,
정작 승욱이 유고집 편집을 맡아가지고 그동안 시간만 끌고 진행을 못 해서 여러 동기들과 무엇보다 유족들께 송구스런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ㅠㅠ
개인적 변명이야 꺼내면 더 구차해질 것 같아서, 나중에 사적으로 할 기회가 있으면 하기로 하고..
지난 1년 내내 개인적으로 바쁜 일 + 게으름 + 슬럼프 등의 복합적 이유로 질질 끌어오던 편집 작업이
올해 초 마무리되어 먼저 추모시집이 3월 말 이전에 발간될 예정입니다.
애당초에는 지난 번 출간됐던 '술통'의 후속 원고들을 포함해서 산문 + 시집을 하나로 묶어 유고집을 내려고 했었는데
출판사와 논의 과정에서 시집을 따로 먼저 내고, 추후에 '술통'의 개정증보판을 내는 것이 더 낫겠다고 정리를 했습니다.
승욱이가 병상에서 썼던 시들은 여기도 몇 편이 올라와서 관심 있는 동기들은 이미 다 읽어봤을 테지만
그 중에서 '나는 왜'라는 시에서 시집의 제목을 뽑았습니다.
시집의 발문 겸 평은 은사이셨던 전영태 중앙대학교 예술창작과 교수님께서 해주셨고,
간단히(?) 편집자 서문을 대신해서 제가 쓴 추모의 글을 아래 남겨봅니다.
거듭 관심 가지고 기다려주셨던 동기들과 무엇보다 유족들께 제대로 연락도 못 드린 채로 늦어진 작업에 대해 머리 숙여 사죄드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만간 출간될 시집에 동문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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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린 친구에게 바침
―시인 장승욱을 추모하며
승욱이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은 건 재작년(2011년) 늦봄에서 초여름 사이쯤의 어느 날이었다. 문병을 가서 승욱이에게 “이제 술은 못 먹겠네”라고 했더니 “무슨 그런 재수 없는 소리를 하냐, 내년엔 다시 마실 수 있을 거다”란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승욱이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해 12월 말. 그간 입원과 통원치료, 요양을 거치면서 몸무게는 반으로 줄고 한때 거동도 불편한 상태까지 갔다가, 그래도 조금씩 기력을 회복한 참이었다. 그날 승욱이는 병상에서 쓴 시들을 보여주면서 그 시들을 묶어서 시집을 낼까 한다고 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거란 생각은 못 했다. 아니, 애써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려 했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2012년 1월 25일, 승욱이는 우리 곁을 영영 떠나갔다.
막상 승욱이를 보내고 나니, 미리 책에 대해 상의를 못 했던 것이 못내 아쉽다. 원고들을 묶으면서 이런저런 궁금한 점이 있어도, 가족이나 생전에 나보다 승욱이와 더 가까웠던 다른 친구들 역시 그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결국 최종적인 판단은 내 스스로 내릴 수밖에 없었기에, 혹시라도 이 책의 내용 중에 승욱이의 본뜻과 조금이라도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그 역시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 책임은 오롯이 내 몫이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의 편집을 자청하고 나선 것은 승욱이와 나의 좀 특별하다면 특별한 인연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사실 고등학교 때만 하더라도 우리는 서로의 존재는 알고 있었으되 한 번도 같은 반은 된 적이 없었고, 그래서 서로 소 닭 보듯 그다지 친밀한 교유는 없는 관계였다. 심지어 나는 승욱이가 나와 같은 대학을 지원하고 합격했다는 것도 합격자 발표가 난 이후에야 알았으며, 계열별 입학이라 1학년을 가나다 순으로 분반해서 보낸 후 2학년 때 국문과로 진학해서야 승욱이도 같은 과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건 물론 승욱이에게도 마찬가지였을 테지만.
한 학년이 달랑 10여 명에 불과했던 국문과였지만, 그나마 승욱이와 내가 가끔 얼굴이나 마주치던 것은 강의실이 아닌 개강 파티나 종강 파티, 국문과 MT 따위의 자리에서뿐이었다. 나는 나대로 운동권 학생이 되어 수업을 빼먹었고, 승욱이 역시 밀렸던 술과의 인연을 푸느라 수업에는 그다지 열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2학년을 마치고 승욱이는 군대를 가고 나는 또 시위로 제적이 되어 대학에서의 인연도 흐지부지 끝난 뒤 연례행사로 열리는 과 동창회 송년회 등에서 간간이 얼굴을 보다가, 다시 승욱이와 인연이 맺어진 것은 20여 년이 흘러서 지난 2006년 승욱이가 "술통" 원고를 들고 당시 내가 일하던 출판사로 찾아오고부터였다. 그 인연으로 결국 승욱이는 나와 같은 출판사에 근무하게 됐고, 결국 고등학교와 대학교, 문학동아리에 이어 직장까지 함께 다닌 어쩌면 희한한 인연을 맺게 되었던 것이다.
둘의 관계가 더 특이한 것은, 그렇게 시공간의 인연을 쌓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승욱이와 나의 거의 유일한 공통점은 단 한 가지, 둘 다 술을 좋아한다는 사실뿐이었다는 점이다. 승욱이와 아삼육으로 어울려다녔던 친구가 말하기를 ‘승욱이가 평생 마신 술의 1/10은 나와 마신 술이다’라고 했는데, 자주는 아닐지라도 나 역시 승욱이가 마신 술의 1/1,000쯤은 나와 마시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대부분의 술값은 승욱이가 계산했지만.
