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근식아 임마. 산에 다닌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 나는 평생 이렇게 살꺼니까. 아무도 부럽지 않다."
술과 자연과 우정에 취한 구식이가 구식이처럼 말을 한다. "나도 그래"
주동이, 수철이, 제환이, 구식이, 후배 상준이 그리고 나 이렇게 여섯 이는 오늘하루 일곱 시간 16km의
산행의 피곤을 잊은 채 강원도 철원의 산중에 친 텐트 안에서 벌써 두 시간이
넘도록 소주를 마시고 있다.
요즘은 노래방이란 놈 때문에 노래 가사를 외우는 게 힘들어 졌다고 하면서도 수철이와 제환이, 주동이는 메들리 급이고,
선배들의 성화에 두 곡을 부른 상준이. 짜슥, 노래를 못한다고 빼더니, 한노래 하네..
수철이 제환이, 이 두 친구들은 필시 여러 차례 몰려다니며 노래로 마음을 맞추어 보았으리라.
노래 가사에 특히 자신 없는 나는 구식이의 push를 들은체만체 넘기다가는
나중에 술김으로 '에라, '물망초'를 한 번 불러보자.
아슬아슬하게나마 가사를 틀리지 않고 끝까지 불러 나가면서 나 스스로 신기해했다.
"근데 저 xx끼 박인호는 왜 저기서 잠만 자고 있는 거야?"
주동이는 옆 텐트에서 자고있는 인호에게 아까부터 큰소리로 시비를 건다.
캠핑을 처음 같이 해보며 이런 면 저런 면 새롭게 알게되는 친구의 개성에 더 큰 친근감을 느낀다.
내가 "야 이친구야, 침낭까지 사주신 회장님을 어쩌자고 그렇게 갈구냐? 잘 보여야지..
혹시 아냐? 70리터 짜리 배낭을 또 사주실지?..." 하고 말했더니,
'아차! 그렇지!'
"나야 뭐 늘 박회장님의 은덕으로 사는 놈이고, 박회장님을 향한 나의 충성심은 일편단심이란 건
온 천하가 다 아는 바이지. 그렇지요, 박회장님?"
이내 아양으로 바꾸어 말하는 바람에 웃음보가 터졌고,
잠에서 잠시 깨었던 인호가 뭐라고 응대를 했는데 그 소리에 친구들은 더 큰소리로 웃어대었다.
인호가 뭐라고 그랬기에..
맘에 안 들면 사줬던 침낭을 도로 빼앗겠다고 그랬나?
지난 번 국망봉 야영 때처럼 수철이는 물과 술을 일대일로, 일대이로 섞어가며 줄어만 가는 술을
양으로만 불려나가더니 짊어지고 온 4병의 댓병 술이 바닥나자 이젠 맹물을 따라 돌린다
"야, 이런 선계에선 물도 술이라고 생각하고 마시면 그게 바로 술인 것이다!"
자정 무렵, 음력 섣달 이십 칠일 밤하늘을 수놓은 오리온, 마차부, 큰개자리, 작은개자리, 황소자리, 왕관자리, 칠공주...
뚜렷한 별자리들을 올려다보면서 쉬를 하는 동안 철원의 싸늘한 밤 한기는 우리의 취기를 밀어내었고,
그 한기에 밀려 우리는 서둘러 텐트 속으로, 침낭속으로 기어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 전날 밤 (2005년 2월 4일 금요일)
여덟시 30분 쯤, 창동역에는 한북정맥종주 첫구간산행 팀멤버 전원이 모였다.
주동이, 수철이, 제환이, 영돈이, 인호와 인호의 지인인 김동희씨, 후배 이상준과 백영기,
그리고 와이프와 같이 온 구식이. 안으로부터의 지지를 과시하는 구식이가 '뽐'이 난다.
같이 갈 수 없지만 응원하겠다고 일부러 나온 영규 부부.. 소주 안주하라면서 뭘 전하는데
과메기 풀코스 세트다.
