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7일 토요일 우신 등산반 초유의 캠핑산행이다. 전날에 비바람 눈보라가 장난이 아니었지만 5명의 참가자는
(인호, 구식, 수철, 7회 후배 이 상준, 그리고 나) 약속장소인 도봉구 창동역에 7시에 만나 내 이스타나로
이동하였다. 포천에 들러 장을보고 아침식사를 하고는 일동에 차를 주차하고 버스로 광덕고개에
하차한 것은 11시 10분경.
11시 30분 백운산 매표소를 통과하여 백운산 도마치봉 국망봉 개이빨산 민둥산 강씨봉 청계산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의 한 구간을 남으로 걸어내리기 시작했다. 어제와는 달리 안온한 날씨지만
산에는 어제 내린 눈이 제법 (깊은곳은 50센티 가량이나) 쌓여 있었고 서풍이 좀 있어 보온에
신경써야 했다.
무난한 능선길을 1 시간여만에 오르니 백운산이다. 한쌍의 남녀가 바람부는 산정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는 게 좀 상식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는데, 그 남자는 여기 저기 산봉우리 이름을 대며
아는척을 했는데 그로부터 도마치봉 바로 아래에 샘이있다는 쓸만한 정보를 하나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중식을하고 물을 채워가면 눈도 있겠다 중간에 적당한 곳에서 야영을 해도 될것이다'
애초에 잡은 도성고개까지는 거리가 만만치가 않으므로 걱정이 되던 참이었다.
도마치봉까지 한 시간. 그곳에서 10분가니 예쁜 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점심에 라면 + 햇반은 물론,
돼지고기와 햄을 섞어 볶아 소주까지... 계획산행을 추구하는 나는 이것저것 못마땅한 게 있지만 어차피
목적지까지 가기는 글렀고, 우신의 첫 캠핑산행 (그것도 동계에), 그것 하나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자위한다. 2시 40분쯤 샘터를 출발..
4시쯤 되자 하늘에 구름이끼니 이내 어둠이 올 것 같다. 겨울철엔 5시까지는 야영지를 찾아야 한다.
융통성 있게 새로 야영목표지를 국망봉까지로 수정했지만 그 곳까지 가는 것도 여유롭지만도 않다.
서풍이 있는 데다가, 산세가 바람을 그을 수 있는 동편으로 쉽사리 텐트사이트를 내어주지 않는다.
5시쯤에 국망봉 2Km쯤 못미쳐 있는 헬기장에 도달했는데 능선상이지만 다행히 바람이 없다.
이곳에서 배낭을 풀자.
텐트 2동을 치고 식사준비에 들어갔고, 후배 상준이가 평소 실력을 발휘여 차린 눈밭 위의 식탁은
휘황찬란하다. 눈 쌓인 산 능선에 편안히 주저앉아 맛진 밥과 달고 단 소주를
마시며 우리는 그렇게 우리만의 행복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소주 댓병 두개가 애초부터 모자란 양이란 걸 잘 알고있던 수철이는 술 5홉 정도를 .꼬불쳐두었다가는
인터넷 어디에선가 선수들이 소주에 맹물을 1대 1로 섞어 먹어도 좋았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물을 섞는다.
우리는 모두들 속으로 '설마'하면서도 우리의 이 행복한 시간을 늘이기 위해 군소리 없이 수철이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고, 그 덕에 (술맛이야 어떻든) 텐트 안으로 옮겨진 우리의 2차 자리는 10시까지
지속될 수 있었다.
다음날 (11/28, 일요일) 아침은 날씨가 더욱 좋았다. 인호와 나는 첫 동계야영을 무리없이 할 수 있게
해 준 날씨에 감사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짐을 꾸려 출발한 시간은 8시 40분.
2 Km의 거리를 무려 두 시간이나 걸려 국망봉에 올랐다.
국망봉 가는 길의 눈꽃에 취해
시간은 괘념치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바람 없는 안온한 날씨에 설경을 맘껏 누리면서 나는
같이 왔더라면 이런 환상적인 Scene을 사진에 담기 위해 미친듯이 셔터를 눌러대고 있을
우리집사람이 이곳에 없음을 아쉬워했다.
국망봉에 오르니 열 번도 넘게 국망봉 예찬론을 떠벌여 온 인호의 말이 하나도 무색치 않을 만큼
그 사방으로 트인 조망과 눈꽃과 때마침의 운해에 우리도 국망봉 예찬론자가 되고 만다.
친구들이 웃옷을 훌렁 벗어 던지고 눈으로 마사지를 하면서 괴상스레 흥분을 분출한다.
개이빨산을 거쳐 민등산 도달하니 이곳에서 중식을 하잔다.
아침식사 후 이제 5Km 왔는데 벌써 밥을 먹자고라? 이러다간 강씨봉도 포기해야할 걸?
아니나 다를까, 이 후 2.55Km에 있는 도성 고개에서 하산하기로 이미 내정이 되어있는 듯...
나는 아무 반대도 하지 않았다. 왜냐고?
지금까지와는 달리 무게 나가는 배낭을 짊어지고 그 위대한 동계캠핑을 했으면 됐지, 뭘 더 바래!
도성고개에서 계곡물이 있는 곳까지는 서쪽으로 난 가파는 내림길인데 눈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가 없다. 저 산능은 여전히 흰색으로 쌓여있는데..
국망봉 개이빨산 민둥산이 연이어진 저 멀리의 산맥을 올려다보며, "우리가 거길 다 걸었단 말야?
저게 히말라야지 무슨 국망봉이냐?" 면서 구식이가 스스로 놀라 말한다. 우리가 걸어온 능선을
멀리 배경으로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군부대가 많은 이곳에 면회 온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로 명맥을 유지할 것이라는 웃기게 생긴
연곡다방 앞 버스 정류소에서 버스를 가다리며 우선 막걸리 한 잔씩을 하였다.
일동까지 버스를 타고 나와 이스타나에 옮겨타고 일동의 한 유황온천으로 가서는 몸을 새것으로 만든
다음, 상쾌한 기분으로 된장찌게를 기가 막히게 잘한다는 보리밥집으로 갔다. 그곳에서 우리는 이것저것
맛진 안주를 시켜 동동주에 막걸리를 마시며 이번 산행을 둘러보고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는
또 한차례의 즐거움에 빠진다. 우리는 입을 모아 후배 상준이를 칭찬하기도 헀다. 나는 고등학교
과학선생이라는 상준이와는 첫만남이었는데 후배의 듬직하고 우직스러움에 반했다.
우리는 어젯밤 텐트속에서 맹물소주로 2차를 하며 논했던 '캠핑을 위주로 한 특별산행팀을
구성하여 한북정맥을 완주해보자는 안과 그 팀의 책임을 내가 맡기로 하는 안에 합의하고
나는 흔쾌히 그 책임을 수락했다. 내가 초대 등산반 반장을 하면서 목표했던
'동계캠핑을 하시라도 즐길만한 산꾼들이 늘 포진하는 진정한 산악회'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임을 예견할 수 있는 대목인 것이다.
8시 쯤, "한 통만 더, 한 통만 더 마시자!" 를 연방으로 외치는 구식이를 달래고 얼러 끌어내어
이스타나에 태우고 1월의 한북정맥 첫 산행때 다시 올 일동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