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라이즈 월드(sunrize world)가 일출 후 어른들의 규범적 세상이라면 문라이즈 킹덤(moonrize kingdom)은
월출 후 아이들의 몽환적 왕국이라 할 수 있겠지요.
나쁜 짓일 줄 알면서도 일탈이 주는 쾌감과 그 비밀스러움이 좋아 우리들도 유년시절 한 두 번씩
아름다운 비행(?)을 저지르기도 했답니다.
바타이유가 일찍이 욕망이란 ‘금기의 욕망’이라 했었습니다.
사실 어른들이 정해준 규칙에 따라 착하게만 살아 온 친구들에게는 삶의 비의(秘義)가 있을 수 없겠지요.
교과서 같은 반듯한 삶속에 번개를 맞은 듯한 짜릿한 기쁨이나 그 무엇으로도 대체되어질 수 없는
충만한 황홀경은 끼어들 틈이 없을 것입니다.
지천명의 나이를 훌쩍 넘긴 우리들도 졸업을 한 지 삼십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동창을 만나 매번 낄길거리며
나누는 추억의 정담도 대부분 일탈의 무용담입니다.
아니, 지금도 혹시 은밀하게 일탈할 수 있을까 감춰 둔 자신의 촉수를 어루만지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자, 그렇다면 영화 ‘문라이즈 킹덤’을 강추합니다.
꿈을 잃어버린 어른들을 위한 동화일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2012 칸 영화제 개막작! 의상 소품 음악으로 완벽하게 재현해낸 환상적인 비쥬얼.
196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마법같은 뉴 펜잔스 섬으로의 초대!
팜플렛에 적혀 있는 광고 문구처럼 영화 ‘문라이즈 킹덤’은 왜 이 작품이 작가주의 영화를 존중하는
칸 영화제의 개막작임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파스텔톤 빛깔의 의상, 한편의 수채화 작품 같은 미장센, 스토리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깔리는 음악,
애니메이션처럼 부드럽게 이어지는 트래킹 샷, 무언가 느낌을 남기는 잠언과 같은 대사,
음악으로 표현한 수미쌍관식 연출등이 돋보이는 완성도 높은 작품입니다.
특히 주인공들의 심리를 표현하는 음악이 전편에 깔리는데...
음악에 문외한인 나로서도 저절로 그 음악에 감정이입이 되었답니다.
1년 전 교회 연극을 스카웃 대원들과 함께 보러 간 샘은 까마귀 역을 맡은 수지를 대기실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첫 눈에 반하게 됩니다.
아마 수지의 상처입은 손등과 반항적인 눈빛 때문이었을텐데요...
샘은 가족없이 위탁가정에서 사는 문제아였는데, 범상치 않은 수지에게서 그런 에너지를 느꼈나 봅니다.
1년 동안의 펜팔을 통하여 둘은 서로의 상처와 아픔을 알아가고, 결국 자신이 사는 섬을 탈주하는데...
샘과 수지를 찾는 어른들(부모, 경찰소장, 스카웃 대장, 사회 복지사)과의 좌충우돌이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유사 어른을 흉내내는 샘은 짐짓 담배도 한 대 피워 물고, 수지는 아이 쉐도우 화장에 엄마의 향수를 뿌리기도 합니다.
모닥불을 피워 놓고 춤을 추다가 프렌치 키스까지 나누는 장면도 나오는데요...
동화속 섬 같은 배경과 샘과 수지의 풋풋한 표정 때문일까요...
도무지 불량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머러스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새로운 영토에 자신의 집을 짓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샘과 수지...
멀리 있는 것을 망원경을 통해 보고 싶은 건 자세히 들여다 보는 수지...
위험하지만 나무 높은 곳에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마련하는 스카웃 대원들...
이것은 일상적인 삶에 안주하는 어른들, 멀리 보지 못하고 가까운 것만 보려 하는 어른들,
위험한 것 보다는 안전한 것을 선택하려는 어른들과 묘한 이항 대립을 암시하는데요...
하지만 어른들과 아이들은 대립적인 관계로만 묘사되지는 않습니다.
경찰소장은 샘과 맥주 한잔을 함께 나누면서 어른들이란 아이들이 실수도 하면서 자유롭게 성장하기를 바라지만
너무 위험한 실수에 처하는 것을 막아주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스카웃 대장도 샘의 야영 실력을 인정해 주고, 지도 만드는 법을 알려준 어느 노인은 샘의 상상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어른들에게 발각되어 붙잡혀 온 샘과 수지를 스카웃 대원들은 또 다시 탈출시켜주기로 공모합니다.
두 번째 새로운 탈주속에서 샘과 수지는 모의 결혼식을 올리기도 합니다.
이 세상 어느 동네도 부모의 동의 없이 결혼할 수 없는 나이의 샘과 수지는 기존의 관습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스카웃 대원들을 증인으로 결혼식을 마치고 다시 탈주의 길을 떠나는데, 감독은 음악을 웅장하게 깔아주고
우리들 마음도 덩달아 웅장해집니다.
쫒고 쫒기는 과정에서 어김없이 폭풍우가 몰아치고 샘과 수지가 마지막으로 도망친 곳은 교회의 첨탑입니다
온 마을은 홍수로 잠겨있고 교회 첨탑에서 뛰어 내리려고 비장하게 두 손을 잡은 샘과 수지는 마지막 키스를 나누는데
두 입술 사이로 전기가 번쩍 흐르며 그 때 동시에 우르르 쾅쾅 번개가 칩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 온 샘과 수지.
경찰소장의 양아들이 된 샘은 하루에 한 번씩만 수지 엄마 몰래 수지를 만납니다.
이 부분이 통과의례를 거친 샘과 수지가 현실의 삶으로 귀의했음을 보여주는 것인지 저는 아직도 헷갈립니다.
한군데 있기 싫어서, 자신의 앞 날을 알 수 없어서, 어른들처럼 둘의 로맨스를 완성하고 싶어 여행을 떠났던
샘과 수지는 결국 그러한 통과의례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일까요....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이 크레딧이 올라갈 때 배경음악으로 나옵니다.
악기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불러 주는 것이 인상적인데, 아마도 오케스트라라는 협연속에
엄연히 존재하는 개별적인 소리들을, 그 각기 다른 정체성을 확인해 주고 싶은 감독의 의지로 읽힙니다.
그러니까 각각의 악기가 최선을 다해서 연주되어 질 때 전체로서의 오케스트라는 최고의 작품을 완성하겠지요.
‘문라이즈 킹덤’ 같은 추억이 없이 성장해 버린 어른들은
‘문라이즈 킹덤’을 찾아 떠나는 아이들의 일탈 여행을 이해하지 못할겁니다.
어른들의 시선 혹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 즐거움을 거세당한
이 땅의 아이들은 문라이즈 킹덤의 탈영토화된 세상을 엿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