후배들은 살 것들을 메모하여 장을 봐왔고, 9시 20분 경,
우리는 상준이와 나의 이스타나 두 대에 분승하여 창동역을 출발했다.
의정부, 포천, 일동, 이동을 거쳐 광덕현에 도착하니 벌써 자정이다. 어차피 차 한 대는
하산 기점인 그곳에 두고 가야 할 판이니 민박이 가능한 이곳에서 자고 내일 아침 조금 일찍 출발하자.
방 세 개를 얻어 짐을 풀었다.
그냥 잘 리 없는 친구들..
영규가 준비해 준 과메기에 소주 한 잔은 당연히 하고 자야지.
그렇게 시작한 한잔이 한시 반에야 정리가 되었다.
산행 첫날 - 2005. 2월 5일 토요일
아침 기상이 조금 늦었지만 순식간에 취사준비가 되었고, 친구들은 식욕이 있을 리 없지만
장도를 앞둔 긴장감에 알아서들 배를 채운다.
7시 30분에 광덕현을 출발하여 사창리까지 75번 국도로, 그 이후 56번 지방도를 타고 다목리,
명월리, 늑동리를 거쳐 수피령에 8시 10분에 도착.
'수피령 780M' 라고 새겨진 돌탑이 서있다. 안내 자료 어디에선가 수피령의 고도를 740미터로 보았는데
이 돌탑은 780미터로 새겨져 있다. 지도를 정독해 보니 740미터가 맞는 것 같다.
8:20 돌탑을 배경으로 출발 기념 사진을 찍고 드디어 입산.
서쪽으로 진행되는 길은 북사면이어서 묵은 눈이 녹지 않은 채 굳어 있다.
9:20, 뽀드득 거리며 서쪽으로 눈을 밟아 걸어 한시간만에 도착한 안부.
서북쪽 지척에 복계산 (1,057M)의 전모가 눈에 찬다.
이곳에서 복계산쪽 길을 버리고 정남으로 방향을 틀어 나가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선두에 서서 길을 잡아 나가야겠다.
능선 북쪽너머의 그늘진 나무마다 맺힌 상고대가 볼만하다. 동남쪽에 떠오른 햇빛을 등지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흰색의 눈꽃을 이고 서있는 나무들을 배경으로 친구들을 사진기에 담았다.
이런 풍치에 환호할 bmx 생각이 절로 났다.
11:20, 남쪽으로 따스한 햇볕을 고스란히 받는 쉬어가기에 안성마춤인 한 봉에서 배낭을 벗었다.
봄날처럼 따뜻하다.
'겨울 산? 해 봤더니 별것 아니더군!'
큰일 날 소리다.
지난 11월 말, 우신등산반의 첫캠핑산행 때처럼 기후가 최상으로 돕고있을 뿐이다.
눈이 많은 이 지방은 폭설도 잦은 곳인데.. 혹한에 찬바람이 불면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지지난 주 태백산에 다녀 온 사람의 말에 의하면 당시 체감온도가 마이너스 50도 였다나??
우리도 그런 악천후를 맞을 수도 있다. 우리 친구들 중에 그런 상황에
대처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하루쯤 몸으로 때우면 되지 뭐'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쉰다.
산에서 동사한 이들의 거의 대부분이 자만심으로 가득 찬 풋나기 산꾼들이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나도 그렇게 해서 죽은 사람 하나 알고 있다..
세 시간을 걸은 친구들은 완전히 워밍업이 되어 기운과 기분이 최상까지 오른 듯하다..
오늘 처음으로 대형 배낭을 지게 된 친구들이 특히 그렇다.
평상시의 당일산행용 배낭으로는 도저히 구룹 캠핑이 안 된다는 걸 납득시키는데 시간이 꽤나 필요했다.
'강근식의 강권으로 장만을 하긴 해야할텐데 내가 도대체 이걸 짊어지고 걸을 수 있을까?'
