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년 여름....
군대를 제대하고 3학년 가을학기로 복학하기 위해 영등포 시립도서관
사회 과학실에서 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머리카락도 채 자라지도 않은 예비역 군발이에게 사회의 모든 모습이
생소했고 마치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고시공부를 시작해야 겠다는
생각에 하루에 여덟 시간 이상씩 책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날,
맞은 편에 여학생이 앉아 있는데 거의 한 눈에 뿅 가버렸다.
세상에 저렇게 예쁜 학생이 항상 자기 자리에 앉아 나 못지않게 열심히
공부를 했고 점심시간 이외에는 자리를 뜨는 적이 없었다.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괜히 내 얼굴이 붉어지며 가슴도 뛰기 시작한다.
가끔 그녀가 나오지 않는 날은 혹시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공부의 집중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에 대한 감정은 온통 내 몸 전체에 소리없이 퍼져 감당하기
버거운 상황에 까지 이르렀다. 이상한 감정의 화학반응이 내 허락도 없이
자기 멋대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하는 여자일까, 어느 학교 몇 학년일까? 물론 남자 친구는 있겠지?
여름방학이 끝나면 복학을 하게 되고 이 도서관은 올 수 없기 때문에 방학이 끝날
즈음의 토요일 용기를 내어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용기”
정말 좋은 단어다.
용기야말로 모든 일의 원기(만물의 근원이 되는 정기)이다.
그 날 따라 그녀는 약간 화장을 한 모습이었다....입술이 발그스럼하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은은한 화장품 향기는 나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녀의 펼쳐진 책 사이로 학생증이 놓여져 있었으나 육안으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잠시 화장실을 간 틈을 이용해 삐죽 튀어나온 학생증을 얼른 보았다.
“Oh, my god...... but thanx god"
우리 학교 사범대 81학번 즉 4학년 이었던 것이다.
나도 학생증을 꺼내 그녀가 볼 수 있는 위치에 놓아 두었다.
같은 학교라 다소 긴장되었던 마음이 안정 되면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에 대해 어렴풋이 답이 나왔다.
토요일 정오가 넘자 주섬주섬 가방을 싸고 도서관 밖으로 나가길래 쫓아나갔다.
“안녕하세요”
뒤돌아 힐끗 쳐다본다.
같은 학교인 줄 알고 있는지 생각보다 놀라는 기색은 아니었다.
“토요일날 화장한 것 보니 데이트 가시는 모양이죠?”.....
군발이 기운이 남아서인지 나도 모르게 의외의 강력한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아셨어요?”하며 경계감을 풀며 화사하게 웃는다.
웃는 모습이 정말 예쁘다.
“저는 척 보면 압니다”
10분 정도 후 벌써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다음에 보면 서로 아는 척 하기로
약속을 하고 신촌으로 가는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멍하게 바라보았다.
그 이후 며칠간의 남은 기간동안 도서관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같이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학교 선생이 되기 위해 순위고사를 공부중에 있으며
내가 처음에는 재수생처럼 보였다는 둥.....점심먹고 이야기 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여자는 두가지 타입이 있다.
처음 만날 때는 70점이었는데 만날수록 점수가 올라가는 사람과
처음에는 거의 100점에 가까운데 만날수록 점수가 낮아지는 여자 말이다.
그런데 그녀는 처음에도 100점에 가까웠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100점으로는 부족한
하늘 냄새가 나는 그런 여자였다.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말이다.
대화 중 알게 된 사실은 예상대로 남자친구는 우리학교 법대 4학년이었는데
최근에 와서 불안 불안한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인다. 아니 어쩌면 그녀가 오히려 의도적으로
틈을 보인지도 모를 일이다.
갑자기 희망의 빛이 creep같은 나에게
우리의 관계에 서광을 비춰 주는 것 같았다.
가을학기가 시작되어 서로가 바빴다.
그 당시는 핸드폰이 없었기 때문에 생각 날 때마다 만난다는게 쉽지 않았다.
한참 후에 안 것이지만 그녀는 우리 학교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남학생들의 관심녀로서
우리 과 아이들도 많이 알고 있었다.
가을이 채 오기 전 우리 둘이는 어린이 대공원으로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처음 하게
되었다....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청룡열차도 타고 뺑뺑이 비행기도 타고
아이스크림도 먹고..다람쥐 바퀴도 타보고....
집에 바래다 주는 길에 버스는 텅텅 비었고 우리는 맨 뒤 칸에 앉아 있었다
버스가 아현 고가도로 위로 오르기 시작하고 나는 잡은 손을 어깨위로
얹으면서 키스를 했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그 당시 그게 그렇게 하고 싶었을까?
버스는 고가도로 위라서 창밖으로 하늘만 보였고 내 기분은 그 하늘로 붕 떠서 날아간다.
우리는 버스가 내려올 때 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24년 인생에 또 하나의 나이테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우리는 공공연하게 학교에서 만났다. 식당에서 벤취에서 잔디밭에서.....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억세게 재수 좋은 놈이란다.
그런데 그들이 모르는게 하나 있다.
사랑은 택배처럼 그냥 배달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용기와 원기가 있어야 한다는 걸.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날
광화문의 조그만 카페에서 촛불을 켜놓고 서로 선물을 교환했다.
내가 받은 선물이 “독일인의 사랑”이라는 책이었고
나는 그녀에게 목걸이를 선물했고 직접 목에 걸어 주었다
(이 선물을 하려고 두 달 동안 돈을 모았었다)
그 때 들었던 창밖의 여자와 woman in love 노래는 지금도 나를 흔들어 놓는다.
귀가길 그녀의 집 앞 포장마차에서 한 잔 더했는데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며
“나 집에서 결혼하라고 해”
그해 순위고사가 그녀가 공부한 과목은 내년으로 연기되는 바람에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결혼이란 생각지도 않은 단어였다.
열심히 고시 공부해 2년 후에 프로포즈를 할 생각이었는데...
2년동안 그녀를 잡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정말 굼벵이 같은 생각이었다.
그 다음해 2월 그녀의 졸업식에 참석하여 꽃다발을 전해 준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5월 어느 날
학교 잔디밭에 앉아 있는데 그녀의 후배가 나에게 들려 준 말
“언니 다음 달에 결혼해”
.
.
@#$%^&*()
결국 고시도 그녀도 다 놓쳤다.
그리고 7년 후 내가 신혼 시절
영등포 신세계 백화점에 볼일이 있어 갔는데 뒤에서 누가 아는체 한다.
그녀였다.
양 손에 아들 두 명을 데리고 화사하게 나를 보고 웃는다.
영등포 도서관에서 처음 말 걸었을 때의 웃던 모습에서
화장만 더 진하게 하고 있었다.
영화“초원의 빛”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나
행복하냐고 물어 보려다 말았다.
행복하다고 해도, 그렇지 않다고 해도
둘 다 가슴이 아플 것 같아서 였다.
지금 와 생각하니 이런 글귀가 떠오른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더 사랑하지 못했다고 애태우지 마십시오
마음을 다해 사랑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세상의 꽃들은 더 아름답게 피지 못한다고 안달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이름으로 피어난 거기까지가
꽃의 한계이고 그것이 꽃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20년 만에 또 소식을 들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살고 있다고
남편은 목회를 하고 있다고.....
인생이란 단 한 벌의 옷 밖에 입을 수 없다는 생각이 스치우며
물끄러미 바느질하고 있는 아내를 쳐다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