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으니 넘어져 까진 부분에 딱지가 지지도 않는다.
지난 주 학교 체육대회 때 달리기 하다 넘어진 여학생의 종아리엔 하루만에
선홍빛 딱지가 아주 예쁘게 자리하건만, 내 무릎의 상처엔 1주일이 넘도록 딱지조차 생기지 않는다.
그 상태로 계속 축구를 해서일까...진무른 듯한 상태가 진행중이다.
나이 들어 상처가 생기면 잘 아물지 않는 법이다.
그건 육체 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현충일날 땡볕에 30분 짜리 숏 게임 3경기를 치르고 나니 폭탄주가 그렇게 쫙쫙 감길 수가 없었다.
온 세상에 태양은 작렬하고 더불어 내 가슴도 폭탄주에 불이 붙어 버린 것이다.
술로 가슴이 뜨거워 지면 술자리 논쟁도 가열차진다.
당연히 합리적 논쟁은 사라지고 목소리 데시빌 높은 놈이 술 판에 갑이 된다.
그게 누구인고 하면 대부분 학창시절 축구부를 했던 친구들이다.
비록 프로까지 가는 건 접었지만 자기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고
우리 같은 순수 아마추어들에게 꼭 축구 훈수를 해 줘야만 직성이 풀린다.
처음에야 존중해 주지만 그게 3절까지 반복되면, 나름 축구 철학 – 나의 축구 철학은 리듬과 창조이다 -
을 가지고 있는 나는 상처를 받게 되고 설전을 벌이게 되었다.
하여 나는 녀석들과 맞짱 정면 대결을 하기로 제안하였다.
그러니까 아침운둥을 열씨미 하는 순수 아마추어 멤버와
일요일에만 나오는 선수 생활 출신의 멤버끼리 한 판 붙기로 하였다.
물론 타이틀은 낮 술 몽땅 책임지기 이다.
제안을 받은 선수 출신 회원들은 0.5초만에 오케이바리를 외쳤고
살다보니 가소롭고 재미있는 별별 이벤트가 다 생기네 표정을 지었다.
물론 우리 쪽 회원들 표정은 비장함이 대신하였다.
몇몇 후배 회원은 즉각 철회 성명을 발표함이 어떠냐고 은밀히 속삭이기도 했지만
난 아침 운동 단장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해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6월 23일로 시합 날짜를 못 박고 나자 묘한 흥분감이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기술은 우리가 부족할지 모르지만 체력과 정신력은 우리가 낫다.
체력을 바탕으로 한 패싱 축구와 결정적 순간에 터지는 나의 리듬 드리블은
그들을 한 순간에 무너뜨릴 것이다. 그리고 허를 찌르는 슈팅 마무리....
이런 걸 상상하니 내 축구 인생에 새로운 이정표를 쓰는 순간이 다가 온다는
짜릿한 희열감이 밀려온다.
이제 무릎의 상처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