그런데 오늘 해보니 되더란 말이지.. 아니, 별것 아니더란 말이지..
구식이는 85리터 짜리 새배낭을 지고 980봉까지 오르는 동안 배낭이 자기 몸에 안 맞는 것같다고
하더니만 이쯤 오고 나서는 배낭이 등에 붙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941봉에서 쉬는 동안 독도를 통해 위치파악을 완전히 하였다.
오는 동안 980봉, 칼바위, 선바위.. 등을 구분하며 정확히 알기는 어려웠다.
이 곳에서 서남으로 이어져 약 2km 앞에 있는 봉이 950m봉,
거기서 동남으로 이어져 높게 솟은 봉은 1,014봉, 그 뒤로 두개의 봉우리
를 넘어 우뚝 선 봉이 복계산..
오늘 우리의 목적지인 하오현은 그 뒤에 동서로 패어진 골 중간쯤엔 있겠지.
여기서부터는 주동이가 선두에 서기 시작했다.
941m 봉에서 40여분만에 도달한 봉이 950m봉. (12:30)
복계산, 회목봉, 상해봉, 광덕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라면에 햇반을 넣고 삶아 밑반찬으로 중식을 해결하고 출발을 할 때까지
딱 한 시간이 걸렸다. 성적이 좋다. (1:30 출발)
1,014 봉까지 가는 사이에 산냄새가 물씬 나는 우리 또래의 한 남자를 만났다.
광덕현에서 아침 7시에 출발했다한다. "대단하시네요" 했더니
"저희는 가볍게 하고 다니니까요" 한다. 겸손한 응답이다.
이 사람은 우리가 하오현에 도착할 즈음인 서너 시간 후에 우리가 아침에 출발했던 수피령에 도착할 것이다.
2:20. 50분만에 도착한 1,014 봉도 사방으로 조망이 훌륭하다. 이곳에서 정북으로 복계산이 보이고
그 앞으로 작지만 풍치 있는 바위 봉우리 (980m봉)가 보인다.
남으로는 복주산이 이제 지척으로 다가와 있다.
후배 백용기가 힘이 달려한다. 그럴 만도 하지. 대형배낭이란 걸 처음 지는 놈에게
80리터 배낭에 동계침낭과 7.5kg 이나 되는 5인용 동계텐트, 물 4리터를 지우게 했으니...
이 배낭은 내가 백두대간을 할 때 썼던 것인데 내 몸에는 착 달라붙는 것이지만
용기에게는 편해지기까지 좀 더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용기, 네가 오늘 큰 일 한다. 네가 아니면 이 텐트를 가져 올 생각을 안했을 것이다.'
집에서 내 것과는 별개로 용기의 짐을 꾸려왔다. 배낭에 용기가 쓸 침낭과
매트리스 외에 공동으로 쓸 텐트를 잡아넣어 지게 했다.
아주 꾼이 아니라면.( 아이스팩터 40리터에 짱짱하게 꾸려온 주동이처럼..)
겨울철 캠핑산행을 하려면 60리터 이상의 큰 배낭이 필요하다. 아니, 그보다 더 크면 더 편하다는 걸
겨울철 캠핑을 해 본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알게된다. 인호 것은 100리터 짜리란다.
'10명이나 되는 대규모 인원이 일박이일의 겨울철 캠핑산행을 가는데 공동으로 쓸 그 장비 와 물, 술, 등을
어떻게 운반을 할 것인가?' 나의 고민중의 하나였다.
어차피 앞으로 한북정맥을 완주하기로 한 구식이와 제환에게 큰 배낭을 강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듬직한 상준이는 역시 자기답게 인호와 똑같은 100리터 배낭을 구해 왔고,
수철이는 이미 전에 70리터 짜리를 구입했다.
그 나머지 부분을 용기가 해결해 준 셈이다.
