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밀라노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거래처와 계약도 하고, 그
회사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도
보고 싶었다.
직원을
며칠 먼저 보내놓고, 2월19일 출발하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는데, 인천에서
밀라노 직항은 있지만 돌아오는 편은 로마 또는 프라하를 거쳐서 와야 하는 형태였다.
고민을 하다가, 누군가 프라하에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아서 원기, 주동, 인호에게
확인해보니 김정선이 있다고 한다. 앨범을 보니 알 듯 모를 듯하다. 인호에게 사전
소개를 충분히 하도록 부탁하고, 밀라노 하루, 프라하
이틀 일정으로 출발.
시차 때문에 당일 오후 5시반, 밀라노 도착, 영접 나온 우리 직원과 거래처 직원과
저녁식사를 하러 갔는데, 아주 잘 하는 곳이라고 자랑을 한다.
Original 이탈리아
음식이라 기대를 많이 했다. 입맛이 달라서 인지, 한국에서의
이탈리아 음식이 더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계약을 하고, 회사투어를 하고, 밀라노 시내 구경을 나갔다.
지하철을 탔는데, 스크린도어가 없어서 뒤에서 밀면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니,
엉뚱하게도, 가끔 그런 일이 발생한다고 한다. 선반이
없어서 사람들이 짐을 그냥
들고 있다. 앉아 있는 사람이 서있는 사람 물건을 받아주냐고 하니,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밀라노성당, 참 웅장하다. 아름답다.
시내 둘러보고, 점심 먹고, 레스토랑의 나이 지긋한 Waiter가 아리가또오라
한다.
”I am not a Japanese”
”Where are you from?”
”Korea. 감사합니다”
”캄사함다”
19시15분 프라하행, 체코항공을
탔다. 비즈니스석에 나 혼자라면서 앉고 싶은데
아무 곳이나 앉으라고 한다. 의자는 이코노미석과 같았는데, 가운데
자리를 비워서
불편하긴 해도 답답하지는 않았다.나이 먹은
Stewardess 2명이 서빙을 한다. 여러모로
신경을 써주는 것이 고맙다. 어둠 속에서 아기자기하게 보이는 프라하 야경이 눈에
들어온다. 21시 30분 프라하공항 도착. 입국하는데, 뭔가 다르다.안내표지들이
모두
한글이 쓰여있다. 그것도 유럽에서…
(EXIT옆에 한글로 출구)
배레모를 쓴 정선이가 기다리고 있다. 금방 알아 봤다면서.
Old City에 있는 Marriot
Hotel에 짐을 풀고, 정선이를 따라 나섰다.
앗, 동화에 나오는 성당이다. 황홀하다.과학이 살아 숨쉬는 시계탑도 둘러보고, 그
유명한 까르다리까지 둘러 보았다. 너무 아름다운 야경이다.
(프라하의 랜드마크 시계탑,과학이 숨쉰다))
(뒤에 보이는 것이 프라하성.왼쪽이 까르다리)
광장에서는 우리가 배웠던 1968년 프라하의 봄 얘기를 들었다.
정선이가 다음날 일정이 많다고 한다. 수학도 가르치고…
Tip guide가 있는데 재밌다고
해서 다음날 아침, 정선이와 같이 현장에 도착, 인계되어 guide를 쫓아 다녔다.
그냥 모여서 같이 다니면서 설명을 들으면 된다. 깃발도 없고,
이동수단도 없다. 다
끝나고 마음에 안 들면 팁을 안 줘도 된다고 하는데, 정선이가 다른 젊은이들은 체코
돈으로 보통 100을 줄 텐데, 나는 200을 주라고 귀뜸을 했다.우리 돈으로 약 만원정도.
낮시간에 보는 프라하도 아름다웠다. 파리나 밀라노에서의 번잡,
어수선함은 느껴지지
않았고, 깨끗하고 편안했다. 밤에 보았던 곳을 다
들러보는데 오전을 보냈는데, 중간에
30분정도 화장실도 가고, 기념품도 사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기념품 고르다 시간이
좀 지나쳐 급히 가보니 일행은 잘 보이질 않고, 젊은이들이 날 부른다. 한국에서 온
대학생들인데, 날 기다려 준 것이다. 내가 일행(약 20여명 중 내가 제일 늙어 보였다)
200을 주고 오전 투어를 마치고, 젊은이들이 같이 식사하자고 한다.(기특한 것들)
내가 점심값 반을 내줬더니 너무 좋아한다.
