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강: “미래를 바꾸는 행복한 교육”
이 범 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은 “‘미래’도 ‘행복’도 ‘교육’도 어려운 주제인데, 이를 하나로 엮어서 말하려니 어렵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노무현 시민학교의 세 번째 강의는 ‘미래를 바꾸는 행복한 교육’이라는 ‘어려운’주제로 지난 16일 화요일 저녁에 개최되었다. 교육문제는 부동산문제와 더불어 ‘전국민이 전문가’라고 불릴 만큼 집중관심의 양대산맥이라고 할 수 있다. 화이트보드에 판서까지 하며 열심인 강연자와, 저마다 교육문제를 현실에서 체감하고 있는 시민학교 학생들의 참여로 열띤 강연이 진행되었다.
행복하지 않은 지금의 교육
강연자는 현 교육행태를 한국학생들의 ‘삶의 위기’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면서 학생들의 학습동기가 없다는 문제와 부모-학원주도형 학습문제를 그 원인으로 꼽았다. 한국학생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 공부한다. OECD 국가의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의 일주일 평균 공부시간은 34.5시간인데 반해, 한국 고1학생의 공부시간은 이를 훌쩍 넘긴 50시간으로 단연 높다. 각 국가의 학습성취도를 평가하는 지표인 PISA(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3~4과목 평가)와 TIMSS(중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수학과 과학과목 평가)의 점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항상 2~4등의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학업흥미도는 낮아, 과학흥미도는 29개국 중 29위, 수학은 49개국 중 43등이다(TIMSS 평가 기준). 교육환경 또한 열악하여 한 학급당 학생수는 OECD국가 중 최저이다. ‘공부를 오래하고 성적도 좋지만, 흥미는 없다’는 것은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나 선생님께 떠밀려 공부한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한국 학생들의 학업흥미도는 OECD국가들중 거의 최하위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습시간
이나 성적은 제일 높습니다. 왜 그럴까요? 네 글자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바로 '혼날까봐'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요즘 아이들은 ‘왜 공부해야 되는데?’가 가장 큰 질문거리이다. 절대빈곤을 간접적으로도 경험해보지 못한 아이들은, 기성세대처럼 생존본능으로 공부하는 세대를 이해하지 못한다. 강연자는 이 때문에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라는 것이 기성세대보다 100배 쯤 중요해졌다고 강조하면서. 동기부여가 되지 않은 아이들이 어린나이에 무기력 증세를 보이는 현상에 대해 우려했다.
부모주도형, 학원주도형 ‘관광식 공부’
학생들은 방학 기간 중 다음 학기 내용을 미리 선행학습한다. 학기가 시작되면 학교와 학원에서 정규로 배우고, 마지막으로 시험기간이 되면 학원에서 한번 더 정리한다. 이런 ‘관광식 공부’는 수동적 반복 전략이 핵심인데, 이 반복이 계속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스스로 계획하는 일을 못하게 된다. 자기주도학습의 노하우는 중학교 때 형성되는데, 이 시기에 기회를 놓치게 되면 인생 전반에 걸쳐 자발성이나 자기주도성을 갖지 못할 확률이 높다.
한국 교육의 암담한 현실을 보여주는 통계가 한 가지 더 있다. ‘부모소득과 자녀 접촉빈도 사이의 상관관계’가 그것인데, 부모가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잘 안 찾아간다는 스펙트럼의 제일 끝에 우리나라가 위치해있다. 이는 청소년기의 잘못된 교육에서 비롯된다. 우스갯소리로 한국에서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려면 세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데, 첫째, 할아버지의 재력, 둘째, 엄마의 정보력, 셋째, 아버지의 무관심이라고 한다. 청소년기에 아버지는 소위 물주로 전락하고 어머니는 정보력을 무장한 매니저가 된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아이가 부모와의 약한 유대감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는 지금의 교육문제가 아이의 인성에도 상당히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 현재 한국학생들의 삶은 '위기'수준이다. 청소년기에 아버지는 소위 물주로 전락하고 어머니는
정보력을 무장한 매니저가 된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아이가 부모와의 약한 유대감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한국교육의 우파적 과제: 다양화(획일성의 극복)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 한 후보가 부적격 교사의 10%를 퇴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현행 교육 시스템은 부적격자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교사에게 자율성이 주어지지 않아, 교사 나름의 수업방식과 평가방식을 개발할 여지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시험인 수능과 일제고사는 모두 객관식으로 이루어져있다. 한국 학생들은 답이 있는 문제에서 정확한 답을 찾는 훈련은 잘 되어있지만, 자신의 아이디어와 생각을 쓰라고 격려 받아 본 적이 없다.
교과목이 국‧영‧수 중심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다. 외국에서는 대학 전공에 맞추어 전공을 정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개인별 내신과목을 정하는데 있어 선택권이 없다. 자율형 사립고 만든다고 다양한 교육이 되는 것은 아니다. 평가제도나 교과과정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교육내용은 전혀 바뀔 수 없다. 현 정부가 국‧영‧수를 중심으로 수능을 재편하려는 것은 심각하게 우려할만하다.