그래, 그렇게들 차려 메니 정말 '꾼' 같잖아..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큰 배낭을 지고 왔더라도 공동장비나 식량을 나누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100리터 짜리를 지고왔다고 하더라도 상준이나 인호에게 이렇게 배낭을 다 채워지게 해서는 안될 일이다.
언제나 무던하게 말없이 배낭을 채워지는 그들이 한편으론 안타깝기도하고 한편으로는
의연한 산꾼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들에게 자랑스런 우정을 느끼기도 한다.
짧게 가파른 구간 두어 군데를 통과하여 복주산 정상에 오른 시간은 3:20.
'복'자만 남기고 동강난 돌탑을 인호가 들고 전체 사진을 박았다.
오후 4:20. 복주산 앞의 1152m 봉과 1140m 봉을 끼고 돌아 내려섰다가 한 시간 만에 오른 1020m 봉도
전망이 좋다. 이 곳에서 약 20분만 가파르게 내려가면 하오현이다.
왼쪽 무릎이 기분 나쁠랑 말랑 하려 한다는 주동이 말에 걱정이 되었다.
산에 다니고자하는 사람이 무릎이니 인대니 이상이 있다고 하면 왜그리 안타까운지...
차라리 등산의 맛을 알지나 말일이지..
허리 디스크 환자인 내가 이런 배낭을 지고 걸을 수 있다는 게 놀라운 일이다. 오늘은 끄덕 없었는데..
내일 아침에 제대로 일어날지 나도 장담은 못해...
5:00 드디어 16km 의 계획된 구간을 마치고 하오현에 도달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 대목에서 서로 서로 악수를 나눈다.
텐트를 설치하고, 세 개의 휘발유 버너에 점화하고, 음식조리에 착수하고, 앉아 식사할 자리를
마련하는 일련의 일들이 훈련된 조직처럼 일사분란하게 진행된다.
한마음이 되어 알아서 생각하고 움직인다. 이게 성숙한 우신인상이지.
잘하면 평생을 같이 하는 정말 삼삼한 산악회가 되겠어..
우신인으로 묶이는 그 '한마음'이 큰 배경임은 물론이다.
밥이 뜸이 드는 동안 삽겹살을 구워 찬 소주를 돌려 마신다.
땀을 흘리고 나서 마시는 술 맛은 그만이지.
내 겸험상 캠핑을 할 때는 예외 없이 술이 모자란다. 10홉 짜리 댓병으로
네 병인가 다섯 병인가를 나누어 지고 온 오늘밤도 예외는 아닐껄?
식사를 마치고 몇 몇은 두 개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벌써 코를 골기 시작했고, 몇 몇은 더 큰 텐트에 들어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술과 자연과 우정에 취해 들어가고 있었다.
자정이 넘어 침낭 안에 자리 잡아 누운 나는 힘주어 등을 바닥에 들이밀어 밀착시킨다.
허리디스크 환자인 내가 날마다 자면서 허리를 다스리는 방법이다.
오늘밤은 따뜻한 온돌바닥이 아닌데..
오늘은 큰 배낭을 지고 16km 나 걸었는데..
내일 이 허리 때문에 못 일어난다면?
나는 오늘 아침 눈을 뜬 이 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의 시간을 차분히 더듬어 나가다가 잠에 떨어졌다.
산행 2 일째 - 2005. 2.6. 일요일
알람시각을 5시에 맞추어둔 핸드폰이 진동한다.
규명이가 수원 집에서 출발했을까? 이곳이 초행길일텐데 8:30 까지 하오터널에 오려면
지금쯤은 이미 일어나 움직이고 있어야 할텐데.. 전화를 해 볼까?
아니야. 전화를 해도 한 시간쯤 지나서 하자.
포기하고 잠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더 높으니까...
나는 침낭 속에 누운 채 오늘 일정을 머리 속으로 그려보았다.
6시쯤에 인호나 상준이랑 물 뜨러 하오터널에 다녀오면 7시.
식사를 마친 8시에 규명이를 데리러 다시 내려갔다가 올라와서 9시에 회목봉을 향해 출발..
