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그럴 때가 있다.
술을 적당히 마시고 난 후 오히려 의식이 명료해 지는 느낌이 밀려 오는 순간 말이다.
지난 토요일 저녁 식사 때가 그랬다.
중국 요리를 먹으며 반주로 소주 1병을 마셨는데, 갑자기 세상이 환해지며
온 천지가 무릉도원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그럴 때 나는 갑자기 바다가 미친 듯이 보고 싶어진다.
하여 나는 자전거를 타고 바다, 아니 한강 시민공원으로 달렸다.
지난 번 음주 라이딩 때 넘어진 전력이 있는지라, 천천히 여유있게 자전거를 몰았다.
해 어스름이 지고 있는 시간인데도 여전히 세상은 대낮처럼 환하다.
햇살을 받으면 분비되는 세로토닌 호르몬은 이미 과잉 분비중이었고, 나는 그 만큼 나른하게 행복했다.
이럴 때 시간은 가역적으로 흘러간다.
과거로 흘러가기도 하고 점프 업해서 미래의 어느 순간으로 흐르기도 한다.
술과 바람과 햇살이 만나는 자전거위의 시간은 그래서 몽환적이다.
꿈을 꾸듯 시간은 흘러가고 자전거도 흘러간다.
어느 새 한강시민 공원이다.
가족, 연인, 친구... 이 곳에 오는 사람들은 다들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는 듯 양탄자에 올라 타 맥주 한 캔씩 마시면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나는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다.
이런 순간 대체로 나는 착한 생각들을 하면서 스스로 감동받기도 하는 등 유치해지고 센치해진다.
내겐 정화의 순간이다.
세상은 이미 어두워졌지만 나의 내면은 더욱 환해진다.
술 마시다 얼추 취하면 남자들의 맞짱 본능은 못 말린다.
지난 일요일 조기 축구회에서도 그랬다.
운동 후 낮 술은 언제나 시끌법석한 법인데, 누군가 족구 이야기를 꺼내면서부터
그 놈의 맞짱 본능은 거진 전쟁 모드로 급변했다.
군대에서 족구 한번 안해 본 사람이 없겠지만,
그게 조기 축구회 멤버들에겐 거의 신화적 수준으로 자신을 격상시키고, 다른 사람은 절대 인정 안하고...
어쩌구 저저구...
그럼 다음은 안 봐도 비디오다.
바로 구기터널 지나서 북한산 끝 자락 족구장이 있는 오리집으로 향했다.
음주 족구, 게임의 법칙은 이렇다.
일단 그 이전까지 마신 술은 원천 무시하고 새롭게 소주 1병씩을 기본으로 마시고 시합한다.
심판도 마시고, 심판이 마셨기 때문에 심판 마음대로 심판한다.
한 쪽에서 작전타임을 걸거나 선수 교체를 하면 그 때마다 에브리 바디 한 잔씩 마신다.
(그러니까 누군가 한 잔 마시고 싶으면 작전 타임 걸고 건배를 외치는 거다.)
숲 속이므로 상의 탈의하고 맨발로 한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족구 시합은 역시 개발이 난무하고 가끔씩 묘기도 속출한다.
낮술과 숲과 족구공이 버무려진 이 순간도 역시 시간은 자기 마음대로 흘러간다.
고무 줄 심판에 항의하다 벌주를 마시고 그래서 행복해 하고, 목소리만 높았지 어차피 승부엔 관심도 없다.
대한민국엔 음주 족구가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