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숙제.......에 이어>
집에서 내가 가진 필살기가 하나 있다.
단학선원 1년 동안 다니면서 3명의 스승에게서 배우고 스스로 연구 개발한
일명 “기혈안마”다. 몸에도 길이 있다.
9혈을 자극하며 백회에서 시작하여 기의 흐름 곳곳을 다양한 손모양으로 자극하면
대부분 그 느낌을 잊지 못한다.
다른 곳에서 비싼 안마를 받아보았지만 나보다 훨씬 못하여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둘째 아들은 컨디션이 안 좋으면 나부터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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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은 숙제였기 때문에 PT까지 더 이상 내가 개입 할 필요가 없었다.
더 이상 개입하고 싶지도 않았다.
며칠 후 또 문자가 왔다.
자기도 저녁 사기로 한 약속 지키겠다고
나를 자신의 진하게 썬팅한 LS430 승용차로 Pick Up하여 간 곳이
가로수길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가로수길은 가게와 거리의 구분이 없어 마치 거리 전체가 큰 축제 장소 같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나 할 정도의 분위기였지만
애인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학부모 모임도 아니고 아리까리하여
처음 만났을 때의 호기는 어디로 갔는지 스스로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성격이 자유분방하다.
“숙제 잘해주셔서 감사해요”
“뭘요, 대충했는데 결과가 좋아서 다행입니다”
“애 아빠가 하셨으면 훨씬 더 잘했을 텐데요?”
이건 내 궁금증을 우회하여 물어 본 것이었다.
한참 후에 대답을 한다.
“저 별거 중이예요”
분위기가 미묘해진다.
여자를 솔직하게 만드는 방법은 그냥 격 있는 유머로 긴장을 해소하고
나부터 솔직히 나오면 여자는 덩달아 자기 속을 드러낸다.
“부부관계라는 것이 서로 많은 것을 접고 살아야 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더군요......가끔 외롭다는 생각은 안드세요?“
간접적 유도 질문이었다
“남편이 그리운게 아니라 남자가 그리울 때가 있어요”
그녀는 그 사람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았고
당돌한 질문과 반전의 대답이 오가며 서로의 심리적 상황을 조심스레 짐작한다.
여자에게 원하는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직접화법보다 간접적으로
유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혹시 그립다는 그 남자, 제가 좀 되어드리면 안될까요?”
둘은 속으로는 기다렸다는 듯이 겸연쩍어 하면서도 한바탕 웃었다.
이건 I. O. U.의 한 장면도 아니고
요즘 jtbc의 "밀회"의 분위기도 아니고
불륜의 시작인가 아니면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2차로 논현역 근처의 bar로 갔다....그 곳도 그녀가 가끔 가는 곳이었다.
술이 좀 들어가니 자신의 가슴 속 이야기가 마구 쏟아져 나오고
나는 의도적으로 그저 맞장구치고 긍정적 응답으로 들어 주었다.
집으로 갈 때는 그녀가 나보다 더 취한 것 같다.
걸어서 떨어져 가는데 팔짱을 갑자기 낀다.
놀래서 큰 길이 아니라 뒷길로만 갔다.
“저랑 애인 할래요”
“애인하면 서로 키스도 해야되는데?”
이럴 땐 나도 참 능청맞다는 생각이 든다.
부부싸움에도 인격의 하한선이 있듯이 불륜에도 나름의 하한선은 있어야 한다.
고속도로 뒤편에 세워둔 차는 밤이 깊어 어둠 속에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차 속에서 결정적으로 나에게 한마디 던진다.
“집에서 잘한다는 그 안마 저에게도 해 줄 수 있어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운전석의 의자를 제끼고 눈을 감는다.
이번에는 내가 생각할 틈이 없다.
생각과 행동은 양립할 수 없다.
순간의 판단이 영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예상치 않은 돌직구에 적잖히 당황스러웠지만 급진전되는 상황이
생각할 틈을 안준다.
그러나 두 번째 단추까지 풀어진 블라우스 속으로 비치는 가슴선의 시작과
눈을 감은 속 눈썹의 떨림,
고개를 오른쪽으로 약간 돌린 부드러운 턱선의 라인
여기서 멈추었다간 오히려 여자의 자존심만 상하게 할 것 같다.
이것이 진정 극복해야 될 현실인지 받아들여야 할 현실인지 판단이 금방 서질 않는다.
실내등도 꺼져있어 희미한 달빛만이 그녀의 실루엣에 흔적을 남기고
올라간 스커트의 끝 선 속의 호기심은 결국 나를 받아들여야 할 현실 쪽으로
기울게 만들었다.
그녀의 혈관에 흐르는 그 무언가가 나의 혈관에도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서 시작할 줄 몰라 잠시 머뭇거리다가 스커트 쪽 정확히 말해서 대퇴부
위쪽에 첫 터치를 시작했고
기맥이고 혈맥이고 아무것도 생각이 안나고 내 호흡만 가빠지고
머리 속은 텅비게 되고 몸은 조수석에서 붕 뜨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손을 움직일 적당한 몸의 자리가 없다
위로 올라 가려니 그곳이오 아래로 내려 가려니 스타킹이다.
손에 약간의 경련이왔지만
마치 몽정하기 바로직전의 그런 아늑하고 나른한 기분이 몽롱하게
실핏줄까지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내 손은 한 마리의 아나콘다처럼 돌아돌아 이곳 저곳
또아리를 틀었다 다시 풀고
옷감과 뱀의 살갗이 스치는 촉감에 그녀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지
차 속을 신음으로 가득 채운다.
아~~~아~~~~~~아!!!!!
구겨진 종이가 멀리 가듯이 그녀의 옷이 구겨질수록 소리는 더 커지고
그 소리에 리듬을 타고 뱀은 유륜을 휘감아 입술을 가로 질렀고
꼬리는 아래에서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다.
차창은 뿌옇게 김이 서려 마치
포유류와 파충류가 서로 엉켜 윤곽만이 보일뿐이다.
육체가 만족하자 영혼이 기쁨으로 전율하는 순간이었다.
하이힐이 벗겨진 그녀의 다리는 허공에서 바르르 떨고 있다.
어두운 차속에서 부드러우면서도 격렬한 움직임이 있는데
당사자만이 아는 느낌이라 지나가는 사람은 알 길이 없다
옷이 다 젖은 사람은 물을 더이상 피하지 않듯이
어둠 속의 움직임은 점점 빨라지고 미세한 소리까지 들리는 듯 하고
차도 흔들리는 듯 하지만
멀리서 보면 어둠 속의 차 한대일 뿐이다.
그들은 서로를 원한게 아니라 단순하고 숨막히는 현실의 일탈을
서로를 통해 확인 한 것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을 볼 수 있게 그리고 만져 확인할 수 있게 한 것이
사람의 몸인 것 같다. 사람의 몸은 만질 수 있는 사랑이다.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듯이
하늘에는 하늘만 있어서는 안되듯이
세상에는 도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서로가 얼마나 뜨거워질 수 있는지 서로가 알고 있었고
그것이 서로가 마지막이어야 한다는 공통된 생각의 하한선이었다.
학교 바자회 때 멀리서 본 것이 마지막이었고
그 후 다른 동네로 이사갔다는 이야기를 아들을 통해서 들었다.
앞으로 나이트가면 절대 핸드폰 던지는 일은 자제를 해야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