10시 30분에 회목봉 도착. 11시 10분 경 회목현.. 11시 40분 경 상해봉/광덕산 갈림길..
12시 30분 광덕산 정상.. 그 쯤에서 점심을 해 먹고..
하산 하는 데 한 시간.. 하산하면 2시 반 쯤 되겠지.. 나와 상준이는 일행보다 조금 서둘러 하산해야지..
상준이 차를 타고 (규명이가 왔을 경우, 하오터널까지 갔다가 규명이를 내려
주고 우리는) 수피령까지 내 차를 가지러 간다.
광덕고개로 되돌아 와서는 그곳에 기다리는 친구들을 태우고 일동으로 가서 샤워하고 저녁 먹고...
차를 가지고 이천까지 운전해야 하는 나는 술은 딱 한 잔만 하자...
5시 40분.. 규명이 전화다..
"나, 하오터널 앞이다"
"어! 벌써 왔어? 정말로 온거냐 농담이냐?"
"초행길이라 서둘렀지"
"이 친구, 대단하네. 전화도 없이 한 방에 찾아오네. 깜깜한 밤에 헤매지 않았냐?"
"네가 알켜 준 대로 왔더니 되더라"
"야~ 이 놈이 미친놈이구나. 거기 기다리고 있어. 바로 내려 갈께"
전화를 끊고, "야~ 정규명이 똘똘허네~" 하고 감탄했더니,
잠이 깨어 누워있던 주동이가, "정규명이, 똘똘하지~" 한다.
인호와 함께 헤드랜턴을 차고 20여분 내려갔다.
규명이가 출발일에 시간을 마추는 게 무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참여하겠다고 하는 것을
딱 잘랐었다. 그러면서 정말로 산행을 하고 싶다면 '야영 준비니 무거운 짐이니 걱정할 것 없이
하오현으로 붙어 당일산행으로 같이 두번째 구간이나 하자'고 하면서
차가 닿는 하오터널까지 오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전화로 서로 연락하기로 정리했던 것이다.
내가 아무리 바빴어도 사전 답사를 했으니 망정이지...
일이 바빠서 답사하려던 것을 두 번을 미루다가 지난 목요일 (출발 전날) 수철이와 함께
금요일 밤의 숙소와, 출발 기점 주변, 물을 구하고 야영할 곳인 하오현을 둘러보았다..
그때 차가 닿는 하오터널에서 하오현까지는 편한 길로 30분 안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두었던 것이다.
캠핑산행은 물을 구하는 문제가 대단히 중요하다. 이번 구간에서는 하오터널에 와야만
물을 구할 수 있다. 야영지로 정한 하오현에서 하오터널까지는 왕복 1시간 거리다.
물은 대부분 말라있고 물 흐르는 곳이 있는 하오터널 부근의 계곡에 와야만 구할 수 있다.
두껍게 언 얼음을 깰 픽켈을 별도로 준비해 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이젠 규명이가 왔고 오는 김에 물을 사오게 했으니 물 구하는 문제도 해결 된 셈이다.
7:15. 하오현에 되돌아 올라왔다. 취사준비와 텐트 해체와 자리 정리등이 어제 저녁에
그랬던 것처럼 일사분란하게 진행되고..
이것저것 잡탕으로 섞어 상준이가 만들어낸 찌게 맛이 일품이라고 감탄들을 하며
아침식사를 하고 배낭을 꾸려 출발. 9:20.
10:50. 회목봉 도착,
11:25. 회목현을 통과, 이곳부터는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의 무지막지한 배낭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않는다.
"전문가들이시네!"
12:10. 상해봉/광덕산 능선분기점.. 광덕산은 서울로부터 원거리임에도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힘이 남아도는 친구들은 그곳에 배낭을 벗어두고 북쪽 1km 에 떨어져 있는 상해봉엘 일부러 다녀오는 여유를 부린다.
