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들어 자꾸 아프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담배도 거의 안피고 술도 적당히 먹었는데
나이가 드니 이상구박사 말대로 유전자 변형이 슬슬 일어나 예기치 않은 곳이
무너져 나를 당황하게 만들고 엥겔지수는 낮아지나 병원비 지수는 자꾸 높아만 간다.
게놈 진단을 한번 받아 볼까? 1,000달러까지 떨어졌다고 하는데....
자정이 넘어 배가 살살 아프다.
그래서 활명수 1병 마시고 그래도 아파서 맥시롱 하나 먹고
그래도 또 아파서 오기가 나 맥시롱 하나 더 먹었는데
평상시 배 아플 때랑 느낌이 틀리다.
몸에 열이나 빤스만 입고 이불을 둘둘 말아 이불과 씨름하고 있는데
마누라는 잘도 잔다.
마루로 나와 늦게까지 안자고 있던 둘째 놈에게 배 좀 쓰다듬어 달라 했는데
손이 스치기만해도 아프다.
분명한 건 애 낳을 때 보다 더 아프다는 거다.
내 몸부림이 분명 산모의 몸부림보다는 더 격렬했다.
갑자기 사람의 손길이 그리워져 아이에게 부탁한 것이다.
아프다는 사실보다 그걸 해결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삶의 막다른 벽에 부딪힌 느낌이고
그 옛날 수많은 사람이 이런 상태로 죽어갔다고 생각하니 아픈 와중에도 숙연해진다.
새벽 3시까지 끙끙 앓다가 도저히 이 고통을 줄일 방법이 집에는 없다고 판단하여
혼자서 강남성모병원 응급실을 가려하니 고3아들이 따라 가겠단다.
ㅋㅋㅋㅋ 고3 보호자.....아들이 엄마한테 이야기하고 가겠다고 지 애미를 깨운다.
그제서야 마누라는 놀라며 본인이 가겠단다.
집사람 안깨우려고 이빨을 깨물고 신음을 내었더니만 이빨이 얼얼하다.
새벽 3시
기다시피하여 응급실에 가니
병명은 "요로결석"
학교 다닐 때 별로 결석한 적도 없고
생활이 방탕하여 사리가 나올 리도 없는데.....
와이프가 등록을하고 부축을 하고 응급실에 누워 있을 때는
정말 오랜만에 아내 손도 잡아 보고
부두러운 손이 고통을 잠시 잊게 해준다.
일주일 정도 자연배뇨로 살펴보다가 안되면 그 때가서 수술하잖다.
(결국 하루를 못 넘기고 수술했다)
퇴원 수속을 하고 부축을 받으며 집에 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리 가족의 최고 울타리이자 최후의 보호자가 나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아내와 자식들이 내 보호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그 가족의 역할을 대신해 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밤새 진통을 겪을 때
이대로 죽는다면?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첫번째 본능적으로 스치우는 생각이
1)내 스마트폰에 친구들이 보내준 아직 삭제 못한 야동과
케이블방송 친구가 특별히 준 19금 영화 삭제장면 모음CD가 제일 먼저 생각났다.
동영상은 아픈 중에도 모두 삭제하고
CD는 책갈피 속에 넣어 두었는데 어떤 책이었는지 헷갈린다.
나중에 그게 발견된다면 그네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야동아빠"
신독(愼獨)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앞으로는 혼자 있을 때도 행동과 생각을 바르게 하여
내 흔적의 그림자조차 경건하게 하리라.
2)두번째로 아내 몰래 만든 마이너스 통장이다.
갑자기 죽은 남편이 남겨둔 마이너스 통장
"이 돈으로 이 사람 뭘 했을까?"
앞으로 이 통장 폐기에 목적을 두고 소비패턴 변화에 주력하여야 하겠다.
3) 세번째로 든 느낌은 "뭔가 좀 억울한 기분"이었다.
내가 베풀 수 있는 사랑의 에너지는 많이 남아 있는데
아내와 자식들에게 마음껏 소진도 못하고
죽는다니 이걸 하늘나라가서 쓸라꼬????
그래 이 고통이 가시면 이제 내 사랑을 방전하며 살자.
표시도 하고 위로도 하고 격려와 수용도 즉각즉각하며....
항상 이 순간을 최대한 사랑의 방전 상태로 남겨두자....
4) 이대로 죽는다면 누가 나를 기억해 줄것인가?
분명 부모나 가족, 가까운 친척, 몇몇 친구들은 아쉬워 할 것이지만 그게 전부 다 인가?
본능적으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만 슬퍼한다면
내 삶은 결국 본능에만 충실한 삶이었을 것이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자.
어디를 가보고 싶고 무슨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버킷리스트도 중요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나 내가 부족했던 인격과 부족했던 실천을 채워보는 그런 버킷리스트는
지금부터 꾸준히 평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고통은 또 한번 알에서 깨어날 기회를 준
고마운 고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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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또 입원했다.
이번에는 허리다.
내 취미가 안해본 것 해보는 것인데
내 몸뚱아리도 주인을 닮아서인지 안아픈 곳 골라가며 아프다.
이번에는 "장승욱유고시집"을 가지고 입원했는데
성경보다 더 위안이 되어 한글자 한글자 곱씹으며 읽었다.
아프니 나도 후로꾸 詩가 저절로 나온다.
가족들에게 카톡으로 몇자 끄적여 보냈다.
<제목:우리 家族>
큰아들 속에는 어른이 들어있고
작은 아들 속에는 떼쟁이 들어 있고
엄마 속에는 성모마리아 들어 있는데
아빠 속에는 어린애 들어있네.
어른같은 아이, 아이같은 어른
떼쟁이 엄마 마리아
마이아 아들 떼쟁이
마리아 남편 어린애
그래서 우리 가족은 언제나 삐거덕 가족
가족 카톡그룹으로 보냈는데 아무도 응답이 없다.
외로움이 오히려 더 절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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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아파서 입원했다.
이번엔 아무 느낌이 없다.
생각도 책도 詩도 귀찮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미안하다, 감사하다, 사랑한다........이 세마디 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