오후에는 일행이 더 많아졌다. 비틀즈벽(?), 누군가 Let it be를 열창한다.
(사연이 많은 벽인데, 생략. 누군가
한국국기를 그려놓았는데 가슴이 아팠다. 태극문양
대신에 권총 두 자루가 있었다)
다리를 건너면서 많은 얘기들을 들었다.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신부와 왕비의 이야기
고해성사를 한 왕비의 얘기가 왕에게 와전되어(?) 강물에 던져져 죽임을 당한 신부의
얘기. 많은 부분이 첨부되고, 각색되어 졌겠지만
관광객의 흥미를 자아내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다리 위의 조각상과 부조물. 사람들이 많았는데, 여름이면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한다.
다리를 지나 언덕 위의 프라하성을 향해 전진, 제법 힘이 들었다. 900년대 이전에는
이 곳의 역사는 선사시대, 즉, 기록이 남아있질
않다고 했다. 프라하성이 축조되기
시작되면서 역사의 기록이 시작되었다고 하니, 체코의 역사와 프라하성은 시작이
같은 셈이다.
아름다운 성당과 약소국 체코의 어두운 경계를 살다간 체코의 실존주의 철학자 카프카의
집필장소등.
다시 젊은이들과 맥주 한 잔 하기 위해 구시가지로 들어왔다. 길가에 독특한 빵을
구어서 파는데, 일행 중 여자아이가 점심도 얻어 먹었는데 자기가 사겠다고 한다
시계탑 앞의 길가 까페로 들어 갔는데 금액이 너무 비싸다면서 젊은이들이 나가자
해서 다른 집을 찾아 생맥주 300CC 3잔을 마시면서 젊은이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많이 부러웠다.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부모로부터
여행경비를 받아, 여행을
왔다고 한다. 아이들이 밝고 명료했다. 우리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인데, 우리
아이들도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겠다.
젊은이들과 헤어져 정선이와 만나기 위해, 호텔로 향했는데, 길을
잃었다. 걷고, 또
걷고, 오늘 Walking tour로 발이 아픈데
힘들었다. 결국 원위치로 돌아와 택시를 탔다.
덕분에 발이 아프긴 했지만 프라하의 다른 곳을 더 보았다.정선이에게 이 얘기를 하니
착한 기사를 만난 듯하다고 한다.
정선이와 다시 길을 나섰다. 족발 잘 하는 곳에 들러 맥주와 저녁식사. 한국말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다는 정선이. 해외 장기출장시에 나도 느꼈던 것인데, 24년째
사는 정선이는 오죽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잔 더하기 위해 2차를 향해 걷는데, 길가에서
한 여인이 유혹을 한다. 루마니아인
이라고 한다. 가난한 나라의 사람인 것이다.
시끄러운 곳에서 2차를 하고, 조용한-로마의 귀족이 된듯한 착각- 곳에서
3차를 즐겼다.
새벽 4시쯤 호텔로 돌아왔다.
떠나는 날,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정선이와
드보르작이 뭍혀있는 공원(?)으로
가다가 건물들 앞의 길바닥에 이름이 새겨진 동판을 보았다. 나치에게 끌려가 돌아오지
않은 유태인들 이름이라고 했다. 많은 건물들 앞에 많은 동판들이 있었다. 기억이
맞는지 모르지만 6만명이 끌려가서 3천명이 살아왔다고
한다.
(이 집은 7명이 돌아오지 않았다)
공원 산책 후 정선이와 점심을 먹었다. 참 수더분한 친구다.
서민적이고, 소탈한
선비같다.
언제든지 한국에서 오는 친구들은 환영한단다. 몇 가족이 와서 차를 빌려 유럽여행을
해보자고 한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희망을 품어 본다.
많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따뜻하고 다정하게 대해준 정선이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언제 아내와 같이 다시 방문할 것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