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화두처럼 머리 속을 떠나지 않은 것이 ‘베이비 부머’와 ‘은퇴’라는 단어들이다.
관련된 서적들을 읽은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당장 내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기에 그만큼 와 닿았던 것 같다.
참고로 55년생 부터 63년생 까지라고 규정하는 베이비 부머들은 이미 나이가 50대에 들어섰고 이미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코 앞에 둔 세대들이다.
과거로부터 모든 사람들이 거치는 생로병사이건만 지금의 베이비 부머들이 유독 새삼스러운 이유는 무엇
일까? 말 그대로 전후 베이비 붐 시대에 태어났기에 절대적으로 그 숫자가 많고, 1인당 국민소득이 100불도
안되는 농경시대에 태어나서 소득 2만불이 넘는 IT시대를 만든시대의 주역이기도 하며, 파란만장한 한국의
현대사에서 이제는 잊혀진 많은 사건과 개념의 주인공들인 까닭이다.
좀 더 이야기를 해보면 그 화려한 세대들이 무대에서 퇴장을 하려는데 아무런 개런티도 준비되어 있지 않고
심지어는 늘어난 수명과 달라진 환경들이 그들의 미래를 더 우울하게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사회학과의 송호근 교수는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 라는 최근의 저서에서 베이비 부머들의 경험
과 기억의 공통성에 관해 이야기 한다. 그들이 시대의 브릿지로 처절한 자기 희생의 결과물임을 지적하지만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농업시대에 살면서 권위주의의 아버지를 보고 자랐지만 IT시대에서 그 권위주의는 그 의미를 상실했고, 젊은
날 화염병과 최루가스 속에서 찾고자 했던 이상과 정의는 이미 그 흔적조차 아득하다. 직장생활을 통해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내 집 마련과 자녀교육에 끝없이 투자를 했음에도 그 결과는 간데 없고 황혼 이혼이 어렵게
지켜온 가정마저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이미 사회가 퇴장을 종용하고 있지만 갈 곳은 없다.
‘우물쭈물하다 이럴 줄 알았다’는 삼성증권 은퇴 연구소의 김진영 소장이 쓴 책인데 그는 인생을 30년씩 3막
으로 나누고 은퇴 이후인 3막의 생을 실수 없이 잘 지내기 위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사실 90년대까지만 해도 은퇴라는 단어가 사회적으로 그리 무겁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일단의 퇴직금과 집 한
채가 이자 생활과 집안의 대소사를 어느 정도 해결해 줄 수 있었기에 당시의 베이비 부머들은 그저 국민연금
잘 내고 한 두가지 연금성 저축에 가입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노후도 해결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IMF와 세계적인 금융위기들을 거치면서 세상이 바뀌어 버렸다. 저금리와 체감 물가 그리고 세금 폭탄
들은 보유한 현금을 더 쪼그라들게 만들고, 부동산의 하락과 초대받지 않은 각종 병마가 노년을 더 위태롭게
만든다.
금융회사에서 제시하는 많은 은퇴설계가 대부분 제정설계에 그친 반면 김진영 소장은 보다 포괄적이고 구체
적으로 제시한다. 우선 은퇴직후에 조급함 때문에 빠지기 쉬운 각종 함정과 대책에 대해 설명하고 교육을
통해 여분의 삶이 아닌 새로운 인생을 3막에서 시작 할 것을 권유한다.
인생 3막, 혹은 새로운 인생이 쉽지 않은 것은 우리가 주변의 노인들을 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체력과
정신력에서 젊은이들과 비교가 안되고 빠른 사회적 흐름에 적응하는 것도 만만찮다. 대그룹의 부회장이 호텔
바에서 웨이터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80대의 나이에 보험 영업으로 연봉이 3,4억이라는 어른도 게시지만
일반론이 될 수는 없다. 과연 그들만의 블루 오션은 없는 것일까?
‘은퇴대국의 빈곤보고서’는 한양대의 일본학과 전영수 교수가 축복받은 세대라 일컫는 일본의 단카이 세대
들의 현주소를 날카롭게 파헤친 분석서이다. 65세 이상의 인구가 25%를 넘어서고 그들이 금융자산의 65%를
보유하고 있으며 3층 연금제도로 보장받은 노후를 즐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들의 실상은 현미경을 들이
대고보면 상황이 180도로 바뀐다.
고금리의 연금지출로 JAL을 비롯한 유수의 대기업들이 문을 닫았고, 경제불황으로 각종 혜택의 감소가 오면서
일본의 3층 연금구조는 붕괴되었다. 소수의 축복받은 노인들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노인들이 빈곤에 허덕이는
가운데 노소혹은 노노갈등으로 나라가 홍역을 앓고 있다.
그래서 제시되고 있는 것이 평생고용, 혹은 평생 노동이라고 한다. 우려하는 바와 달리 젊은 층과의 마찰이
크지 않고 전문 지식을 더 싸게 활용 할 수 있으며 노동 시간의 단축으로 인간적인 삶의 기회가 더 주어지기
때문이란다.
일본과 우리의 입장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현재 우리도 고령화 사회로 치닫고 있고 그에 대한 마땅한 대안이
없다면 고령화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수 있다.
인생 2막의 끝자락에 와 있는 베이비 부머들에게 은퇴 설계는 목전의 일이고 어느 일보다 우선 순위에 올려
놓아야 할 일이다. 더하고 덜함은 있었겠지만 궁핍함을 극복하기 위해 출세 혹은 돈벌이가 우선이었던 베이비
부머들에게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나, 고개 들고 주변을 돌아볼 만한 여유가 없었슴은
보편적으로 진실이다.
3막을 제대로 보내기 위해 우선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건강이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야 한다. 병원에서 3막을 보내고픈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30년을 버틸 수 있는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이 2막에서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준비다.
육체적인 건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신적인 건강이다. 은퇴 이후에 빠지는 함정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중의
하나는 그 사람이 은퇴 이전에 갖고 있던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자신의 과거 사회적 지위에 연연
한다면 진정한 3막을 시작할 수 없다. 상장회사의 부회장을 하던 사람이 호텔 바에서 웨이터를 하는 것 이상의
변화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변화에 포함시켜야 할 또 다른 것은 돈에 대한 태도일 것이다. 물론 노년에 돈은 더 필요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목적으로 하거나 돈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못한다면 것은 진정한 3막을 산다고 보기 어렵다. 자녀교육, 내집
마련, 부모봉양 이런 의무에서 한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3막이 가진 강점이다. 앞서처럼 웨이터를 할 수도
있고 보조 교사, 간호사, 자기만의 농장을 할 수도 있다. 2막의 화려함에 비해 다소 빛이 안날 수도 있지만 인생
후반에 새롭게 시작한 직업이 반드시 화려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은퇴시장이라는 말이 이제 처음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은퇴 이후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을 해 보았을 것이다. 다행히 모아놓은 돈이 많거나 자신이 하는 일과 연관하여 이미 은퇴한
이후를 준비한 사람이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다수의 베이비부머 들에게 은퇴 이후는 두려움 그 자체 일 수
밖에 없다.
나는 앞으로 이 은퇴시장에 몰입해보려고 한다. 그것이 내 3막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 자신을 포함한 베이비
부머들의 3막에 대한 어떤 답안을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이다.
새로운 블루 오션을 찾아내거나, 평생 고용의 시장에서 편안한 노후를 맞이하거나 어쨌든 베이비 부머들이 두
렵지 않은 은퇴를 맞는 것이 그들이 숙제처럼 안고 있는 세대간의 브릿지를 완성시키는 길이기도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