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풀코스를 뛰기위해
작년 11월부터 훈련일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운동량,달리기 거리, 몸무게, 음주,흡연 여부 등등
그런데 도대체 진전이 없다....몸무게도 요지부동이다.
연말이라서 그런지 모임과 약속으로 이어지는 술자리...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술자리에서 가끔 피던 담배를 12/13일 완전히 끊고
12/18일 마지막으로 술도 끊어버렸다.
큰 마음먹고 발동을 거는 순간
예상치도 않게 허리가 아파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1월 초 다른 곳이 아파 또 한번 입원하게 되었다.
재수없는 남자는 뒤로 넘어져도 가지밭이라고
건강이라는게 임계치를 넘으면 경중에 관계없이
조심해야되기 때문에 1월 한달 내내 연습을 못했다.
포기하란 무언의 계시인가???
그렇다고 마냥 쉴 수 없어서 실내 자전거를 안방으로 옮겨
퇴근 후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자전거를 타면서 책도 읽고 DMB도 보고 음악도 들었다.
1월말 구정이 가까워 오자 몸이 어느 정도 회복 된 듯하여
설날 첫날 분당에 계시는 부모님댁 차례를 지내러 가기위해
식구들은 아침에 차타고 가라그러고
난 혼자서 새벽 1시에 잠원동에서 분당을 향해 머리에 랜턴을 쓰고 뛰어가기
시작했다.
성남 태평역까지 지나가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고 날씨도 추웠지만
가로등이 없어서 랜턴만 의지하기에는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아쉽게도
거기에서 멈추었다.
일단 훈련이 늦었지만 음력 새해부터라도 시작해야 겠다는 마음으로
2월부터 회사에서 퇴근주를 하였다.
여의도에서 집까지 한강변으로 8.5키로
퇴근시간 양복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모자를 쓰고 장갑을 낀 채로 퇴근한다는
것이 남들 이목이 있어서 실제 쉬운 일이 아니고 그렇게 퇴근 하면
출근 때 전철 속에서 운동화 신고 캐주얼 차림으로 가야 되는데
하여튼 남들의 시선 개무시하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했다.
항상 여의도 기점 0키로 지점에서 심호흡 한번하고
뛰기 시작한 것이 십여회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구려 마라톤대회 뻐꾸기 19키로,
3월1일 여의도 마라톤대회 뻐꾸기 16키로
대회 전 주 북한산 시산제 참석하기 위해 잠원동에서 출발하여 홍제동까지 18키로
대회 일주일 전 광진교까지 갔다가 돌아올 때는 바람이 너무 심하여 잠실에서 버스타고 귀가.
그러다 보니 그렇게 안빠지던 몸무게가 4키로 빠젔다.
다만 허리가 신경이 쓰여 달리기의 속도가 느려 강도 높은 훈련은 할 수가 없었다.
하여튼 주어진 내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한 준비였다.
그래서 후회가 없었다.
대회 전날 내 자신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나도 궁금해서 잠이 안와
1시간 밖에 못잤다.
드디어 3/16 일요일
탁용석이와 완주를 서로 다짐했고
신수철이 잠실에서 응원나온다고 하니
힘이 더 났다.
대회 주로에서 나름 열심히 뛰었다....
축적한 에너지의 100%를 소진하고
골인지점 통과 후 구석에서 쓰러져 10여분 눈을 감고 거친 숨을 가다듬었다.
사람이 새로운 극한 상황을 경험해 보고 나면 또 한번 성숙되는 그런 기분이었다.
난 달리기가 과정이 아름다운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이번 대회 참가는
기억에 남을 과정을 간직한 완주였다.
담배는 이제 생각도 안나고
뒷풀이에서 3개월 만에 맛보는 술맛은 가슴이 짜릿했지만
이제 술을 조절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을 하였다.
한송이 국화같은 오늘이 있기 위해 봄부터 무서리도 저리내리고
내갠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특히 주로에서 응원하여주신 이분, 저분, 그분께 무한한 고마운 마음이다.
정말" The winner takes something special" 을 한 아름다운 일요일이었다.
옥에 티였다면
잠실운동장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미쳤는지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다가
진행요원에게 걸려 다시
원위치하여 뛴 것이
수많은 관중 앞에서
개망신이자 쪽 다 팔린
다 된 밥에 재뿌린 경거망동이었다.
너무 착실하게 뛰어 마지막에 뭔가 심심했던 모양이다.
-끝-
ps)뻐꾸기: 대회에 정식으로 신청하지 않고 참가비 안내고 낑겨서 뛰는 행위 or 사람