복계산으로부터 복주산까지 그 이후 회목봉으로 이어 우리가 걸어 온 까마득한 능선길을 배경으로
구식이, 용기, 상준이 규명이, 나는 사진을 찍었다.
광덕산으로 가는 길에 구식이가 틀어 둔 라디오에서 한 여자 가수가 '갈색등불'이란 노래를
아주 매끄럽게 불렀다. 나는 구식이와 규명이에게 다음 구간 캠핑때 이 노래를 내가 외워와서
한 번 해 보겠다고 찜을 해 두었다. 어젯밤 분위기가 오르면서 또 '한분위기'를 한 제환이가 멋있더라.
그래, 캠핑할 때마다 한 곡씩을 떼자. 그러면 한북정맥종주를 마치면
자동빵으로 일곱 곡은 떨어진다.
그러면 그 일곱 곡으로 평생 우려먹을 수 있겠지. ㅋㅋ.
셈에 능한 사람이 머리를 굴려 뭔가 하나 건진 듯 나는 속으로 기분 좋아했다.
1:00 광덕산에서 점심준비를 시작했다. 인호의 지인인 김동희씨가 이틀 내내 메고 온
명란젓, 김치등을 자기 배낭으로부터 풀어내는 데, 그 맛이 그만이다..
김동희씨는 나와도 몇 번 산행을 했던 사람인데 인상이 선하고 성품이 조용한 사람이다.
기왕에 첫 구간 테잎을 같이 끊었으니 우리와 함께 한북정맥을 완주하자고 했을 때
그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우신등산반이 아닌 사람이 괜히 끼었다고 생각할까봐,
또 그것 때문에 스스로 불편해 할까봐 마음이 쓰인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 친구들도 다 마찬가지 생각이리라.
주동이, 규명이, 상준이, 내가 하산을 마친 시간은 2시 10분쯤.
규명이와 나는 상준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하오터널로, 또 수피령으로 갔다가
각자의 차를 운전하여 광덕현에 다시 모여 친구들을 나누어 태우고 일동 유황온천으로 향했다.
5:00 온천욕을 한 후, 먼저 국망봉 산행 후에 갔던 '할머니보리밥집'으로 갔다.
영돈이는 자기가 청주에 내려가 있는 동안 전국의 막걸리를 연구 분석했다며 갖가지의 전문가적
노하우를 말하면서 막걸리는 3일 되어야 제 맛이 난다고 했다.
주문하여 나온 막걸리통을 검사하여 유효기간이 넘은 막걸리, 유효기간이 아예 표기가
되어 있지 않은 막걸리를 찾아, 음식점 종업원에게 '출고한 지 딱 3일된 걸로 바꿔오라'고 했다.
음식점에서는 찍소리 하지 못하고 서비스 안주까지 끼어 가져다준다.
자기도 '한 막걸리' 한다는 구식이는 바꾸어 온 3일된 막걸리를 먹어 보더니 맛이 확실히 다르다며
영돈이의 막걸리 전공을 인정하였다.
오늘은 모두들 술도 별로 마시지 않고 점잖게 식사를 마쳤다.
누군가 다행이라는 뜻인지 불만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한마디 한다.
"오늘 딋풀이는 좀 약한데?? 근교산행 뒷풀이 보다 많이 미약해.."
뒷풀이가 정말 약할런지 어떨지는 창동역에 그리고 또 수원에 가봐야 알 일이겠지..
늘 망가지는 건 이 차, 삼 차에 가서이니까.
우리는 여기서 세 대의 차에 쪼개어 헤어지기로 했다.
이 번 첫구간으로 우신 등산반의 캠핑등산이 한단계 업그레이드가 된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고,
이걸 기반으로 3월 말, 5월 말,.. 이어 갈 우리의 한북정맥종주는 우신의 산꾼들이
다같이 멋지게 만들어 나가는 모양이 될 터이다..
나는 이른 시간에 이천 집에 돌아오면서 기분이 상쾌했다.
'갈색추억' 테입을 얼른 구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