한국교육의 좌파적 과제: 경쟁의 완화
교육에서 경쟁이 너무 심하다. 이는 사교육을 심화시킬 뿐 아니라, 출산율 저하의 원인이 된다. 학벌주의와 대학서열화를 없애지 않으면 이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 민주노동당에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를 제안했다. 그러나 적절한 장치가 없으면 ‘1류 사립대, 2류 국립대’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상위권 사립대학들을 견인할 강력한 정책수단과 의지가 함께 가야 한다.
평등한 사회가 되면 교육에서의 경쟁이 자동으로 완화된다. 독일, 핀란드, 스웨덴의 입학 선발기준이 비평준화 되어있지만 입시에 큰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사회가 평등하기 때문이다. 특정 학교의 특정 학과를 가지 않으면 인생의 프리미엄을 얻을 기회가 사라질 것이라는 인식이 우선적으로 타파되어야 한다.
새로운 교육이념
민주시민교육과 기업인재교육은 맞닿아 있다. 대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은 20세기와는 전혀 다른 고민을 한다. 10년 전만해도 이들 기업들은 1등 기업이라는 ‘정답’이 있었다. 그러나 1등 기업으로 도약한 지금은 남들이 한 번도 하지 않은 고민과 시도를 해야만 한다. 따라서 기업의 창의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인터넷과 각종 장비들의 발달로, 모르는 지식을 찾는데 걸리는 시간이 대폭 줄었다. 머릿속에 얼마만큼의 지식이 있는가 대신 이를 활용하기 위해 먼저 이해하고 창의적으로 변형하는 능력, 논리를 추론하고 자기 생각을 논증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
친구와의 경쟁을 가르치는 교육으로는 협력하고 소통하는 인재를 키워내기 어렵다. 기업 경쟁력의 상당부분은 구성원간의 협동능력에서 나온다. 경쟁력을 개인의 단위에서 볼 것이 아니라 기업이나 국가 수준으로 생각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민주시민과 기업인재의 공통분모가 생긴다.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민주시민의 기본일 뿐 아니라 기업인재의 자질이기도 하다.
▲ 기업 경쟁력의 상당부분은 구성원간의 협동능력에서 나온다. 여기에서 민주시민과 기업인재의
공통분모가 생긴다.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민주시민의 기본일 뿐 아니라 기업인재의 자질이기도 하다.
열띤 논쟁은 뒤풀이까지 이어져 비대화된 사교육을 줄일 수 있는 방안, 입학사정관제의 불투명성에 대한 우려, 다양한 교육방식과 평가체계 도입의 시급성, 일부 학교에서 성공을 거둔 혁신학교의 사례 등 다양한 논의가 계속 이어졌다. 이 범 보좌관은 또한 18억 연봉을 포기하고 정책 쪽 길로 들어선 계기, 선거 유세 때 있었던 일, 자신의 자녀교육 방법 등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해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보육과 교육이 힘들다는 학부형의 말에 대해 앞으로 서울시가 준비 중인 계획에 대해서도 설명해주는 등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다음 시민학교 강좌는 조국 서울대교수의 “인권보장의 실천적 의미”에 관한 강좌이며, 23일 (화) 저녁 7시 30분에 성북구청 아트홀에서 열린다.
▷ [1강: 사회정책총론] “사람사는 세상을 만드는 방법” _김용익(서울대 의대교수)
▷ [2강: 노동] “양극화 없는 행복한 일자리 만들기” _윤진호(인하대 교수)
▷ [3강: 교육] “미래를 바꾸는 행복한 교육” _이범(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
▶ [4강: 민주주의, 인권] “인권보장의 실천적 의미” _조국(서울대 법학대학원교수)
▷ [5강: 복지] “한국식 사회투자 국가의 비전” _유시민(참여정책연구원장)
▷ [6강: 환경] “나는 반대한다-4대강의 진실” _김정욱(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 [7강: 특강] “미래 한국을 향한 구상” _강금실(변호사)
강연자 소개
이범은 교육평론가이자 서울시 교육청의 정책보좌관이다.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분자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과학사·과학철학 전공으로 석․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그는 석사 과정 중 학원가에 처음 발을 들여놓으며 사교육 시장에 진입했다. 이후 메가스터디의 창립 멤버가 되어 기획이사를 역임하였다. 이른바 스타강사로 활동할 무렵 국내 학원인 중 총수입 2위를 기록하기도 한다. 하지만 2003년 10월 한국 사회의 사교육과 교육 황폐화에 책임과 환멸을 느끼고 메가스터디를 퇴사하고 곰스쿨, EBS 등에서 무료 강의를 하면서 교육평론가로서 활발한 저술 및 강연 활동을 했다. 2010년 6월 서울특별시 교육감 선거에서 곽노현 후보의 선거 운동을 도왔으며 곽노현 교육감의 당선 이후 서울시 교육청의 정책보좌관으로 발탁되었다.
지은 책으로는 『이범의 교육특강(2009, 다산에듀)』, 『굿바이 사교육(2010, 참언론 시사인북』, 『이범 공부에 반하다(2006, 한스미디어』, 『학원 발가벗기기(2007, 와이즈멘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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