한 가지 덧붙이자면, 승욱이는 어땠을는지 몰라도, 내게는 승욱이에 대한 한 가지 콤플렉스가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철 모르고 시를 쓴답시고 혼자서만 깝죽거리던 무렵에, 처음으로 내게 쓴 맛을 보여준 이는 안도현 시인이었다. 당시 복간됐던 "학원"지에 말하기 조금은 남사스러운 이유로 내가 실린 적이 있었는데, 같은 지면에 안 시인도 고등학생 시인으로 소개되면서 시도 함께 실렸었다. 나와 같은 학년이었던 그의 시를 보면서, 내가 끄적거렸던 것들은 과연 시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가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 직후에 받은 교지에서 만난 장승욱의 시는, 말하자면 연타로 나를 KO 시켰다. 멀리 대구가 아니라 바로 내 곁에도 똑같은 천재가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에 나는 그 뒤로 승욱이의 시에 대한 경외감과 함께 나름대로 제1의 독자를 자처해왔다. 이번에 유고집을 편집하면서 거듭 승욱이의 문재에 대해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면서, 이제 그의 시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더욱 비감함을 느낄 뿐이다.
이제 책에 대한 얘기를 좀 해야겠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편집에 대해 상의할 필자 본인이 없는 상태에서, 일단은 승욱이가 병상에서 남긴 유작들과 그 이전에 쓴 시들 가운데 첫 시집 "중국산 우울가방"에 수록되지 않았던 시들을 가능하면 모두 찾아서 묶기로 했다. 기대했던 만큼 많은 작품들을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지인들을 통해 승욱이가 언제 어디다 시를 썼다더라 하고 귀띔받은 작품들은 그래도 모두 찾을 수 있었다. 특히 이를 위해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승욱이가 썼던 시들을 여기저기서 찾는 데 도움을 준 친구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전한다.
시들의 구성은 나름대로 여러 가지로 고민해봤지만, 역시 필자의 의견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쓰여진 시기를 기준으로 묶는 가장 무난한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1부의 시들이 그가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시들이고 2부는 승욱이의 첫 시집 이후 썼던 시들을 (언젠가 펴낼 두 번째 시집을 위해) 승욱이 본인이 정리해놓은 것들이다. 그리고 끝으로 3부는 승욱이가 언제부터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어도, 어쨌든 대외적으로 그가 처음 시를 공개하기 시작한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에 이르는 기간 동안 썼던 시들을 최대한 모아봤다. 출처 가운데 "작업"이라고 돼 있는 것은 승욱이가 활동했던 ‘연세문학회’ 동기들과 함께 펴낸 창작집을 말한다. 승욱이는 1986년에 발간된 1집에 9편, 그리고 1989년 발간된 2집에 한 편의 시를 각각 남겼다. 학창 시절의 시들이라고 해서 상대적으로 수준이 떨어진다든가 하는 느낌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얘기는 그야말로 쓸데없는 사족이 될 것이다.
다만 각 시들의 쓰여진 시기는 최대한 확인할 수 있는 대로 확인해서 각 시마다 말미에 표기했고, 특히 2부의 시들은 승욱이가 별도로 만들어놓은 목록이 있어 이를 따랐으되 목록의 작성 기준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도 없고, 솔직히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끝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유고시들은 승욱이가 거동이 불편한 가운데 힘들게 쓴 시들을 부인이 집에 가져가서 컴퓨터로 타이핑하고 프린트로 뽑아 승욱이에게 다시 확인을 거쳤다고 하는데, 그렇게 전해 받은 파일에는 의도적인지 실수인지 오타로 보이는 부분들도 있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제 확인할 길이 없기에 나름대로 의도가 있었으려니 하고 그대로 수록했음을 밝힌다.
끝으로 승욱이의 시에 대한 평을 겸한 발문은 고등학교 때 은사이셨던 중앙대학교 전영태 교수님이 써 주셨다. 특히 전 교수님은 내게는 중학교 때부터 모셨던 스승님으로 다시 고등학교 때도 만나뵙게 됐던 이 역시 흔치 않은 인연이 있는 분이신데, 무엇보다 고등학교 때 나를 ‘멘붕’하게 만들었던 승욱이의 시에 대해 ‘너무 일찍 피어 걱정된다’는 요지의 평을 해주셨던 것으로 기억해 특별히 이 유고집에 대해서도 평을 부탁 드리게 됐다. 말하자면 시인 장승욱에 대한 최초의 평자이셨던 교수님이 마지막 평을 해주시는 것도 남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거듭 이 자리를 빌려, 승욱이를 대신해 고마움을 전해드리고 싶다.
끝으로 원래는 지난 여름에 출간하기로 했던 이 유고집이 이제서야 나오게 된 데 대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전적으로 편집을 자청했던 본인의 게으름과 부주의 탓이며, 그렇지 않아도 출간 지연으로 노심초사했을 가족들과 지인들, 또한 출판사 관계자분들께 구질구질한 변명으로 새로이 심려를 얹어드리지 않는 것이 그나마 나의 죄송함을 표하는 마지막 예의일 것이다. 또한 생전의 승욱이를 기억하면서 이 책의 발간을 기다려주신 모든 분들께도 다시 한 번 사과 드리고, 고생해주신 모든 분들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책에 혹시라도 모자라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너무나 당연히 본인의 책임임을 인정하고 반성하고자 한다.
오늘은 연남동 양꼬치 집에 가서 공부가주라도 한잔 해야 할 것 같다…
친우들을 대표해…최병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