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자전거가 아니라 축구다.
아시다시피 나는 종로 명문 구단 인왕 축구회에서 50대 베테랑부 센터 포드이다.
나의 드리블링은 상대방의 무게 중심을 역이용하는 리듬 축구이다.
이 말이 잘 이해가 안 간다면 메시를 떠 올리면 된다^^*
그런데 이번 6월 국회 의장배 대회에 내가 40대 장년부 라이트 윙으로 전격 발탁되었다.
53세 나이에도 40대 경기에 먹힐 수 있다는 집행부의 심오한 의중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표현은 안 했지만 집행부의 결정을 존중했고 아주 살짝 긴장했다.
‘체력을 길러야 한다. 40대 녀석들과 맞짱을 뜨기 위해서는 체력을 길러야 한다.’
그렇게 해서 나는 출퇴근 길에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자하문 터널 위 가파른 스카이 웨이 쪽으로 힘차게 올라 청운중학교를 지나 청와대 방향으로 내리 꽂는 환상의 코스다.
그런데 사단은 늘 그렇듯이 음주 운전을 하며 발생했다.
지난 주 퇴직한 선배가 찾아 와 술 한잔을 하게 되었다.
술을 마시기 전 냉철한 이성적 판단으로 가볍게 정말 가볍게 소주 딱 3잔만 할 요량이었다.
그 정도면 자전거를 타고 가도 아무 지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주 3잔은 지체 없이 소주 1병으로 이어졌고 – 3잔 마신 후 내가 갈등을 전혀 안했다는 사실은 내 의지의 허약함을 드러낸다 –
자동 코스처럼 생맥주 1000cc까지 달렸다.
그렇게 달리고 보니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싶어졌다.
같이 마신 선배와 후배는 자전거를 두고 가라고 했고, 나는 천천히 끌고 가면 된다고 했다.
5월 인왕산에서 불어오는 감청빛 바람은 시원했고 용기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나는 페달을 밟기 시작했고 한적한 청와대 길은 음주 자전거 코스로는 제 격이었다.
청운 중학교 부근 경사를 오르며 힘이 부치기도 했지만 다음 대회 40대 주전을 떠 올리며
나는 낑낑거리며 발 끝과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내 곁을 격하게 스쳐 지나가는 차량들을 의식해서 였을까...
순간 반대 쪽으로 자전거 핸들을 돌리다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손바닥과 무릎이 까졌지만 대수롭지 않은 척 계속 타고 올라갔다.
‘나는 40대 주전이다. 여기서 끌고 올라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실 문제는 오르막길 보다 내리막길이다.
자하문에서 아래로 내리 꽂는 길은 1차선 외길이다.
자가용 흐름대로 그 속도로 내려와야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찔하다.
올라올 때 넘어진 것 때문에 정신이 확 든 상태로 조심스럽게 내려오지 않고 그냥 꽂았다면 큰 사고가 났을지 모르겠다.
그게 큰 위안거리다.
그리고 오늘 아침... 부슬비가 오는데도 이 정도는 낭만이라며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왜냐면 나는 40대 주전이기 때문에 이 정도 비는 낭만으로 여기는 호연지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빗길이니깐 조심스럽게 달렸다.
빗물이 안경알에 부딪쳐 시야가 흐려져도 나는 계속 호연지기 정신으로 달린다.
잠시 갈등이 생기기도 했지만 돌아가기에는 지각할 것이고, 어쩐지 쪽 팔릴 것 같았다.
상명대앞에서 자하문으로 오르는 길은 비가 와서 인지 차량들이 붐빈다.
도로 끝에 바짝 붙어 빗물을 맞으며 의연하게 오르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지나치는 차량들이 장난이 아니다.
위험을 감지한 나는 인도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차도와 인도를 경계 짓는 턱이 그리 높은 지 나는 정말 몰랐다.
가볍고 경쾌하게 넘어설 수 있을 것 같은 그 턱에 부딪쳐 나는 그대로 자빠지고 말았다.
무픞이 까져 피가 흐르는데 젠장 빗물 때문에 발목까지 전면적으로 피가 흐른다.
인도의 사람들은 나를 안타깝게, 아니 무연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완전 쪽 팔렸다.
그러나 어쩌랴...나는 그대로 학교에 출근해야 한다.
비는 내리고 길은 미끄럽고 자꾸만 안경알엔 빗물이 맺히고 무릎에서는 피가 흐르고
그냥 거기서 주저 앉아 있을 수도 없고...
나는 다시 달리고 또 달린다.
나는 인왕 조기 축구회 40대 주전 라이트 윙이다.
학교와서 양호 샘한테 치료를 받는데, 빨간 머큐롬을 바르는 순간 따끔 따끔한게 그게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나는 메조키스트가 확실하다.
누가 채찍으로 날 좀 때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